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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작은 관심이 목숨도 살린다

by 엄태형 Mar 10. 2025



한 중년의 남자가 죽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죽음을 도울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흙을 덮어줄 사람을 구할 정도로 완벽한 죽음을 구상했다. 그때 만난 사람이 노인이었다. 노인은 중년 남자의 조력자가 되기로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젊어서 결혼했다오. 아주 가난했지. 산적한 많은 문제들이 있었고, 무엇하나 해결하기 어려워 보였지.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오. 어느 날 아침 동이 트기 전, 밧줄을 차에 싣고 평소에 봐둔 나무로 갔지. 나는 나무에 밧줄을 걸기 위해 던졌소. 그런데 잘 걸리지가 않는 거야. 하는 수 없이 나무에 기어 올라가서 굵어 보이는 가지에 밧줄을 단단히 동여맸지.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마침 그 나무가 체리나무였던지라, 체리가 가득 달린 거야. 나는 하나를 따 먹었소. 과즙이 가득했지. 그렇게 나는 두 개, 세 개를 먹었지.

그때 산등성이에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소. 나는 그 태양을 쳐다보았지. 그러는 동안 멀리서 학교에 가는 아이들 소리가 들렸고, 아이들은 가다 말고 서서 날 쳐다보더니, 나무를 흔들어 달라는 거야.

나는 나무를 흔들어 주었소. 체리가 떨어지자 아이들은 깔깔대며 그걸 주워 먹었지. 나도 나무에서 내려가 체리를 주웠소.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아내의 입에도 체리를 넣어주었지.”





이 이야기는 <체리향기>라는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노인은 중년의 남자에게 자신을 죽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화 속에서는 자살하려던 남자가 어떻게 됐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가 살아 남아 세상의 밝은 면이 공존함을 깨닫게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생각까지는 아니어도 현재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중년은 많다. 나 역시 그렇다. 내 뜻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일들이 나를 공격하고, 내가 막아서기에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 작은 모래성을 지키려 애쓰는 어린아이처럼, 내 노력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 마흔의 열병이 심하게 파도칠 때, 내 마음을 돌린 건, 지인이 건넨 “넌 잘하고 있어.” 단 한마디였다. 내 모든 걸 인정하는 그 말 한미디를 지금도 간직한 채, 만만치 않은 시기를 넘어가고 있다.


나는 이런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시기가 마흔이라고 생각한다. 청춘의 시기를 막 넘어와 방심하고 있는 시기, 익숙지 않은 변화가 수없이 일어나는 시기, 아직도 갈 길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는 시기이기에 더욱 방황하고 외로워질 수 있다. 이런 시기엔 마흔끼리 서로를 보듬고 위로해야 한다. 세상은 각자도생이든 뭐든 떠들어 대지만, 삶을 놓고 ‘생'을 논할 수 있는가? 각자 살아가기에 바쁘지만, 주위 사람을 위한 작은 관심, 한마디 말, 작은 미소를 건넬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아직 세상은 아름답다.



끝으로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싶다.

“당신이 있어, 나는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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