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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령 Jun 25. 2020

영어에 대한 고찰

영어, English.

우리나라 말도 아닌데 배워야 한다니까 생김새도, 문법도, 발음도 전혀 다른 언어를 열심히 배워왔다. 

내 기억 속 첫 영어 수업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빨리 감기 하듯 넘어간 기억 속 영어는 수능 때 내 발목을 잡았다. 1, 2등급이 난무하던 내 수능성적표에 유일하게 3을 남겨준 애증의 과목. 


고등학교 때도 가십걸이나 셜록을 좋아했지만 그들의 쓰는 말과 내가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를 연관 짓지 못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건 공부고 내가 보는 이 드라마에서 이들이 하는 말은 내가 전혀 모르는 또 다른 언어 같았다.


수능이 끝나면 다신 안 봐도 될 것 같았던 영어는 대학 전공 교재마다 버젓이 등장했고, 심지어 어떤 전공들은 원서로 수업하기도 했다. 이때까진 영어는 해야만 하니까 하는 공부였다면, 몸소 필요성을 느낀 건 첫 해외여행을 가서였다. 2박 3일간의 짧은 마카오와 홍콩 여행에서 영어 아니면 중국어를 모르면 호텔 체크인도 불가능한 그 시간 동안 나는 상상했다. 영어를 잘할 수 있다면 내가 갖게 될 큰 세상을. 


영어와 가까워지기 위해 필리핀으로 5개월간 어학연수를 떠났다. 하루 종일 영어만 가르치는 기숙학원에서 5개월간 지냈다는 말이다. 

첫 3개월 동안은 무려 '스파르타'식의 수업을 진행하는 분관이었다. 이때 필리피노 선생님과 1:1 수업을 통해 스피킹 연습을 하며 자신감을 익혔다.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처음으로 깨부쉈다. 

그리고 새로운 분위기를 위해 옮긴 분원은 도착하고 보니 IELTS에 집중된 분원이었다. 주로 영국, 호주 등으로 유학이나 이민을 준비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당시 친했던 모든 사람이 IELTS를 준비해서 나도 떠밀려 응시하게 되었다. 20만 원이 넘는 적지 않는 돈이다 보니 나도 오기가 돋았다. 단언컨대, 내 인생 가장 열심히 영어공부를 했던 때라고 장담한다. 


바로 그다음 해에 호주로 1년간의 워홀을 향했다. 그리고 공항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이들이 하는 억양은 내가 배웠던 미국식 영어와는 전혀 달랐다. 억양, 단어, 특유의 호주식 줄임말까지.. 

호주에서의 머문 시간 동안 새로운 곳에서 생활과 더불어 영어를 통해 넓어진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영어가 원어민인 사람들 뿐 아니라 프랑스, 러시아, 남아메리카, 일본, 그리스, 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었다. 


뉴질랜드에서 산 3년 6개월 동안 카페, 바, 레스토랑, 리셉션 등 영어로 의사소통하며 번 돈으로 밥 먹고 살았으니 어느 정도의 영어는 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현재 뉴질랜드인 남자 친구와 3년째 연애 중이다. 내 남자 친구는 이제야 겨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는 수준이니 남자 친구와의 의사소통도 100% 영어다. 


기본적인 일상생활은 영어로 할 수 있으나 새로운 상황에 봉착하면 나의 영어실력은 개박살 난다. 

예를 들어 친구와 새로운 주제로 대화를 하다 말이 엉킨 날에는 하루 종일 자괴감에 빠진다. 

3년째 사는 중인데도 내 생각하나 막힘없이 표현하지 못하다니.. 어쩜 문법은 아직도 헷갈리고.. 내 발음은 왜 아직도 이 모양 이 꼴 인지.. 세상 끝까지 땅 파고 들어가지만 정작 영어공부는 하지 않는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볼 때 나는 1년을 큰 주기로 영어 공부에 대한 태도가 변한다. 영어공부에 열정적이었다가 관심이 식고, 영어가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나기 시작하면서 한국 작품들(영화, 드라마, 예능)에 푹 빠져있다가 다시 영어를 공부해야겠다고 필요성을 인지하게 된다. 참고로 지금은 한국 드라마를 정주행 중인 시기다. 


영어공부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고등학교 때 기말고사 시험 범위처럼 딱 정해지면 좋으련만 이놈의 언어는 매일 공부를 해도 매일 새롭다. 방금 2시간 동안 영어공부만 지독하게 했는데 지금 내 앞에 내 남자가 말한 저 단어를 모른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죽어라 공부하면 영어를 원어민처럼 할 수 있을까?'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영어로 말한다고 한들, 그들의 의도를 100%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이해하고 있는 이 문장이 원어민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가 정말 맞을까?'


언어라는 건 단지 우리가 하는 말뿐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를 포함한다. 단지 내가 단어의 표면적인 의미를 안다고 해서 그 단어가 사용되는 모든 문장의 의미를 발화자가 말한 의도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어는 국립국어원과 같이 한글 맞춤법이나 표준어 등을 관리하는 기관이 없다. 같은 언어라 할지라도 영국,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등 나라마다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 억양이 다르고 한 나라안에서도 지역마다 차이도 크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때문에 영어공부에 무기력함을 느꼈다. 딱히 이 생각들에 어떤 답을 찾았다던가, 학문적으로 이런 의문에 대답해줄 근거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냥 생각만 했을 뿐이다. 


뉴질랜드 2년 차에는 한창 무기력감이 심했다.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방대한 차원의 문제라며 압도되었고, 슬랭이나 문화적인 표현을 볼 때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본 의사소통만 하면 됐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내가 따로 시간을 내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한국 책을 읽을 때보다 10배는 느린 속도로 원서를 읽어가야 하나.. 생각의 늪에 빠졌다. 


치열한 생각 끝에 내가 찾은 결론은 결국 사람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 친구와 지금보다 깊게 소통하고 싶고 이 사람을 더 이해하고 싶다. 더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과도 보다 깊은 관계를 맺고 싶었다.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고도 아직까지 잘 지내는 친구들도 있지만, 내 언어의 장벽이 조금만 낮았더라면 더욱 깊고 길게 이어졌을 인연들이 아쉬웠다. 원어민 친구들을 뿐 아니라 이곳에 사는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친구들과의 소통방법도 결국 영어이기에 결론은 하나였다. 꾸준히 영어와 친해지는 것. 

원어민이 될 순 없을지라도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닐까. 영어 공부의 목적은 원어민이 되어 (주최자도 모르는) 트로피를 받는 게 아니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써 영어를 '잘' 사용하는 것뿐이니까.


한국에 살 땐 외국에 3년만 살면 원어민처럼 영어를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위에 쭉 얘기했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오해다. 한국에서만 살아도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고 외국에서 10년 이상 살아도 기본 의사소통만 겨우 할 수 있는 사람도 수두룩 빽빽이다. 

결국은 본인의 의지고 노력이라는 말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남은 생은 뉴질랜드에서 살고 싶고, 그렇다면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쓰는 뉴질랜드 영어를 익히기 위해 계속 배워야 한다. 이건 내가 선택한 나라에서 살기 위해 짊어져야 할 숙제이니까. 


아직도 나를 제외한 원어민만 있는 자리에서 그들의 대화를 100%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런 상황을 겪을 때마다 느끼는 박탈감을 무기력이 아닌 동력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괜찮아, 모를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공부가 헛되지 않다고 믿으며 하루하루 단어 하나 더 외워가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내가 선택한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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