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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령 Aug 04. 2020

별들에게 위로받는 밤

책에서 얻은 영감으로 머릿속 정리하기

처음 사귀었던 키위인 친구 말로는 뉴질랜드에서 5분 이상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보면 별똥별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과학적인 증거는 전혀 없다.)

오클랜드나 웰링턴, 크라이스트 처치의 시티 중심이 아닌 이상 뉴질랜드의 어딜 가도 별을 잘 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을 하나둘 늘려가고, 반대로 나를 지치고 시들게 하는 순간을 조금씩 줄여가는 것. 나를 위해 그만큼만 할 수 있어도, 매일이 그만큼씩 다행스럽지 않을까.
- 김신지 지음, 책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생각해보면 별을 볼 때만큼 순간의 감각에 집중할 때가 없는 것 같다. 

머리가 복잡했던 날에도 별을 보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밤하늘을 꽉 채운 별들을 보다 보면 새삼 내가 이 우주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생각도 들고, 내가 하루 종일 들고 있던 작은 고민과 걱정들이 사소해진다. 


내가 처음에 자리를 잡았던 곳은 실제 주민이 1000명이 채 되지 않는 관광마을이었다. 주말이나 애들 방학이 아닌 이상 굉장히 조용한 동네로, 슈퍼마켓이 하나뿐이고 레스토랑도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작은 동네였다. 

늦게까지 여는 가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걸어가는 퇴근길에 쏟아질듯한 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거짓말 안 하고 내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서 별을 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처음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날, 밤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세상에나, 여태까지 내가 구름이라 생각했던 것이 은하수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충격이란.. 태어나서 처음 본 은하수에 입을 떡하니 벌린 채 감탄했었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자 친구는 이런 나를 볼 때마다 의아해하곤 했는데, 2년 전 한국에 방문하고 나서야 이해했다. 


뉴질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끝이 나고 워크 비자 승인을 기다리던 때 참 간절했었다. 비자를 신청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3개월간 악몽을 꾸고 탈모가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비자가 안되면 뭘 해야 할지 막막했고, 남자 친구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도 무서웠다. 

그래서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낭설에 기대 퇴근길에 멈춰 서선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별똥별이 떨어지길 기다리곤 했다.

5분 이상 바라보면 별똥별이 떨어진다는 건 확실한 루머였지만, 10번에 한 번 정도는 별똥별을 볼 수 있었고 그럴 때마다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리고 정말 꿈같게도 가장 드라마틱한 타이밍에 비자를 승인받았다. 이날 이후로는 간절한 무언가가 생길 때마다 별똥별에게 의지하곤 한다. 


유난히 힘들 날들이 이어지거나 간절히 원하는 일이 있을 때, 마음이 답답할 때면 별을 가득 볼 수 있는 동네 운동장으로 산책을 가곤 한다. 그리고 가만히 누워서 혹은 앉아서 하늘만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나에게 걱정 말라는 듯 별똥별이 떨어진다.

그럼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다. '아, 걱정 안 해도 되는구나. 이번에도 잘 되겠구나.'

그래서 별똥별을 본 날이면 항상 다이어리에 쓸 말이 가득 생긴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간절히 정성스레 적어본다. 

 

나는 오늘도 밤 산책을 나선다. 하루 종일 갖은 잡념과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으로 지친 나를 위로하기 위해. 혹시 모르지 마지막에 하이라이트 폭죽처럼 별똥별이 떨어져 줄지,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 

별이 가득한 하늘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한 선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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