<청소년의 햇살> 2024년 11월호 #위로의편지
올 해는 유난히 부고(訃告)가 많았습니다. 계절과 계절 사이, 가족을 잃은 지인들의 소식이 쉴 새 없이 도착했지요. 연락이 올 때마다 그들에게 달려가 위로를 건넸습니다. 빈소를 지키고 있는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토닥이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깊은 절망에 빠진 그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영원한 이별’을 하면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마치 짧은 여행을 떠났다고 느껴지지요. 그러나 일상에서 그들의 흔적을 만나거나, 문득 문득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한 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잘 해줄 걸’ 때 늦은 후회를 하며, 깊은 우울의 늪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 또한 여러 번의 이별을 경험하며 상실의 슬픔 속에 갇혀있던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헨리 나웬 신부님이 쓰신 『위로의 편지』를 읽고,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조금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헨리 나웬 신부님은 예수회 신부님입니다. 사제이면서 동시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였지요. 신부님은 어느 해 가을, 사랑하는 어머니와 작별을 합니다. 그러나 장례를 치는 후에도 무척 바쁘게 생활하느라 어머니의 죽음과 직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몇 개 월 후, 신부님은 봉쇄수도원에서 묵상을 하다 문득 ‘그 시간이 왔음’을 깨닫습니다. 이제 슬픔의 시간이 펼쳐질 거라고 예감한 것이지요. 예감은 적중했습니다. 신부님은 고요로 가득 찬 수도원의 작은 방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특별히 어머니를 생각한 것도 아니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떠올린 것도 아닌데 슬픔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대요. 신부님은 자신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 일에 대해 아버지와 함께 나누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편지를 씁니다.
신부님은 아버지께 쓴 편지에 어머니가 없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어머니의 부재를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기쁜 일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할 어머니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인지 말하고, ‘시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슬픔을 더 깊게 만드는 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마냥 슬퍼하지만은 않습니다. 이제 ‘어머니가 없는 삶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일들을 어머니 없이 해보는 삶을 배운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도 말합니다. 아버지 또한 아내 없는 새로운 삶을 살아보게 되었다고요. 그러니 하루하루를 새롭게 배운다고 생각하면서 잘 살아보자고 전합니다.
신부님이 아버지께 쓴 편지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가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니요? 죽음과 이별은 ‘끝없는 절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새로운 배움의 기회’라고 생각을 바꾸니,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다시, 이별이 자주 찾아오는 계절입니다. 영원한 이별은 언제나 슬프지만, 애도의 시간을 거치고 다시 일어설 때, 그 사람 없는 하루를 새롭게 배운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하늘 여행을 떠나신 분도 우리가 날마다 통곡하기보다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기를 바라실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