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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령 Jul 28. 2020

Where are you from?

인종차별

"Where are you from?"

뉴질랜드에서 국내여행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다.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 때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했었다.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질문인 건가?'

'내가 현재 어디에 살고 있냐는 질문인 건가?'

남자 친구가 간단히 사는 지역을 말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걸 보고, 이는 마치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숙소 주인이 '어디서 왔어요?'라고 물을 때 '서울에서 왔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는 걸 알았다.


주로 내가 관광객인 상황에서 남자 친구와 함께 받는 질문으로, "어느 나라에서 왔어?"라고 해석하기보다는 말 그대로 "어디서 왔어?"라고 해석하고 뉴질랜드의 우리가 사는 지역을 답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를 향해 끈질기게 묻는 사람이 있다.

"Ok, but where are you originally from?"

(그래, 너 거기 사는 건 아는데 뉴질랜드 사람(키위)은 아니잖아.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약간 비꼬아서 해석했지만, 이 질문을 직접 받았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이런 상황이 자주 있지는 않지만 없지도 않다. 




한 달 전쯤 무릎 때문에 병원을 갔다가 약을 처방받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불러서 카운터로 향했더니, 약사가 날 보더니 "Are you a Kiwi?" 하고 위아래로 훑어보는 것이 아닌가.

"I'm a resident." 영주권자라고 답하자 약사는 떨떠름한 표정과 매우 불친절한 약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찝찝한 표정으로 처방받은 약을 받아 나오자 남자 친구가 왜 그러냐고 물어봤고, 짧게 설명하자 내가 인종 차별을 당했다며 본인이 더 분노했다.


생각해보니 영주권을 받고 처음 처방받는 약을 구입하는 것이었는데, 아마 뉴질랜드 시민권/영주권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국가보험혜택을 받았던 것 같다. 

이미 병원에서 다 확인한 후에 의사 선생님이 처방했는데 비언어적, 언어적으로 인종차별을 받았다는 게 억울했고, 그 자리에서 당당히 표현하지 못한 게 아쉬움이 남는다.

나를 인종 차별했던 약사는 인도계 여성이었는데, 그분이 뉴질랜드 사람이든 아니든, 유색인종 사이에도 인종차별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게 굉장히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위에 적은 'Where are you from?'은 인종차별이라기보다는 호기심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한국 사람들도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을 본다면 같은 질문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 이야기를 적다 보니 위의 상황이 떠올랐는데, 질문을 받아서 기분이 나빴다기보다는 그 사람이 내가 키위가 아니라고 생각한 기준이 단지 언어인지? 피부색인지? 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의 일화는 지금까지 당했던 어떠한 인종차별보다 가장 직접적이었고 노골적인 인종차별이었다. 어떠한 나의 잘못도 없이 단지 나의 인종과 겉모습만으로 이런 상황을 당했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차별은 금지되어야 한다. 

이 당연한 질문에 "왜?"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논리 정연하게, 납득 가능하게 설명할 수 있기 위해 고민을 하고 이제야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자주 하는 말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인식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아닌지, 이게 왜 당연한 일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책을 찾아보는 등의 노력을 쏟고 있다. 이제야 사회 공부를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한국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뉴질랜드에서는 '아시아인'(+'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의 대상이 되는 범주에 속해있다. (성차별에 대한 일화는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다.)

사실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는 내가 다수 구성원의 일부였던 한국에서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인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게 존재했었다. 그리고 특별히 기억나는 예시는 없지만, 그렇다고 나 역시 단 한 번도 인종차별을 해본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다.

소수의 집단으로 차별의 대상이 되고, 인종차별을 직접 겪고 나서야 심각성을 인지했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다. 





"Are you a Kiwi?"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봤다. 

뉴질랜드도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처럼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뉴질랜드 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법적으로 뉴질랜드 사람(Kiwi)이다. 

유럽계나 마오리계보다는 훨씬 적은 비율이지만 아시아, 남미, 중동, 아프리카, 사모안, 통가, 쿡 아일랜드 등 퍼시픽계 사람들 등 다양한 인종의 키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종으로 키위인지 아닌지 짐작하는 건 상당히 구시대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단순히 뉴질랜드 여권을 가지고 있다고 키위라고 부르진 않을 것 같다. 

예를 들면, 내 주위에는 뉴질랜드와 영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그중 내 남자 친구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뉴질랜드 사람이고, 친구 A와 B는 영국에서 태어나 뉴질랜드로 이민 왔지만 A는 영국 사람, B는 뉴질랜드 사람이다. 이렇게 똑같이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각자의 경험, 가치관, 정체성에 따라 자신의 국가를 결정한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25년 이상을 산 한국인이다. 앞으로도 쭉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한국 여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갈 것이라는 것에 단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훗날 미래에 이중국적이 허용이 된다면 뉴질랜드 시민권을 신청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굳이 상관없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Are you a Kiwi?"라고 한다면 내 대답은 똑같을 것 같다.

"No, but I'm a res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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