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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령 Jun 09. 2021

니가 ‘안녕’을 할 줄 안다고 내가 고마워해야하냐

인종차별

인종차별, 참 어려운 주제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두운 머리카락에 대부분 비슷한 눈동색을 가진 비슷한 백그라운드를 지닌 사람들과 유년기를 보냈다.


내 일상에 '외국인'이 들어온건 대학교 때가 처음이었는데, 당시 같은 동아리에 중국인 후배가 있었다. 그 친구는 40명 정도 되는 동아리 내에서 유일한 외국인으로 처음엔 어눌했던 한국말이 급속도로 늘었다. 말 뿐이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은 쉽게 접하지 못했을 한국 문화도 급속도로 빠르게 배웠을 것이다.


내가 한국을 떠나기 직전쯤에야 서울 홍대나 부산 해운대 등 유명 관광지에서야 외국인 관광객을 쉽게 볼 수 있었지, 그 외 다른 공간에서는 외국인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인종차별'이란 나와는 먼 주제였다.

내가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도, 내가 인종차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몸소 느껴보지 못했으니, 생각할 거리가 되지 않았다고 해야하나.


호주와 뉴질랜드에는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다. 처음 해외 거주를 했었던 시드니에는 유러피안만큼 아시아, 아프리카계의 사람이 많았으니 굳이 내가 "마이너"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해외노동자였다. 당시엔 영어를 잘하지 못했기에 나에게 느껴지는 인종차별을 잘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내가 인종차별의 피해자라는 것, 언제든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인종차별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건 뉴질랜드에 살게 된 이후다.

참고로 말하자면 뉴질랜드보다는 호주가 인종 차별로 명성이 높다. 그니까 뉴질랜드라서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를 가도 인종차별은 문제가 된다는 것을 미리 짚고 넘어가겠다.


인종차별이라는 건 단순히 아시아인을 보고 눈을 찢는 등의 직접적인 표현방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카운터에 내가 있음에도 다른 친구들을 보고 주문을 하거나 다짜고짜 나에게 다가와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안녕’을 하고 뿌듯해하며 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난 동물원의 원숭이가 아닌데.. 니가 안녕을 할 줄 안다고 내가 고마워하기를 바라는 건지, 자기가 한국말할 줄 안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던 건지.. 무례한 사람은 수없이 많다.


무서우면서도 답답한 것은 많은 경우, 본인이 하는 행동이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영어로는 Ignorant racism이라고, 무지한 인종차별.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의 유러피안(우리말로 흔히 백인)들이 흔히 행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아시아인의 비율이 현저히 적고 고령층의 유러피안의 비율이 다른 어느곳보다 뉴질랜드에서 높다. 그래서 이러한 인종차별은 시시때때로 무분별하게 일어난다.


나의 남자친구는 20대 유러피안계 뉴질랜드 사람이다. 즉, 금발에 파란(녹색에 가까운) 눈동자를 가진 백인이란 얘기다. 그래서 인종적으로, 성별로 가장 특권을 가진, 인종차별과는 가장 먼 거리에 속해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남자친구와 내가 다르게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다행히도 남자친구는 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 여성 차별 등의 문제에서 굉장히 깨어있다. 우리는 이와 관련된 얘기들을 자주 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특히 나는 인종적으로, 성별로 차별을 당하는 입장에 있다보니 남자친구는 내가 경험하는 것들에 충격을 받기도 하고, 때때로 내가 느끼지 못하는 차별을 본인이 옆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피해자가 되고 나니 이 무거운 주제에 대해 더 자주, 오래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나 뭐가 문제인지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그 사람들을 이해시켜야하는 권한은 내게 없지만 한사람 한사람이 변하다보면 결국 세상은 좀 더 이러한 차별에서 멀어지지 않을지 생각해본다.


물론 뉴질랜드라서, 호주라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나처럼 해외 노동자, 이민자로 계신 분들이 차별이 공공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한민족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역시 인종차별적일 때가 믾았다. 내가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았더라도 내가 하는 생각들이 돌이켜보면 인종차별적인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다. 이렇게 피해자가 되고 나서야 고칠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게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부끄러운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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