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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술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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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emoon Feb 01. 2022

술을 예찬하지 않아요.

<영롱보다 몽롱> 북 토크를 다녀오고 생각한 점

진경아 혹시 합정역 근처에 갈 만한 와인바 있을까?


 카카오톡 알림 창에 오랜만이라 더 반가운 이름이 올라온다. 대게 가벼운 안부를 주고받은 후 술집 추천을 물어온다. 술과 술집을 추천하는 일은 흡사 그 사람에게 생일 선물하는 마음이다. 상황에 따라 술자리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기에 언제 누구와 가는지 간단히 되물어본다. 그 사람의 평소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알고 있다면) 함께 고려해서 최선의 선택지를 공유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부디 만족스럽길 바라며 이터 베이스를 충전하는 시간을 갖는다.


 어느 영역에 덕질하기 시작하면 그 세계에 깊이 몰두하며 취미 이상의 지식을 쌓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세상을 돌볼 여유는 줄어들게 된다. 적어도 남들보다 적은 에너지를 타고난 나에겐 그랬다. 흔히 말하는 취미 부자는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bethe1moon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며 20대 여성 평균 대비 많은 술을 마셨다. 콸콸 마시던 중반 시절에는 주 5일을 연달아 마셨던 적도 있다. 술이 나의 전부는 아니지만 클라우드 용량의 20% 이상은 술과 음식 사진이기에 분명 일반인 이상의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술이 가장 좋은 이유는 그 무엇보다 낭만적이다. 식도를 타고 들어온 후의 몽롱한 기분은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닌 듯한 존재감을 만들어주었고, 시시콜콜하게 주고받는 이야기, 한 집단의 문화이자 세대를 이루는 술의 다양성과 역사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들으면 가치를 느끼게 된다. 깊이 응원하는 마음으로 첫 사회생활을 주류 업계에서 출발했고, 퇴사 후 반년의 공백기 다음 커리어 역시 주류 업계에서 시작한다. 가격과 맛이 비례하지는 않지만 비싼 만큼 맛있는 술은 존재하기에 열심히 돈 벌어서 이 세상 모든 술을 마셔보는 것이 내 꿈이자 소망이다. 나와 술의 관계는 딱 이 정도만큼 엉켜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을유 문화사의 신작 <영롱보다 몽롱> 광고를 보고 홀린 듯 바로 구매했다. 2022년 술 에세이 출간을 앞두고 있는 만큼 남의 술 책에 관심이 많다. 더군다나 해당 책은 저명한 소설가, 에세이스트, 시인의 글로 구성되어 있어 수준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2022년 1월 13일 마포구 진부책방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1시간 30분 거리의 북토크도 참석했다. <우리 여성 작가 12인의 이토록 사적인 술 이야기>를 주제로 2~3명의 작가분들이 돌아가면서 행사를 진행한다는 점도 재밌었고, 모든 행사를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송출하며 독자와 꾸준한 소통을 이어가는 출판사의 마케팅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허나 사실을 고백하자면 책을 구매하고 읽지 않아서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모르고 갔다. 현장에서 알게 된 다소 충격적인 사실은 예찬 글이 아닌 비주가의 글이었던 것이다!


 내가 몰두하고 있는 세상에서 한 걸음만 물러서서 반 걸음만 방향을 틀어도 새로운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덕질의 세계는 비슷한 결의 사람들의 집합체기에 동질감에서 기인한 편안함과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나 덕업을 했던 나로서는 내 영역 밖의 사람을 많이 만날 일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퇴사 이후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며 나의 세계가 찢기고 단단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무튼, 술에 관한 책을 쓰고 '사실은 저 술을 싫어해요'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 1시간 반 가량의 북토크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북토크에 참석한 시간 이상으로 더 많은 시간을 곱씹어 보며 술과 나의 연결고리를 형상화해보았다.


왜 그랬어? 대체 왜 그랬니?(p.208)


 그렇지, 우리 사회는 술자리와 취기에 유달리 관대하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비주가 관점의 북토크 내용에 몰입하기 시작하며 술에 가장 어울리는 비유를 상상했다. 술은 어린아이가 쥔 칼이 아닐까? 칼 자체는 생활에 필요한 용품이지만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호기심이 부적절하게 작동했을 때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는 위험한 대상이다. 과거의 술자리에서 힘들고 아팠던 기억으로 술을 인생의 큰 영역에 두지 않는다고 말한 박소란 시인은 내가 잊고 있었던 칼 끝에 베인 상처를 짚어보게 해 주었다. 흉터를 보고 나를 탓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 적절한 치료로 아물게 하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조심할 수밖에. 좋아하는 감정의 무게만큼 책임이 따르기에 '술' 타이틀을 달고 살면서도, 이제는 술이 너무 좋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하지만 끝에 반전이 있으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런저런 술자리를 거치며 나만의 술 오답노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몇 년 동안 내재화한 것도 있는데 현재의 파트너와 실수를 반추하는 과정을 통해 행동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지만 자존감이 너무 높으면 외면하게 되고, 너무 낮다면 자책하게 된다. 이도 저도 아닌 나는 자존심을 살짝 버린 뒤, 약간의 수치심을 떠안고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중이다. 이를 통해 한 끗의 실수도 줄여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주류 생활을 영위해가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술을 예찬하지 않게 되었다. 아래의 몇 가지 원칙 하에 필요한 만큼 조절하면서 마시는 생각보다 진지한 관계를 이어가는 중이다.


1. 낯선 사람 혹은 첫 번째 만남 약속에서 "술 한 잔 할래요?"를 먼저 말하지 않는다.(케바케지만 알코올 농도가 낮으면 상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기억할 수 있다)
2. 연속 2회 이상의 음주, 간헐적 음주는 최대한 지양한다!(간 건강은 가장 악화되었을 때야 증상이 나타난다)
3.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주량 조절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판타지로 느껴지는 취중 고백이니, 술 한잔에 묵직하게 주고받는 진심 등이 모험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취기를 빌리지 않았을 때 비로소 성장하며 더 많은 걸 이루어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술자리에만 있는 진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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