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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욱 Mar 22. 2023

누구의 얼굴인가? 얼굴이긴 한가?

우리 뇌는 특히 얼굴을 잘 알아본다.

    올리버 색스의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얼굴은 물론이고 물건의 정체도 못 알아보는 남자 이야기가 나온다. 색스는 환자와 대화하고 진찰해서 우측 뇌에서 시각을 처리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정했다. 오늘날 같으면 환자는 당장 MRI를 찍을 것이고 측두엽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진단받을 것이다.


    ‘정체’를 처리하는 측두엽에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30곳이 대부분 위치한다. 지금 내 앞에 잇는 것은 꽃인가? 사자인가? 사람인가? 사람 얼굴의 인형인가? 사람이라면 적인가? 아는 사람인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군가? 이 얼굴의 의미론적 감정적 속성은 무엇인가? 이를 테면 가족인가? 직장 상사인가? 나에게 중요한가? 무서운가? 싫은가?  


    특히 측두엽에는 얼굴을 처리하는 세포가 있다. 만약 측두엽의 뒤쪽이 망가지면 아예 사물과 얼굴을 구별하지 못한다. 축두엽의 앞쪽이 망가지면 얼굴이라는 것은 알지만 누구의 얼굴인지 모르게 된다. 아마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측두엽의 뒷부분이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측두엽이 망가지면 우리는 보이는 대상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대상이 위험한지 내게 친근한지도 모른다. 대상은 내게 아무런 감정이나 연상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민약 우리가 먼 외계의 행성에서 처음 만나는 우주인들 속에 있는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얼굴은 곧 사람이다. 우리는 얼굴만 보고 문을 열어준다. 신분증에도 얼굴 사진이 들어간다. 얼굴 인식으로 핸드폰도 풀린다. 얼굴을 알아보는 곳은 뇌의 측두엽이다. 측두엽의 뒤쪽이 망가지면 아예 사물과 얼굴을 구별하지 못하지만, 앞쪽이 망가지면 얼굴이라는 것은 알지만 누구의 얼굴인지 모르게 된다.


    하지만 얼굴의 어떤 요소가 얼굴이라고 인식되는 걸까? 원숭이 뇌를 연구한 학자들은 측두엽에 얼굴만 인식하는 세포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진은 물론이고 다른 형태의 그림을 보여주며 얼굴 인식 세포의 반응성을 측정했다.

    

단순한 도형의 배치만으로도 얼굴로 보인다. 하지만 뒤집어 놓으면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랬더니 굳이 얼굴 사진이 아니라도 우리 뇌가 얼굴로 인식하는 패턴의 그림이 있었다. 얼굴의 구성 요소들과 비슷하면서도 배치 도한 얼굴과 비슷해야 했다. 굳이 얼굴이 아니라도 얼굴처럼 보이게 만드는 도형의 배치나 선의 배열만으로도 우리는 얼굴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실제 사진보다 얼굴의 특징을 강조한 선이 더 그 사람처럼 인식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고, 얼굴의 표정을 보고 기분을 가늠하며, 미묘한 표정 변화를 통해 속내를 짐작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다. 화장한 얼굴도 알아보고 분장을 해도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 세월이 한참 지나 얼굴이 많이 달라진 친구도, 성형 수술을 많이 받은 지인의 얼굴도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손발의 모양이나 체형을 보고 그 정도로 세밀하게 식별하지는 못한다. 우리의 시각계는 ‘얼굴에 매우 특화’되어 있다.


    이처럼 중요한 얼굴의 인식 능력은 아기 때부터 시작된다. 아가들은 6~7개월이 되면 낯선 이를 보면 울음을 터뜨린다. 낯가림을 한다는 것은 친근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얼굴을 구별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이 무렵에는 아기들은 원숭이의 얼굴도 사람 얼굴만큼이나 개별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여러 마리의 원숭이가 있다면 각각의 얼굴을 다 구별한다는 말이다.


젖먹이 아기들은 이 강아지들의 얼굴을 일일이 다 구별할 수 있을 지 모른다.  박지욱 사진. 

    하지만 9개월이 되면 사람 얼굴만 구별한다(인지 협소화). 그리고 자라면서 자신이 속한 인종의 얼굴로 더더욱 특화된다(인종에 기반을 둔 선택적 얼굴 인식).  황인종인 우리는 어쩌면 일본인과 중국인을 얼굴만 보고 구별할 수 있을 경지에 다다를 수도 있다.


    앙코르 와트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은 우리 얼굴만 보고도 한국어를 쓸지 일본어를 쓸지 중국어를 쓸지 알아챈다고 했다. 놀라운 일이다. 대단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백인종이나 흑인종들의 얼굴을 그 정도로 세밀하게 식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종 간에는 그렇다. 그 얼굴이 그 얼굴 같다. 많이 쓰는데 특화되는 것, 그것이 우리 뇌의 경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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