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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욱 Mar 26. 2023

서울 얼룩말

얼룩말을 발견한 사람들의  시각 정보 처리 과정

한라산 등반로에서. 박지욱 찰영.

        길을 걷는데 수풀 속에서 뭔가 부스럭 거린다. 걸음을 멈추고 소리 나는 쪽을 주시한다. 초록과 노랑이 적당히 섞여 있는 초봄 수풀 속에서 짙은 색채의 표면적이 넓은 물체가 보인다. 움직이며 소리를 낸다. 산짐승이다. 위험한 녀석일까? 혹시 멧돼지가 먹이를 찾는 건가? 아니면 들개가 이쪽을 노래 보고 있는 건가?  윤곽을 보면 정체를 알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수풀에 가려 윤곽을 알 수가 없다. 윤곽은 알 수 없지만 색은 짙은 희색으로 보인다. 부스럭 거리는 몸놀림이 아주 은밀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발길을 돌려 등을 보이면 나를 공격할 수도 있는데....  하는 수 없이 가볍게 소리를 내자 먹이 탐색 중이던 녀석이 고개를 든다. 노루구나. 다행이다. 너도 네 갈길 가, 나도 내 갈길 간다~


        엊그제 서울 시내에 동물원에서 탈출한 얼룩말이 뛰어다녔다는 뉴스가 나왔다. 얼룩말을 눈으로 본 사람들의 소감이 인터넷을 달구는데 얼룩말을 마주한 순간 우리 뇌는 어떻게 작동했을까? 운전자의 경우 이렇지 않았을까?  

마이크로소프트 빙이 합성한  사진. 

        운전 대기 중인데 차량 행렬이 끝이 안 보여 답답하다. 그런데 순간 우측으로 뭔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차는 아닌데 뭐지? 윤곽을 보니 네발 달린 짐승인데 덩치를 보니 소나 말정도는 돼 보인다. 리듬감 있게 경쾌하게 달려가는 걸 보면 말이나 당나귀 종류 같은데 피부는 반질반질하니 털북숭이는 아니고, 색은 ... 줄무늬라니. 맙소사 얼룩말이구나!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는 얼룩말? 웬일인가? 내가 헛것을 봤나? 아니면 몰래 카메란가?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핸드폰으로 찍어야지, 아냐 119에 전화 먼저 해야 한해? 아니지 누군가 신고하겠지. 나는 먼저 폰으로 찍은 다음 SNS에나 올려야겠다. 친구들이 좋아하겠네.


        이 정도 아니었을까?  이미지 처리에서 가장 먼저 윤곽을 잡고, 다음으로 색상이나 표면의 특징을 잡고 동시에 위치와 운동 정보도 처리된다. 만약 이 풍경이 흔한 풍경 같으면 이를테면 쌩하고 달려가는 배달 오토바이 같으면 우리의 주의를 끌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이런 일은 거의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에 우리의 주의를 끌고 그것이 얼룩말이란 것을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즉시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기 시작한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눈, 후두엽, 측두엽, 두정엽, 전두엽이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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