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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령 Jul 03. 2020

단기 방문자에서 거주민으로

10대 때는 서울 상경이 목표였고, 20대 초반에 짧게 해외여행을 시작하며 해외에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필리핀 어학연수를 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준비한다는 걸 처음 알았고,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하며 영주권을 취득한 한국인들을 만났다. 


호주 시드니에서 10개월 동안 살았기에 한국에서의 삶과의 장단점을 몸소 느꼈지만 영주권을 취득해야겠다는 강력한 동기부여를 받지는 않았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호주에서 영주권 혹은 워크 비자를 받아 장기 거주하는 한국인들 중에는 (내가 보기에) 힘든 생활을 견디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하는 농장이나 공장일을 통해 워홀 연장을 하지 않았고 처음의 목표대로 약 1년의 워홀 생활을 채우고 유럽여행을 떠났다.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 처음 왔을 땐 1년을 계획했었고 워홀이 끝날 때쯤 받은 워크 비자도 1년짜리의 단기비자였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 나 스스로를 여행자라고 봤고 거주민이 아니라 단기 방문자의 마음으로 살았었다.

지금은 더 심하지만 호주도 그렇고 뉴질랜드도 그렇고 비자를 받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워크 비자 즉, 일을 통해 영주권을 받기 위한 조건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기 때문에 영주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바뀐 건 키위인 남자 친구와의 관계가 진지해지고 난 이후였다.

사실 만남 초기엔 남자 친구가 영국에서 온 줄 알았고 내 비자가 5개월밖에 남지 않았었다. 운이 좋게 워크 비자가 승인되면서 남자 친구와 단기적인 만남이 아닌 진지한 관계로 발전했다. 워크 비자는 지역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파트너십 비자로 전환했다. 남자 친구와 오래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만큼 뉴질랜드에서 평생 살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고, 뉴질랜드에 온 지  2년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영주권을 신청했다. 이렇게 연애에 일에 쉼 없이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난 뉴질랜드 영주권자가 되어있었다.


2019년 8월 20일 영주권 승인받은 이후 작지만 큰 변화들이 있었다. 

가장 처음 느낀 변화는 더 이상 일 구할 때 비자 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직접 당해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3년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의 고리를 끊어내고 영주권자/시민권자만 모집하는 일자리도 지원할 수 있었다. 


올 초에는 이번 9월에 있을 선거에 참여하는 방법에 대한 편지를 받았다. 선거권은 시민권자에게만 주워지는 줄 알았기에 생각지도 않았는데 편지를 받은 이후에는 뉴질랜드 정치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최근에 무릎 통증으로 병원에 다녀왔다. 영주권 받고 난 뒤 첫 진료였는데 진료비와 약값을 할인받았고, 나라에서 제공하는 백신이나 여러 검사들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동안 크게 병원 갈 일이 없어서 의료제도에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이번에 아프고 나서야 알아보기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뉴질랜드의 많은 사람들은 사기업의 의료보험을 따로 가입하는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듯하다. (ACC라고 사고에 대한 부상을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암, 심장질환 등의 질병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비를 하고 있는지 아직 더 찾아봐야 한다.)


뉴질랜드 국민연금 Kiwisaver에 가입했다. 올초 새롭게 시작한 일자리에서 계약서와 함께 Kiwisaver 가입서를 받고 고민했다. 이전처럼 가입할 조건이 되지 않아 고려도 하지 않는 것과 가입을 할지 말지 선택할 권리가 내 손에 있다는 건 꽤나 다른 느낌이었다. 

Kiwisaver 가입 유무는 선택사항인데, 첫 주택구입을 제외하고는 65세 이후에나 노후자금으로 저축금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고민했다. 그래도 지난 4년간 뉴질랜드에서 집을 살 예정이라면 Kiwisaver를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주워 들었고, 실제로 Kiwisaver에 모아둔 돈으로 새 집을 구매한 친구도 봤기 때문에 일종의 작은 투자라고 생각하고 가입했다.


영주권자가 되면서 받은 권리들을 통해 더 이상 내가 외국인이 아니라 이 나라의 거주민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행자로 살 때 나에겐 뉴질랜드에서 지켜야 하는 의무들만 중요했고 권리나 사회제도에 대해 무지했다.

하지만 이제는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 관심을 갖고 사회제도를 알아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정치제도, 선거방법, 의료제도, 연금, 세금, 각종 보험 등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학창 시절 사회시간을 생각하며 정말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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