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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태형 Sep 26. 2017

기술의 울타리를 넘어 인문학과 연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인간적인

소프트웨어는 예술성과 공학의 위대한 결합이다.
- 빌 게이츠


"나의 목표는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당시에는 왜 그가 돈도 되지 않는 학문을 굳이 제품과 연관지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애플의 신화가 인문적 철학으로 말미암아 탄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인간의 욕구를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사람이 쓰는 제품'을 만든다는 큰 명제 안에서 답을 구하는 철학이 있는 사람이다. 인간이 생각하는 흐름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까지 이어지는 제품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던 것이다.

그의 행보에서 주목할 점은 인간을 다루는 학문을 기술에 결합시켰다는 점과 궁극적으로 이 부분이 그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바야흐로 통합과 융합을 강조하는 연결의 시대다.  '연결(connectivity)'은 사물과 사물 또는 현상과 현상이 서로 이어지거나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사물 인터넷(IoT)의 발달로 사람을 넘어서 사물끼리 연결되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유한다. 고로 산업의 경계가 허물어져 전통적인 산업은 단독으로 자생하기 힘든 시대가 됐다. 전통적인 하드웨어 제조사들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 인력을 키우거나 이를 넘어서 아예 산업을 재편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그럼 이 같은 변화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이끌게 될지 생각해보는 것이 바로 인문학과 접속하는 첫 단계다. 분명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삶은 지속적으로 변모할 텐데,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이 어떻게 바뀔지, 그리고 그에 따른 유불리는 없는지 인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기술과 첨예하게 맞닿은 부분에서 인문학적 사고를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효과를 살펴보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인문학은 삶을 통찰하는 감춰진 하나의 감각기관을 의미하는데, 보통 이것을 인간의 숨겨진 예민한 관찰력이라고 본다. 살아가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오감으로만 느끼고 받아들였던 현실에 길게 더듬이를 뻗어 새로운 감정과 영감을 얻는다. 이것이 인문의 묘미이며, 못 보던 것을 봄으로써 얻게 되는 즐거움이다. 이것은 낯섦의 세계에 진입하는 것으로서 이 세계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항상 새로움을 좇아 무한한 흥분과 즐거움을 느끼는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것에 대한 무한한 흥분과 즐거움, 항상 새로움을 좇는 개발자들에게는 이 세계가 주는 싱그러움이 반가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개발자가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얻게 되는 소소한 삶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내 경험에 따르면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문득 바로 옆 자리의 개발자가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에 일정한 리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내 앞칸에 있는 개발자의 키보드 소리도 들린다. 그 옆 칸은 어떠한가? 다닥다닥 모여서 일하는 개발자들이 만들어 낸 소리를 조용히 눈을 감고 들어보니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멋진 화음이 조화롭게 들려온다.





이전에는 집중을 방해하는 소음으로만 여겨졌던 소리가 인문학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들이 걸어오는 말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조금 어이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음악을 하는 작곡가가 이 화음의 가치를 알아채고 멋진 곡을 만들었다고 하자. 그럼 이 작곡가는 새로운 음을 창조한 것이 된다.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인문의 가치는 이처럼 창조와 연결된다.


가끔 집중이 안 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자리에 앉아서 웹 서핑을 하거나 동료와 커피를 한잔 하며 시간을 때운다. 하지만 다시 자리에 앉아 코딩을 하려고 해도 쉽사리 몰입되지 않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이런 날이 하루 이틀이면 상관없는데, 간혹 일주일가량 지속될 때도 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비단 나만이 겪는 경험은 아닐 거라는 것이다. 같은 프로젝트에 투입된 대부분의 개발자가 나와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면 프로젝트의 생산성은 현저히 떨어질 테고, 조만간 위험신호가 발동될 것이다. 개발자들은 기계가 아니다 보니 아무 일 없이 우울해지고, 분위기에 따라 기분이 휩쓸리는 경험을 한다. 그럼 리더들은 신호를 감지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겠지만 이건 그나마 괜찮은 리더를 만났을 때 얘기다. 우리의 감정은 스스로 다스려야 할 때가 많다. 이때 인문이 주는 즐거움을 이용해 보자는 것이다.


인문학, 그딴 걸 알아서 뭐하냐고 할 수도 있다.

사는 데 지장 없는데 몰라도 그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개발자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음을 말해두고 싶다. 세상을 더 깊이 경험하고, 남들보다 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진정 삶이 풍요로워지도록 돕는다.


나는 이런 시각이 그동안 시인들의 점유물로만 여겨졌다고 본다. 그들은 이미 인문학적 감각을 통해 자연현상에서 인간사를 찾아냈다. 우리가 보면 단순한 물건도 그들은 감정을 이입해 사람의 언어로 해석해 주었다. 하지만 연결의 시대에는 모든 것들이 공유되지 않던가? 우리는 시인과 연결되어 그들의 견문을 배울 수 있고, 실제로 활용할 수도 있다. 약간의 훈련만 필요할 뿐이다. 같은 것을 보면서도 얼마만큼 감동할 수 있느냐가 삶의 풍요와 빈곤을 구분 짓는다.


나는 주로 인문학적 통찰을 독서를 통해 얻는 편이다. 나에게 독서는 인문학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인 셈이다. 다행히 세상에는 미리 이 영역을 경험하고 전파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이 방식이 삶에 얼마나 유용하고 가치가 있는지 알려주고자 한다. 우린 그들이 쓴 좋은 책을 찾아 읽으면 된다. 물론 삶은 비즈니스가 아니므로 되도록 문학작품을 선택하고, 진실한 글을 쓰는 작가를 찾는다. 나는 한 작가에 빠져들면 그 작가가 쓴 모든 책을 사서 읽는 편이다.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씩의 정독을 통해하며 책 속에서 저자를 만나다 보면 그의 삶이 내 안으로 송두리째 들어온다. 우린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이미 책을 통해 아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 작가와 충분히 친해졌다고 생각되면 그가 추천한 다른 작가의 책을 읽는다. 나는 이것을 책의 '꼬리물기'라고 칭한다. 이 역시 신기하게도 연결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모든 것이 연결되는 만물 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 세상이 될 것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과도 같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개발자들은 새로운 과제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 흐름은 지금보다 거세질 것이며,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나는 이 변화의 속도가 거세질수록 개발자들은 필히 인문학을 익혀야 한다고 본다.


인문으로 넓어진 주변 지식은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도움될 것이다. 단편적으로 봐도 고객의 니즈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서비스만이 살아남는다.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물은 철저하게 시장으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기계가 해소해주는 시대에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는 개발자만이 최고의 성과를 창출할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산업인 IT 서비스업은 여기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점점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의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분야는 타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내가 종사하고 있는 제조 분야 역시 기존 시스템에 센서 기술을 접목한 데이터 분석 기법을 도입하고, IoT와 접목한 자동화 설비를 도입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으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조만간 스마트 제조(smart manufacturing)는 현실화되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이다.


모든 것들이 기묘하게 연결되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는 시대에서 우리 개발자들은 이미 연결의 중심에 서 있다. 어쩌면 이 나는 급격한 기술발전을 체감하고 내 직업과 개인적 삶의 부적합을 인문학을 통해 극복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늘 새로운 변화를 이끌며 현재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개발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이  좀 더 진실한 시각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 있길 바란다.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최대 가치는 언제까지나 인간의 행복이었으면 한다. 이것이 나만의 바람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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