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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Nov 19. 2018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하게 만드는 노래들

한허리를 베어낼만큼 밤이 길어진 계절이라 그만큼 마음에 빈틈이 생기는 순간이 많아진다. 그 틈 사이사이로 노래 가사가, 시 구절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스며들어서 감성을 넘어 감상적인 순간도 많아졌다. 하다못해 엊그제는 한강으로 산책을 나간 친구가 달이 참 노랗고 예쁘다는 연락에 서둘러 한강으로 향했다. 감기 걸리기 좋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친구 말대로 달이 참 예쁜 밤이라서 들뜨기 시작했다. 자전거 전용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망원에서부터 이촌까지 자전거를 타는데 어찌나 벅차던지. 그 순간만큼은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의 화자가 된 느낌이었다. 너무 근사하고 신나서 내 마음에도 환한 달이 떠오르는 듯한. 그 밤에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듣고 있자니 벅찼던 마음이 밀려와 글로도 남겨보려 한다.



♬ 달빛 아래 몽글몽글한 기분이 드는

1. Virginia Moon - Foo Fighters ft.Norah Jones
2. The Summer We Crossed Europe in the Rain - Stacey Kent
3. Kiss Me - Sixpence None the Richer
https://www.youtube.com/watch?v=gVJ_UQJ87lQ

Virginia Moon - Foo Fighters ft.Norah Jones 'Dearest Constellation, Heaven surroundin' you'으로 시작하는 가사만 듣고 노래 제목을 검색해봤는데 Foo Fighters가 나와서 살짝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워낙 강렬한 락 밴드 이미지가 강해서 이토록 낭만적인 노래도 했다는 게 놀라웠다. 노라 존스와 함께라면 그게 가능한가 보다. 우리의 어둠은 당신의 빛으로 그림자가 되었다는 지극히 낭만적인 가사에, 데이브 그롤과 노라 존스의 환상적인 화음에 사랑에 빠진 착각이 들 정도다.

The Summer We Crossed Europe in the Rain - Stacey Kent 이 노래는 가사가 참 다정하고 따뜻하다. 일상에 지친 상대방에게 치기 어리던 시절로, 지난여름 빗 속의 유럽을 거닐었던 때로 돌아가 보자고 제안한다. 호텔 발코니에서 쏟아지는 비를 보았던 기억, 따뜻한 햇살이 살포시 앉은 대성당에서 따뜻한 바게트를 나눠먹던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 당장 하자기엔 허무맹랑할 수도 있지만 다 좋으니 바보가 되어보자고 잠깐만이라도 내려놓자고 한다. 어쩌면 이 말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위로받겠단 생각이 든다.

Kiss Me - Sixpence None the Richer 앞서 두 노래보다 살짝 유치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만큼 배실배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인트로도 없다. 보리밭에서, 황혼 아래에서 키스를 해달라는 부탁도 귀엽고 달빛 아래 반딧불과 함께 춤추는 둘의 모습을 상상하자면 너무 순수하고 사랑스러워서. 볼 빨간 소년 소녀의 첫사랑을 엿보는 기분이 드는 노래다.


♬ 산뜻하게 페달을 밟게 되는

1.Blanc - Adoy ft.George
2.Colour - MNEK ft.Hailee Steinfeld
3.Concil Meetin' - Naomi & Goro
https://www.youtube.com/watch?v=iXfUkdoyL4E

Blanc - Adoy ft.George 여러 매체에서 신스팝 밴드 Adoy가 소개될 때 유독 '청춘'이란 키워드가 자주 보인다. 하긴 노래를 듣다 보면 몽환적이지만 청량한 사운드때문에라도 뭔가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중에서도 Blanc을 고른 이유는 'I am a lover, and just a beggar' 구절 때문이었다. 사랑꾼이지만 동시에 거렁뱅이라는 고백이 이렇게 산뜻하게 들릴 수가.

Colour - MNEK ft.Hailee Steinfeld 뭐랄까 Marvin Gaye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와 유사하단 느낌인데, 두 곡 모두 남녀 듀엣곡이고 사랑이 주는 벅찬 감정을 숨김없이 표출하는 듯한 가사에 통통 튀는 멜로디가 두드러진다.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보였는데 널 알고 나서는 내 세상은 총천연의 색으로 가득 찼다는 가사는 단순하지만 그래서 사랑이란 게 어떤 존재인지 굉장히 정직하게 다가온다.

Concil Meetin' - Naomi & Goro 앞서 두 곡과 달리 가사가 없는 보사노바 풍의 노래다. 가사 곱씹는 일도 좋지만 가끔은 기름기가 쏙 빠진, 담백하게 악기 소리로만 승부하는 곡들이 끌릴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Concil Meetin'이란 곡은 제목과 달리 멜로디는 참 산뜻해서 페달을 마구마구 밟기 좋다.  


♬ 잠깐 멈춰서 한강을 바라보게 되는

1. Moon, 12:04am - OFFONOFF
2. 별 보러 가자 - 박보검
3. Places We Won't Walk - Bruno Major
https://www.youtube.com/watch?v=sp4aLQ2eycQ

Moon, 12:04am - OFFONOFF 잔잔한 분위기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길가에 자전거를 세우고 벤치에 앉아서 불빛이 일렁이는 한강변을 바라본다. '하늘 위로 떠오른 저 달을 보면서 우린 수 없는 밤을 헤엄쳐왔어' 내가 지금 노래를 듣고 있는 건지, 누구랑 통화하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 히히. 한곡 반복으로 한참을 들어야 비로소 다음 곡으로 넘길 수 있거나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는 곡이다.

별 보러 가자 - 박보검 원래는 가수 적재가 부른 곡을 아이더에서 MV형태의 CF를 제작하면서 박보검의 버전으로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각각의 매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박보검의 목소리가 참 포근하게 들린다고 변명을 해본다. 히히. 아쉽게도 서울 하늘은 광해(光害)로 인해 별이 잘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정말로 겉옷 하나 챙겨 들고 별 보러 공기 좋은 곳으로 훌쩍 떠나는 상상을 해본다.

Places We Won't Walk - Bruno Major 'A Song For Every Moon'이란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그 앨범에서 Easily나 Like Someone in Love도 즐겨 들었는데 무엇보다 이 곡을 가장 좋아했다. 라이브로 꼭 듣고 싶었는데 여행 중인지라 얼마 전 내한공연을 가지 못해 퍽 섭섭한 마음에 한동안 멀리했는데 벤치에서 일어서기 직전 우연히 이 노래가 흘러나왔고 춥고 피곤하지만 이건 듣고 가야겠다 싶었다. 워낙 지친 하루를, 충동적인 밤마실을 마무리하기에 제격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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