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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Jun 22. 2019

부딪히거나
부딪혀지거나

영화 '미드 90'을 보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이하 JIFF)에서 단연 제일 기대했던 작품은 미드 90(2018)이다. 배우 조나 힐의 입봉작 이기도 하고 요즘 가장 핫한 제작사인 A24의 신작이며 나이 대비(?) 사연 많은 페이스의 써니 설직의 주연 영화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를 고른, 나의 대외적인 입장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분위기의 JIFF의 상영작 대다수가 내게는 거리감이 느껴졌고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들이 참여한 작품을 몇 개 추려보니 남는 건 스타워즈,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그리고 이 작품이었다. 

    그러니까 티켓팅할 영화를 살펴보면서 이 영화를 찾아냈을 때 심정은 마치 낯선 이들로 가득한 고교 동창 결혼식에서 한 때 친했던 동창을 마주친 느낌, 복학하고 들어간 강의실에는 새내기로 가득한데 구석 한편에 나처럼 갈 곳을 잃은 눈빛을 하고 있는 동기를 발견한 순간. 정말이지 반가웠고 세상 든든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감상은 어떠냐고? 그렇게 만난 친구랑 옛날 얘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웃고 울고 떠든 기분이다. 


우린 각자의 인생이 최악같겠지만 다른 사람의 사정을 알고보면
내 인생과는 맞바꿀 수 없을 거야. 그러니까 가자.

영화는 90년대 LA를 배경으로 13살 소년 스티비의 여름을 다룬다. 그는 엄마와 형과 함께 살고 있다. 엄마는 일하기 바쁘고 형은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자신을 흠씬 때린다. 집에선 거의 방치된 채로 또래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스케이트장을 누비던 레이 무리를 마주친다. 그들이 보드를 타는 모습은 자신의 처지와 달리 퍽 자유로워 보인다. 나보다 더 성장한 듯한 사람들 간의 공고한 유대감. 친구가 필요한 소년에게 그보다 더한 바람이 있을까. 다행히(?) 레이 무리는 스티비를 받아주고 애정을 갖고 그를 대한다. 그렇게 스티비는 인생에 있어 처음이자 가장 뜨겁고 자유로운 여름을 맛본다. 내가 살아왔던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 담배를 피우고 어른들이 정해놓은 규칙을 흩트리고 엄마를 실망시킬 일. 

처음에나 두렵지. 아이덴티티의 지향점이 착한 막내아들에서 말 좀 통하는 친구로 바뀌는 순간 엄마에게 자신의 비행이 들키는 것보다 레이 무리와 멀어지는 일만이 무섭다. 그래서 스티비는 힘껏 부딪힌다. 내가 유일하게 숨통을 트일 수 있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작렬하는 태양빛에 눈이 따갑고 피부가 벚겨져도 말이다. 


뜨겁고 자유로운 여름, 
처음으로 맛보는 달콤한 일탈
Morrissey 노래로 성장 영화 배경음 까는 건 치트키 아닌가

문득 궁금해졌다. 내게 처음으로 뜨겁고 자유로웠던 여름은 언제였을까.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쿨한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 일탈을 저지르던 짜릿한 순간, 그 사실이 부모님께 들켜질까 전전긍긍했던 순간. 나의 자유를 침범하는 존재에 쉽게 압도되어 울분에 찼던 순간. 언제 생겼는지 도통 원인을 모르겠는 흐릿한 흉터처럼 선명히 떠오르진 않지만, Morrisey의 We'll let you know가 깔리면서 능숙하게 타는 스티비의 모습에, 그의 유연한 단단함에 비로소 안도되는 걸 보면, 나도 그 과정을 거쳤고 버텼겠지 싶다. 어쩌면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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