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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욱 May 02. 2023

거울뉴런 이야기

모방, 공감, 동일시가 가능한 이유

뇌피질 중에는 감각을 담당하는 피질, 운동을 담당하는 피질이 따로 있다. 특정한 감각이 들어오면 반응하는 피질은 감각피질, 특정 운동을 유발하는 피질은 운동피질이다. 뇌피질의 관찰과 기록을 통해 만든 지도를 이용하면 어느 영역이 무엇을 담당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1990년대 초에 원숭이 뇌피질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아주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자신의 몸은 움직이지 않고 남이 움직이는 것을 보기만 했는데 운동피질이 반응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감각만으로 운동피질이 활동을 한 것이다. 이렇게 타인의 행동을 마치 거울처럼 반영하는 뇌세포를 ‘거울뉴런’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불렀다.  


특이하게도 거울뉴런은 다른 원숭이의 행동을 볼 때도 반응하지만 스스로가 그 행동을 할 때도 반응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어떤 행동을 할 때만큼 볼 때도 뇌는 똑같이 활동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본’ 것을 그대로 ‘한’다면 그것은 ‘따라 하기’ 즉 모방이 아닌가! 거울이 세상을 모방해 비추이듯 거울뉴런도 그랬다.


사람의 동작을 모방하는 어린 마카크원숭이. 거울뉴런은 마카크원숭이 연구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wikipedia 자료.



아, 원숭이 하면 흉내내기의 귀재인데, 그 비결이 바로 거울뉴런이구나. 그런데 원숭이와 함께 영장류에 속하는 인간에겐 거울뉴런이 없을까? 당연한 생각이고 인간의 뇌를 샅샅이 뒤져보는 연구가 뒤따랐다. 약 20년이 지난 2010년에 드디어 인간의 뇌에서 거울뉴런을 찾았다. 하지만 인간의 거울뉴런은 원숭이와 달리 운동피질은 물론이고 해마에서도 발견되었다. 그 기능이 흩어져 있다는 말이다.


인간을 포함하는 영장류의 뇌에서 발견되는 거울뉴런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타자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는 본능과 관련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잘 겪어 보았듯 아기들은 굳이 그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부모는 물론이고 오빠 형 누나 언니의 말과 행동을 곧잘 따라 한다. 저절로 학습하는 것이다. 이는 본능적이라 생각한다.


내 주변에는 누나들이 많은 집 막내아들들은 누나들을 ‘언니’라 부른 경우가 많았다. 누나들이 서로를 언니라 부르는 것을 저절로 따라 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시켰다면 처음부터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또한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말투나 행동 자세 흉내도 곧잘 낸다. 모방률이 거의 100%라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이러한 모방 본능은 나이가 들면서 모방 대상의 범위를 조금 더 넓힌다. 요즘은 유치원생 정도만 되어도 아이돌 가수들이 춤이나 율동도 귀신같이 잘 따라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거울뉴런 덕분이다.


따라 하는 행동들 중에는 감정이 섞인 것들도 있다. 웃기, 울기, 놀라기, 화내기, 보채기, 위로하기, 또닥거리기. 뽀뽀하기, 안아주기, … 아이들이 인형에게 어떻게 하는가 보라. 아이들끼리 소꿉장난을 하는 장면을 보라. 엄마 아빠가 평소에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거울’처럼 다 비추어 주지 않던가? 감시 카메라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아이들의 뇌 속에 있는 거울뉴런이다.


여하튼 이런 감정표현도 거울뉴런의 효과다. 남의 감정표현을 보면서 따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우는 장면을 보면 나도 슬퍼진다. 우는 것을 따라 하기라도 하면 그 슬픔은  더 커진다(한번 해보시라!)  


반대로 하나도 우습지 않은 코미디를 보는 중에라도 가짜 웃음소리가 들리거나 웃음 자막이나 이모티콘이 나오면 우리는 저절로 웃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억지로 라도 웃고 나면 나중에 우리는 그 코미디가 우습고 재미났다고 인식한다. 아니 우리가 그렇게 멍청하단 말인가?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TV 화면에 그렇게 많은 자막이 넘쳐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하나 더, 우리가 열심히 스포츠 중계방송을 보는 것도 거울뉴런과 관련이 있다. 운동 좀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관련 운동 동영상이나 중계방송을 잘 챙겨본다. 그 이유는 고수들의 동작이나 자세를 꼼꼼히 보면서 따라 해 볼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시청자들뿐만이 아니라 선수들도 그렇다. 프로야구 중계 중 더그아웃을 비출 때 고참선수의 타격자세를 그대로 따라 해 보는 어린 선수들을 볼 수도 있다. 역시 거울뉴런이 학습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운동을 하지는 않으면서도 프로야구나 국가대표팀의 응원은 왜 그렇게 열을 내면서 할까? 나 자신조차 축구 국가대표팀 중계를 챙겨 보며 응원하지만 축구공을 마지막으로 차 본 것은 10년도 더 된 일이다. 야구 글러브 껴본 적은 기억도 못한다.  


관중들의 열렬한 응원도 거울뉴런이 하는 일이다. 샌스판시스코 원정경기에 나선 추신수 선수.

거울뉴런으로 설명하자면 홈런 타법을 익히거나 슈팅 자세를 배우려는 것은 아니다. 감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 내가 응원하는 팀과 나를 공감차원보다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간다. 일종의 동일시 단계다. 그래서 그들과 감정을 공유하려는 것이다. 응원하는 팀의 선수가 역전만루 홈런을 친다면 나는 그 순간 내가 아니다. 그 선수다. 그 선수를 응원하는 관중들이 된다. 그들의 감정을 그대로 내게 투사하여 짜릿한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맛을 훔치는 것이다.      


이렇듯 거울뉴런은 단순한 동작 모방에서 시작해 감정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서는 동일시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거울뉴런은 단순한 거울이 아닌 것이다. 모방은 물론이고 학습, 공감, 동일시, 일체감, 사회성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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