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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Dec 27. 2020

2020년을 마무리하며

어쩌면 마무리 지어진 걸 수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피했을지언정 코로나 블루는 피하지 못해서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위태로운 한 해를 보냈다. 어쩌다 한 번 나눈 안부 전화는 약한 생채기를 남겼다. 내가 별 다른 도움을 줄 수 없는 종류의 속상한 이야기 혹은 감정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페스티벌, 공연, 전시회를 못 가는 게 너무 답답했는데, 이를 터놓고 불평할 수도 없었다. 이 정도의 불편함은 누군가에게 배부른 소리였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더 촘촘히 연대를 맺고, 나만 겪는 게 아니라는 자기 최면으로 위안을 구걸하며 2020년을 어찌 저찌 마무리했다. 아니 어쩌면 마무리 지어졌다. 속상하고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너무나도 많지만, 언제는 또 만사가 뜻대로 됐나. 누가 그러더라. 2020년엔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엄청 대단한 일을 한 거라고. 그래서 무기력을 딛고 글을 써보기로 했다. 살아남는 와중에도 무엇을 했고 앞으로는 무엇을 할 건지. 

2020년의 크고 작은 이슈들

1. Career

이직을 했다. 사실 전 직장은 대기업이란 제2의 졸업증명서를 따기 위해, 사회초년생 치고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들어간 곳이다. 1억 모으기가 목표였고 2020년에는 달성할 거 같았는데 마침 딱 맞아서 미련 없이 나왔다. 근데 나와보니까 목표한 바보다 얻은 게 많았다. 좋은 동기들, 큰 조직과 시스템에 대한 이해, 엑셀 잡기술 등. 심리적, 육체적인 건강을 잃기도 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지금은 사다리보다는 정글짐에 가까운 스타트업에서 커리어의 저변을 넓히고 있다. 얘는 마케터인가, 서비스 기획자인가. 기획자 맛 마케터라고 해야 하나. 회사에서 사활을 거는 중요한 프로젝트라고는 하는데, 문제는 맡길 만한 사람이 없단다. '이번 팀플에 조장하실 분?'이란 질문이 주는 어색한 분위기에 못 이겨 손을 드는 피동적 공리주의자는 이런 상황에 제일 취약하다. [Fwd: 1) 중요한데 2)할 사람이 없대.]

    그래서 비개발자가 개발 무서운 줄도 모르고 용감하게 회사 Web을 기획부터 운영까지 전반적인 과정을 주도했다. 개발자들 입장에선 내가 제일 무서웠겠지만. 허허. 회사에서는 프로젝트 어땠냐고, 원래 포지션이랑 다른 업무 맡는 거 괜찮냐고 여러 번 물어봤는데 그때마다 내 답은 같았다. '어쩌겠어요. 지금 이 회사에선 제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많은 걸요.' 이런 상황이 오래 가면 번아웃이 올 거라는 경고를 덧붙이면서.

    어떤 회사에서 오래, 만족스럽게 일하려면 보상, 복지, 네임 밸류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회사와 나의 속도가 맞아야 하는 거 같다. 속력도, 방향도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이어야 할 텐데, 그게 어긋나면 관성으로 매일매일 회사를 존버 하며 다니는 느낌. 너무 당연한 소리고 나에 한정된 얘기일 수도 있지만, 다시 한번 되새김질해본다. 회사와 나의 속도! 

2. Favorites

옛날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험을 주로 좋아했는데 그걸 못하니까 2020년엔 돈을 사랑하게 된 거 같다. 좀 더 주식에 재미를 품고, 신나게 해외 직구를 했다. 충동적으로 산 물건들은 당근마켓에 열심히 내다 팔았다. 흑흑. 여전히 돈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좋아하겠지만 그래도 2021년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험을 더 하고 싶다. 점점 내 취향을, 내가 뭘 좋아하는 지를 까먹는 거 같아서 마음이 헛헛하다. 전시회를 둘러보고 어떤 굿즈를 살지 고민하는 마음, 극장에 갔을 때 오프닝 크레딧이 뜨기 직전 설레는 마음, 인천공항 입국심사장을 들어갈 때 들뜨는 마음들이 너무나도 그립다. 


3. Family and Health
이번 겨울에는 친척 한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빠와 비슷한 나이였던 분이라 부모님이 꽤나 마음이 어지러우셨던 모양이다. 갑자기 가족사진을 찍자거나, 본인들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소리를 하시는 걸 보니. 그래서 2년 전 스위스에서 스냅을 찍었던 사진을 대형 액자로 만들어 보내드렸다. 아이거 북벽과 초록 초록한 그린델발트 배경의 가족사진.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올해 이거 하나는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이 걱정돼서 자주 뵙지 못하는 아이러니로 가득한 2020년이었지만, 잘 버텨주셔서 감사하다.

    2020년 초반엔 필라테스도 하고 종종 운동도 했는데 하반기로 갈수록 내키는 대로 먹고 누워 다녀서 얼굴이 동글동글해졌다. 얼굴은 가장 늦게 살찌는 부위(?)이기 때문에 이는 마지막 한 발 남은 경고탄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이어트는 연말에는 심도 높은 검토를 마친 다음에 다음 해 1월 1일부터 하는 게 국룰이라지만, 나는 지방과 거리두기를 좀 더 빠르게 격상하기로 했다. 당장 배민 앱을 지워버렸고 구글 시트로 1월의 식단을 짰다. 냉동실에 있는 닭가슴살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거둬줄 것이며 냉장고 파먹는 행위에 당근마켓급 UX를 찾아야지. 


2021년의 크고 작은 목표들

1. 꾸준히 좋아할 수 있는 일 1가지 찾기

2.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기
3. 바디 프로필 찍기

4. SQL / GA 자격증 따기

5. 어학 공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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