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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Dec 24. 2018

투박하고 섬세한 온도의 우정

영화 '그린북'을 보고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로 제공되는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겨울을 썩 좋아하진 않으면서도 으레 설레곤 한다. 첫눈, 캐롤, 재즈, 반짝거리는 전구 그리고 이맘때면 아카데미나 골든 글로브를 노리는, 소위 잘 빠진 영화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비록 수상작들이 캠페인에 따라 결정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여전히 무슨 영화가 어떤 즐거움을 줄지 기대하게 된다. 영화 그린 북(2018)은 그런 기대를 품게 되는 영화 중 하나로 포스터에 대문짝만 하게 적혀있듯이 이미 여러 부문에서 후보로 지목됐다. 게다가 비고 모텐슨과 마허샬라 알리가 주연이라니까 둘이 무슨 짓을 하건 스크린을 꽉 채우는 매력은 확실하겠지 싶었다. 결론적으로 영화 자체는 아주 매끈하게 잘 빠졌다. 달리 말해서 두 배우의 팬이라면 괜찮은 작품이라는 점은 보장된 영화였다.


이건 꽤나 까칠한 여정일 것이다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은 허풍과 주먹을 무기 삼아 되는대로 벌어서 되는대로 먹고 산다. 거칠고 투박해 보이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아빠이기도 하다. 일하던 클럽이 문을 닫아 당분간 밥벌이할 만한 구석이 없었는데 마침 어떤 높으신 박사 양반의 운전기사 일을 소개받는다. 휘황찬란한 카네기홀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치렁치렁 이상한 복장의 흑인 남자가 나타난다. 그의 이름은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로 시종일관 우아한 태도로 그에게 말한다. 일단 자기는 박사가 아니고 피아니스트이며 동부에서 중서부, 남부까지 투어를 돌건대 운전기사 겸 보디가드가 필요하다. 그런 상황에서 흑인 밑에서 일할 수 있는지,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집사 노릇도 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들이 살고 있는 1960년대는 흑인 해방 운동이 진행 중이었던 시기였고 즉 돈 셜리는 그의 직업과 지위와 별개로 차별과 멸시의 대상인 것이다. 특히 남부로 갈수록 그는 더욱 위험에 처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사실 토니도 그 시대에 만행되는 차별로부터 깨어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애써 흑인 밑에서 일하는 건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그러나 집사 노릇은 못한다며 자리를 박찬다. 그런 그에게 매력이라도 느꼈는지(?) 전화를 걸어 무작정 아내 돌로레스(린다 카델리니)를 바꿔달라 부탁한다. 그리고 앞으로 크리스마스 전까지 그를 빌려도 되냐고 묻는다. 돌로레스는 퍽 섭섭하긴 하지만 괜찮다며 대신 두 가지 조건을 내건다. 크리스마스날에는 꼭 돌아오고 여행하는 동안 종종 편지를 써줄 것. 글재주가 없는 걸 알면서도 부탁을 거는 아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운전기사 노릇을 하러 그의 거처로 찾아간다. 소속사에서는 선금과 함께 '그린북'을 건넨다. 그건 지역마다 안전하게 묵을 수 있는 숙소나 식당 등이 적혀있는 흑인 여행자들을 위한 여행지침서였다. 그렇게 두 남자의 여정이 시작된다. 공통점이라곤 남자라는 성별, 주류 기득권층은 아니란 점 말고는 딱히 없는 둘이 말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천재
천재의 마음을 움직이는 용기

    그런 둘이니 하루 종일 도로 위에서 시간을 보내면 부딪히지 않으래야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돈 셜리는 늘 평생을 우아하고 기품 있게, 격식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았던 사람이라 무법자에 가까운 토니의 행동들에 식겁하면서 대립각을 세운다. 토니는 뭘 그렇게 까탈스럽게 구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 양반이 엄청난 예술가인 건 알겠다. 그의 연주는 일자무식인 자신에게도 아름답게 들리니까. 그런데 어째서 저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토니는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돈 셜리도 궁시렁대긴 해도 한 번 시킨 일은 꼬박 해내고 곤경에 처한 자신을 무슨 수를 써가면서 구해내는 토니를 보며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처음엔 경악스러웠지만 맨 손으로 치킨을 뜯어먹는 그를 따라 해보기도 하고, 아내와의 약속이라며 끙끙거리며 엉망진창인 편지를 쓰는 모습에 안타까워 도와주는 걸 보면 말이다. 확실히 동부를 벗어날수록 크고 작은 해프닝이 발생하게 된다. 그린북에 나와있는 대로 숙소를 찾아가 봤더니 영 돈 셜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허름하고 낡은 모텔이 나오질 않나. 그가 아름다운 연주를 하건 말건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위협당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익숙한 듯 넘어가는 돈 셜리를 보며 이해가지도 않고 어쩔 때는 자신이 더 분통 터져하기도 한다. 그렇게 전혀 어울리지 않던 둘은 어느새 전우애에 가까운 우정을 쌓는다.

출처: 네이버 영화

    어느덧 마지막 공연 날이자 크리스마스이브날, 호텔 투숙객에게 아름다운 연주를 선사하는, 그런 마무리를 기대했건만 대기실이라고 해봤자 창고에 가까운 곳을 안내해주질 않나. 심지어는 호텔 지배인은 흑인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 없다고 막아선다. 공연은 가능하지만 식사는 불가능하다는 아이러니에 실랑이를 벌이다가 둘은 호텔을 나서고 끼니를 때울 겸 호텔 지배인이 얼핏 얘기한 '흑인이 식사 가능한' 선술집에 들어선다. 비록 고급 호텔에서 예정된 연주는 할 수 없었지만 흑인들 사이에서 가장 흑인답지 않은 돈 셜리는 흑인답지 않은 클래식 곡을 연주한다. 누구든 쇼팽을 칠 수 있겠지만 자신은 쇼팽을 가장 잘 치는 흑인이니까.


마무리하며

    각본과 연출은 깔끔했고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웃기고 감동적이었다. 인종차별이 만연한 시대를 이렇게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게 적당한 완급조절로 그려내는 게 대단하다고 느꼈다. 영화 중간에 돈 셜리가 토니에게 얘기한다. 폭력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어느 순간에도 품위를 지켜야 한다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 영화 자체가 그의 말대로 품위를 지키며 이기는 법을 고수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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