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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태형 Mar 08. 2020

그래도 봄은 온다

봄이 오고 있다.
또다시 오는 봄이었지만, 이번 봄이 특별한 건 지난 겨울이 유독 길었기 때문일 것이다.

땅에서 새싹이 올라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여유 없고
따뜻한 서풍이 우리 뺨을 스쳐도 미소 짓지 못할 정도로 메말랐고
맑은 햇빛에도 옷깃을 여며야 했지만,
그럼에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이 간다는 건 반가운 소리다.

이유 없이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을 안은 채 산책길에 올랐다.
요즘 억지로 외출을 삼가고 있지만, 오늘은 나를 유혹하는 봄볕의 손짓을 외면할 수가 없다.  


그렇게 뛰쳐나온 들판에서 봄기운 깃든, 들뜬 땅을 밟고 있으니 살 것만 같다.
비집고 들어설 수 있을 정도로 헐거워진 흙을 밟고 있으니 내 마음에도 여유가 스민다.

나는 이제야 봄이 왔음에 안도한다.
이제 봄이 왔으니, 다 잘 풀릴 것만 같다.
물론, 이것은 근거 없는 말이었지만, 봄이 오는 이 대단한 일도 근거 없이 일어나고 있으니, 누가 이것을 전혀 근거 없는 일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무릇 대단한 일들은 저절로 일어나는 습성을 갖고 있다.
누구는 성공이 자신만의 노력으로 달성되는 것으로 인식하겠지만, 그 역시 때가 되어서 일어나는 것뿐이니
거창할 것 없이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그러하니 우리 이 봄기운의 평화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봄은 새 생명의 계절이니, 우리 어두운 기운을 떨쳐내고 기필코 오는 이 봄을 두 팔 벌려 끌어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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