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태형 Mar 09. 2020

삶의 의미를 찾아서

여기에 삶의 의미를 찾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젊어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가족에 헌신했다.  

그런 그가 은퇴하고 자식들은 성인이 되어 분가할 때쯤 삶의 허무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돌아보니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내 인생은 이렇게 지고 마는 건가?" 

"내 삶은 단지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도대체 내게 주어진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의 고민은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았고, 결국 가족을 떠나 길을 나서게 된다. 


그렇게 지구 곳곳을 누볐다. 심적으로 지치고 육체적으로 쇠약해진 그는 마지막으로 히말라야 동굴에 살고 있다는 유명한 현자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고 간절한 눈빛으로 묻는다. 


현자시여, 저는 삶의 의미를 찾아 먼 길을 여행했고,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저는 지금 거의 죽을 지경입니다. 

제발 부탁이니, 제게 삶의 의미를 이야기해주십시오. 

현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삶은 강이다."


잠시 고민하던 남자는 일어서서 현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저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는데, 당신이 말해줄 수 있는 게 고작 삶은 강이라는 말뿐입니까? 지금까지 들어본 얘기 중에서 가장 어이없는 말이군요!"

현자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그럼 삶이 강이 '아니란' 말이냐?!"






어떤가? 당신은 삶의 의미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본래 삶의 의미란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는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의미를 찾아 나서지만, 단지 우리에게 삶이 주어졌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마찬가지로 오늘 하루도 주어졌기 때문에 오늘을 사는 것이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이 당연한데도 굳이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려 하기 때문에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그래, 모든 게 그냥 자연의 이치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왜 힘든가?", "우리는 왜 행복해야 하나?", "나는 왜 재능이 없을까?" 등등.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질문을 하지만, 본래부터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고민을 하니 더 고통스러운 것은 아닌가 말이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인정하기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받아들이고 보면 나는 나대로 멋진 구석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누군가 정한 기준을 쫓지 않고 나답게 사는 게 내 인생을 제대로 사는 유일한 방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도 봄은 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