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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Jun 28. 2019

우리는 때때로 방향을 잃기에

영화 '칠드런 액트'를 보고

'보편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과 사건'

영화의 원작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어쩌면 이안 매큐언이 현재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이유는 그러한 소재를 무게감 있고 지적으로 다루는 걸 가장 잘하는 작가라서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진 원작을 봐야겠단 생각은 딱히 없었는데 감상평을 어떻게 쓸지 감이 안 잡히기도 했고 이안 매큐언이 직접 영화의 각본가로 참여하면서 소설과는 다르게 각본을 구성했다는 점도 꽤 흥미로워서 주말 동안 후다닥 읽었다. 결론적으로 이왕 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면 소설도 함께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사건은 우아한 침묵과 절제된 감정선에 따라 진행되며 이런 경향은 소설보다 영화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영화를 보면서 의문을 품었던 혹은 대충 짐작하고 있던 부분이 책을 읽고 나니 명료하게 정리된다.

*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됐습니다.

무시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아동의 양육과 관련한 사안을 판결할 때······
법정은 아동의 복지를 무엇보다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 아동법(1989) 제1조 (a)항

가정법원의 판사 피오나는 남편 잭에게 바람을 피우겠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듣는다. 종일 일에 치이는 피오나와는 더 이상 뜨거운 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점이 그 이유이다. 여기서 쉽진 않지만 최대한 노년을 향해 가는 중년의 판사에 감정을 이입해봤다.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사람은 최소한 본인 스스로는 올바른 또는 흠 잡히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실상은 그렇지 않아도) 그런 믿음이 깔린 와중에 가장 가까운 이에게 '내 일탈은 네 행동의 근간에 있다'라는 공격을 받는 건 어떤 기분일까? 처참하고 처량하다.

    최대한 직업적 냉정을 되찾아보지만 피오나의 사적인 영역은 공적인 영역까지 침범한다. 그러던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수혈을 거부하는 애덤 헨리라는 소년의 사건을 맡는다. 소년의 부모는 죽음 앞에서도 아들의 종교적 신념을 꺾을 수 없다 주장한다. 피오나는 판결을 내리기 앞서 정말로 그러한지 알아보기 위해 병원에 있는 애덤을 직접 만나보기로 한다. 드물고도 별나게.

    병상에 누워있던 창백한 피부의 소년은 피오나를 보고 흥분한다. 병에 대한 비관에 빠지거나 경계심을 가질 법도 한데 천진난만하게 판사님을 어떻게 불러야 하냐며 묻는다. 그녀는 보통은 '마이 레이디'라고 불리지만 이름을 말해도 된다고 답한다. 소년은 단호하고도 신난 얼굴로 마이 레이디라 부른다. 피오나는 현 상황에 대한 애덤의 생각과 의지를 묻는다. 혹여나 소년이 낭만적인 죽음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제각각 심란한 상황에 놓인 피오나와 애덤은 그 순간만큼은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급기야 애덤의 기타 연주에 맞춰 피오나가 노래를 부르기까지 한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공적인 세계로 넘어온 그녀는 애덤의 생각은 확고하나 아동법(칠드런 액트)에 따라 병원 측이 요구하는 수혈을 허용한다.

    그렇게 애덤의 일을 정리하고 위기에 빠진 부부관계도 화해든 이별이든 끝을 맺으면 좋으련만. 2가지 모두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수혈로 건강을 되찾은 애덤은 피오나가 마치 구세주인 양 편지를 거듭 보내고 스토킹에 가깝게 쫓아다닌다. 남편과의 관계로 이미 그녀가 일군 공적인 세계에 균열이 생기는 중에 이러한 애덤의 행동에 피오나는 그저 혼란스럽다. 잭이 그토록 외치는 '뜨거운 관계'의 주체로서, 한때 아이를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애덤이란 소년이 주는 파장은 결코 무시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기에.


Rudderless

문득 작년 시사인 영화제에서 러덜리스 GV를 진행하면서 배순탁 평론가가 꺼낸 말이 생각난다. 삶을 살수록 선택할 수 없는 게, 비난할 수 없는 게 많아진다는 걸 깨닫는다고. 어쩌면 경계선을 긋는 게 업이라 할 수 있는 피오나가 정작 자신의 삶에선 쉽사리 선을 그을 수 없는 상황이란. 우리가 AI였다면 이를 비난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나약하고 간사한 인간인 것을. 참 공허함과 아이러니로 가득한 영화란 평과 함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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