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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적성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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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 Apr 12. 2019

23개월 재접근기

매일이 재접근기냐

23개월, 딸.

선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지금 아빠와 함께 있다. 1818 한다는 18개월 차를 잘 넘기는 듯하였으나 기억나지 않는 순간부터 선우의 떼가 시작되었다. 아빠 껌딱지였던 딸은 이젠 엄마와 한 몸인 줄 안다. 나 55킬로야 지금 내 몸 하나도 가누기 힘든데 12.7킬로가 더해지는 건 아니지 않니?

18개월부터 36개월까지가 아이가 엄마로부터 애착을 다시 형성하고 사회적 나의 모습을 갖추는 시기라고 한다. 순하던 우리 딸이 떼쟁이로 변하고 미친 듯이 검색 뒤에 얻은 육아전문가들의 이야기다. 18개월부터 36개월이라니. 그러지 말자.. 길지 않니... 우리 아가들 참... 끈기 있구나... 나름의 꿀 육아를 하고 있었다. 8시면 잠들었고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7시에 일어났으니 저녁의 생활이 있었다. 앉아서 먹고 스스로 먹었다. 지금도 주로 그렇긴 하지만 중간중간 엄마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오늘 낮엔 몹시 괜찮은 하루였다. 23개월 딸은 말을 굉장히 잘한다. 정말 잘한다는 말을 만나는 사람에게 모두 듣고 있으니 그런 것 같다. 어제 만든 훈제 닭을 에어프라이어로 데우고 있었다. 잠깐 열어서 따뜻한지 확인했다.


"엄마 선우도 맛볼래"

"어 그래;;;"


어느새 소파에서 종종 걸어와 옆에 섰다. 그래 먹어라. 먹으면 조용하니... (요즘 무조건 안아줘 모드이다.) 접시에 가슴살을 놓아주었다. 선우는 자신의 의자를 등산하듯이 올라갔다. 그리고 앉아서 냠냠 맛있게 먹었다.


"엄마 선우 물 주세요"


가슴살이니 퍽퍽하겠지? 하고 물을 주었다. 거기까진 아주 좋았다.


"엄마!"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선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식탁에 쏟고 있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엄마 죄송해요. 장난 안칠게요"


헐. 죄송하지 않은 것보다 더 약이 올랐다. 요즘 내 감정이었다. 화가 난다기보다 약이 올랐다. 자신이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 죄송할 일이라 것도 알고 있었다.


"선우야 네가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네가 장난을 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야. 죄송하다는 것 그냥 하고 나면 아무 일도 없어지는 그런 말이 아니야"

"엄마 다시 안 그럴게요"


여전히 해맑았다.


"다신 안 그런다는 말을 정말 그러지 않을 수 있을 때 하는 거야. 선우는 요즘 엄마에게 신뢰를 잃었어"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낀 선우는 울기 시작했다.


"엄마 죄송해요 다시 안 그럴게요 안아주세요"

"싫어요"

"엄마 안아주세요"

"싫어요"

"엄마 선우 내려주세요"

"싫어요 스스로 내려오세요"

"뚝!"


선우는 스스로 뚝 하며 울음을 멈췄다. 그리고 울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죄송해요 안아주세요"


내가 평소 선우가 울면서 말할 때 하던 행동이었다. 평소 선우가 울면서 이야기하면 '잉잉하지 않고 부탁하세요'하고 이야기했다.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데 안아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아서 내려줬다. 하지만 너무 약이 올랐다. 다 알고 있었다. 모든 육아서들은 아이들이 모른다고 하지만 선우는 아주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 주변에 아이들을 봐도 엄마를 어떻게 화나게 혹은 약 오르게 하는지 알고 있었다. 육아서는 아이들은 매일 잊어버리니 매일매일 이야기하라고 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은 새로운 날인 것처럼. 그런데 저렇게 잘 알고 있는데?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행동이니 다 받아주라고 했다. 모르겠다 다른 육아서들은 어쩔지 모르겠지만 내가 읽은 책들 그리고 내가 읽은 인터넷의 글들은 다 그랬다. 그런데 그러기 싫다. 나도 사람이다. 요즘 남편이 내가 짜증이 늘었다고 했다. 좋은 말로 구구절절 이야기했지만 결국은 짜증이 늘었다는 게 남편의 말이었다. 오빠, 짜증이 나서 짜증을 내는데 어쩌라고. 100번 낼 거 10번 내는 내가 나는 대견한데 그게 안보임? 이란 말을 나도 좋게 좋게 풀어서 이야기했다. 남편이 나에게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요즘 내가 선우를 가끔 보는 모습이 미운 사람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오빠... 사실인데 그걸 입 밖으로 내면 어떻게 해. 일종의 불문율 아니야?..라고 말하진 않았다. 그리고 나는 상처를 받았다. 그게 사실일지언정 그렇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해. 나도 그런 모습이 싫은데, 그리고 나도 엄청 엄청 노력하고 있거든. 진짜 100번 낼 거 10번 내는 거야... 집에 없는 오빠가 뭘 아냐............................................ 남편에게 너무 실망스러웠고 나도 실망스러웠다. 어쩌냐. 순한 딸일 때는 나도 천사고 따님이 아니시면 나도 아닌걸. 내 그릇이 그런 걸. 나는 언제나 늘 선우가 사랑스럽진 않아. 하루 종일 안아주세요를 반복하고 안아주다 보면 나도 힘들고 짜증 나. 화장실도 혼자 못 가는 내 맘을 오빠가 아냐!!!!!


의자에서 내려온 선우에게 수건을 주었다. 선우가 흘린 물이니 선우가 닦아. 선우는 신이 나서 물을 닦는다. 재미있어한다. 선우야.. 이거 벌칙이야.. 좋아하지 마.. 그즈음 남편이 집에 왔다. 아빠에겐 뽀뽀를 하며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와 얄미워. 그래도 남편이 와서 환기가 되었다. 나름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저녁에 한 콩나물 밥에 계란 프라이를 얹었다. 프라이를 안 드시는 따님은 스크램블이다 -_- 어제 만든 훈제 닭을 덥힌 걸로 메인은 대충 내었다. 선우가 냠냠 맛나게 밥을 먹는다. 밥을 먹으면서도 약 올른 게 가시지 않는다. 오늘 나는 그 사건 전까지 한 번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어제도 안 냈다. 그래서 너무 좋았었다. 짜증을 낸다는 오빠의 말에 보란 듯이 그러지 않고 싶었다. 실패했다. 속상했다. 그리고 약이 올랐다. 밥을 먹는데 선우가 말했다.


"엄마 물 주세요. 장난 안칠게요"


아...... 약 올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진짜 이 23개월이 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한테 신뢰를 잃어서 안 줄 거예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단호한 엄마다.


"엄마 장난 안칠게요"


베실 웃는다. 말은 단호했지만, 닭가슴살을 콩나물밥과 먹으니 퍽퍽할 거 같긴 했다. 그래 설마..? 하고 물을 주었다. 선우는 물을 받자 먹고 있던 밥그릇에 부었다. 그리고 한 숟가락을 먹었다. 장난일까?.. 요리.. 일까?


"선우야 그래, 그걸 먹으면 장난 안친 게 되는 거야.."


남편이 내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표 나지 않게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한숨도 요즘은 못 쉰다. 내가 한숨을 쉬면 선우는 묻는다 "엄마 힘드여?" ㅋㅋㅋㅋㅋ 힘들지도 못하는 나....


그래도 우린 밥을 다 먹었다. 남편이 먼저 씻었다. 전에는 남편과 함께 씻고 난 주방을 마무리하고 난 뒤에 씻었다. 남편이 선우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히고 난 뒤에 난 거실로 나왔었다. 그리운 시절이다. 이젠 남편과 씻게 해 보려고 물놀이도 시도하고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엄마랑 씻을래~" 요즘은 뭐든지 엄마다. 그동안 꿀 육아했으니 받아주자 생각해보지만 그래도 힘들긴 하다. 소파에서 남편이 먼저 씻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선우는 내 무릎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손가락을 빨고 있던 선우가 일어나 내 얼굴을 살짝 때렸다. 살짝이다. 하지만 때렸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두 번 때렸다. 그리고 나에게 메롱을 했다. 황당했다. 세게 때린 건 아니다. 하지만 때린 건 때린 거다. 그리고 또 말했다.


"엄마 죄송해요 다시 안 그럴게요"


하.... 나는 그냥 대답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대답할 가치를 못 느꼈다. 최근 종종 선우가 이런 식으로 했다. 그리고 사과하면 받아줬다. 내가 아는 육아전문가들은 사과를 받아 주라고 했다. 대부분은 때리면 사과를 받는게 그들의 솔루션이었다. 선우는 사과를 아주 잘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정답 사과만을 내놓고 행동에 변화가 없다면 잘못된 것이다. 나는 육아 전문가는 아니다. 나는 인과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제까지 원인에 대한 결과가 잘못된 것이다. 선우가 다시 때리지 않을 만큼의 피해가 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쉽게 받아주었다. 맞은곳이 아픈 게 아니었다. 가슴이 아팠다. 대부분 이런 행동은 애정결핍이 원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대체 얼마큼의 애정을 줘야 하는 걸까. 얼마만큼의 사랑의 시험에 들어야 하는 걸까. 나는 정말 내 사랑의 전부를 주고 있다고 자신했다. 남편이 씻고 나왔다. 나는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옆에서 선우는 계속 죄송해요 하고 있었다. 눈치는 보고 있었지만 그리 죄송해 보이진 않았다. 내 눈에는.


"선우야 엄마는 선우가 사과한 걸 받아줄게. 하지만 엄마는 기분이 상해서 이제 선우랑 씻지 않을 거야. 오늘은 선우랑 같이 자지 않을 거야"


울기 시작한 선우를 두고 욕실로 가서 씻었다. 문을 열고 죄송해요를 이야기하며 만세를 하겠다고 했다. 같이 씻겠다는 뜻이다. 다시 이야기했다.


"싫어. 엄마는 혼자 씻을 거야. 문 닫아줘 엄마 추워"


엉엉 울며 선우는 문을 닫았다. 선우는 원래 혼자 방에서 잤다. 8시쯤 안녕하고 인사를 하면 혼자 잠이 들었다. 그게 18~19개월까지의 일이다. 그즈음 새벽에 두어 번 깨서 안방으로 왔었다. 엄마~ 하고 부르며 침대 끄트머리에서 서 있던 모습에 마음에 밟혀서 선우를 재워주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인사만 했었다. 이젠 잠들 때까지 안아주고 머리를 쓸어준다. 행복하지만 지루한 시간이다. 그리고 잠이 들면 나와서 남편과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러던 것이 새벽 깸이 잦아지면서 이제 인지를 다 하는 선우의 같이 자고 싶은 욕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그동안 꿀 같은 육아를 했으니 나름의 보상도 주고 싶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온 일이다. 이 즈음부터는 모든 게 엄마랑~이어서 사실 나의 육아노동이었다. 남편은 이제 슬슬 다시 분리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꺼내던 요즘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선우가 울어도 버틸 수 있을 마음의 준비가 되면 이야기하라고 했다. 똑똑한 선우다. 순응을 잘하는 선우다. 그리고 고집이 세어진 선우다. 나는 선우에게 24개월이 될 때까지 시간을 주고 싶다고 했다. 내가 짜증을 낼지언정 원할 때 같이 있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저런 행동은 나에게 일종의 배신감처럼 느껴졌다. 내가 돌려받지 않을 만큼 마음을 주어야한다. 그게 적당한 사랑이다.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관계다. 나와 선우는. 나는 바라는 게 없다고 하지만 딸에게 배려받고 싶다. 재접근기고 뭐고 나는 선우가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


다 씻고 나온 뒤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나 오늘 선우랑 안 자고 싶은데 오빠가 가서 잘 수 있겠어요? 그래도 돼요?"

"네 그럴게요 괜찮아요 "


선우의 울음은 보지 않아도 훤하다. 요즘 체력도 좋아진 선우다. 30분 이상은 울게 분명했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게 9시 13분 지금은 10시 18분이다. 중간 즈음 울음을 그친 것 같다. 엄마한테 갈 거야 아빠 비켜주세요를 듣기 싫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결국 선우는 잔다. 오늘 나의 결정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나도 모르겠다. 사실 그것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걸로 인해 어떤 부정적인 영향이 생긴다 해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요즘 부모 자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단호한 엄마다. 어린이집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관계를 본다. 육아란 누가 옳고 그런지를 가름할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무조건 맞춰줘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나도 사람인데. 왜 다 참으라고해. 참기싫을땐 안참을꺼야. 몰라. 안참아.



그래도 마지막은 꽃깥은 너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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