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햇살> 2024년 12월호 #키키키린의편지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을 맞으며 『키키 키린의 편지』를 읽는다. ‘삶을 긍정하는 유연한 어른’이었던 그의 편지를 읽으면서, 고단했던 한 해를 기쁘게 기억하고, 다가올 새해를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기 때문이다.
키키 키린은 일본의 ‘국민 엄마’로 통하는 배우였다. 10여 년 동안 암과 싸우면서도 삶을 긍정하며 언제 멈출지 모르는 자신의 시간을 즐기며 살았다. 2018년, 그가 지상의 시간을 마감하고 떠나자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그의 삶을 조망하기위해 ‘비화 키키 키린의 자필 편지’라는 방송을 만들었다. 키키 키린과 편지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만나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왔는지,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떻게 기억했는지 재조명하기 위함이었다. 이 방송은 『키키 키키린의 편지』로 엮여 출간되었는데, NHK의 <클로즈업 현대+>와 <시루신>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됐던 그의 편지를 담고 있다.
책 표지를 넘기면 가장 먼저 키키 키린의 사진이 나온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웃고 있는 모습인데, 눈빛에서 아련함이 느껴진다. 그의 사진을 넘기면 세로형 원고지에 날렵하게 글씨를 써 내려간 편지들이 나오고, 그 뒤에는 그가 직접 그린 그림이 있는 편지들이 있다. 그리고 드디어 키키 키린과 편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키키 키린의 편지를 받은 수신인은 다양했다. 왕따 근절 운동을 하는 이, 자신이 맡은 배역의 모델이 되어 준 한센병 환자, 곧 사회에 나가게 될 청년, 교사를 지망하는 청년, 그리고 키키 키린이 20대 때 광고를 찍었던 기차역도 편지의 수신인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낸 그의 편지 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편지는 ‘꿈을 찾지 못한 청년에게’ 쓴 것이었다.
2016년, 키키 키린은 무곤칸 미술관에서 열린 성인식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편지로 남긴 것이다. 그는 편지를 쓰기에 앞서 청년들이 제출한 서류를 살펴보았다. 장례희망이나 삶에 대한 목표 등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 스물 네 살의 청년이었던 쓰야마 준이치는 장래 희망란을 빈 칸으로 남긴 채 서류를 제출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키키 키린은 장례 희망도 목표도 없는 그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자기 안의 목표가 확실하지 않다면, 열정을 발휘하는 누군가가 있는 곳에 한 발 들이는 것도 방법이에요.’라고.
나는 이 편지를 읽으면서, 그의 깊은 마음을 느꼈다. 길을 찾지 못했어도 괜찮다는 위로, 다른 이들과 함께 하며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할 기회를 가지라는 조언, 어떻게든 힘차게 살아가보자고 격려하는 마음이 읽혔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편지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키키 키린이 전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지난 2024년이 고단했어도 잘 살아왔다고, 새로 다가올 한 해가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 발 한 발 힘차게 내딛어 보자고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키키 키린이 우리에게 남긴 ‘삶을 긍정하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