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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현 Oct 24. 2022

"원래 네 글은 재미가 없잖아."

돌이켜보면,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내 꿈은 너무 장황했다. 뭔가 제대로 공부를 해본 적도 없으면서 하고 싶은 것만 많았다. 의지는 갈대처럼 흔들렸다. 천상병의 시를 보면 시인이 되고 싶었고 신록예찬 같은 멋들어진 글을 읽을 때면 수필가가 되고 싶었다. 깊은 철학적 사유로 인생의 문제를 곱씹어보는 문학평론가들의 필력을 동경한 적도 많다. 물론 도전은 했다. 신춘문예에 응모했고 공모전 사이트를 이 잡듯 스크린 하며 작품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많은 꿈들이 그러하듯, 도전은 실망과 자기 위안의 연속으로 점철됐다.


실패가 계속되자 대안으로 칼럼을 한번 써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글을 몇 개 써서 언론사에 기고하고 '좀 잘 봐주십사' 전화를 돌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의외로 유의미한 피드백들이 오기 시작했다. 특히 시민기자의 활동을 권장하는 <오마이뉴스>에서는 꽤나 인정을 받았나 보다. 본격적으로 글을 썼던 2019년에서 2020년 사이에는 80% 이상이 최고 등급('오름')으로 메인에 등록됐고 운이 좋아 상도 여럿 받았다. 종종 청탁 제안도 들어왔다. 이 생각지 못한 '흥행'은 내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늘 문학적 글쓰기로 인정받고 싶다는 강박이 늘 존재했다. 칼럼은, 뚝배기의 열기처럼 은근히 유지되며 사랑받는 문학작품과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한때 반짝 주목은 받지만 일시적이었고 시류의 흐름에 맞춰 논조도 조금씩 수정해야만 했다. 점점 나는 내 글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쓰더라고 뭔가 채워지지 않은 글, 깊은 사유가 결여된 '부족한' 글로 치부하며 묻어버렸다.


가까운 주변의 반응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평소 나는 송고한 기고문이 채택되면 기사 링크를 따서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공유하곤 했는데 억지춘향격의 감탄사, '오올', '멋진데' 정도의 반응만 돌아왔다. 물론 내 글을 꼼꼼히 읽고 고민할 만큼의 여유가 있는 녀석들도 아니거니와 글의 주제 자체도 일상과 동떨어진, 대단히 '비실용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이해는 해볼 수 있었지만 어딘가 불만족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20년 지기 친구 하나가 근처에 와있으니 시간 되면 점심이나 한 끼 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남는 것이 시간인지라 별생각 없이 약속을 잡았고 오랜만에 만난 녀석과 이런저런 회포를 풀었다. 그때도 내 글에 대한 이야기는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식사 말미쯤이 되어서야 잠깐, 글에 대한 나의 '불만족'을 녀석에게 설명할 타이밍이 찾아왔다. 친구는 가만히 내 얘기를 듣는가 싶더니 작심한 듯 이런 말을 내뱉었다.


원래 네 글은 재미가 없잖아.


친구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니까 너는 문학은 됐고 그냥 지금처럼 쓰는 게 더 잘 맞는 것 같아."  내색하진 않았지만 나는 꽤나 충격을 받았다. 녀석은 종국적으로 '문학적 글 쓰기'를 원하는, 내 숨겨진 욕망(='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을 잘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내가 브런치에 올린 어쭙잖은 시, 쓰다 만 듯한 에세이들도 모두 읽어봤다고 했다. 단순하면서도 뼈를 치는 것과 같은 묵직한, 녀석의 마음속 일갈이 들리는 듯했다.


'그냥 이게 네 글이야.'


사진 출처: 픽사베이


그날 이후 나는 내 글의 '재미없음'을 순순히 인정하게 됐다. 브런치에 올렸던 소설, 에세이 등 50여 편의 글도 모두 삭제해버렸다. 아마 누군가는 너무 충동적인 선택을 했다고 지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맞다. 솔직히 조금 후회도 된다. 하지만 그건 내가 나 스스로에게 주는 벌이었다. 하고 싶은 것만 많았던,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문학적 '멋짐'만을 동경해왔던 나에게. 시나 에세이, 소설을 쓰는 과정대한 즐거움보다 완성의 쾌감만을 추구하고 달려왔던 나에게.


이후로 나는 "재미없는 글"을 더 잘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칼럼, 그러니까 비문학적 글쓰기를 위한 나의 경험적 소재들이 의도 친 않았지만 제법 많이 쌓여있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됐다. 그것은 15년 여에 걸친 나의 유별난 직업 생활로부터 기인하는 것들이었다. 직업 군인, 연구자, 운송업, 시민단체 활동가 그리고 지금의 자유기고가(사실상 백수) 극과 극을 달리는 직업군도 개의치 않고 가로질러봤던 그런 경험.


이상보다 현실, 현실보다 이상, 좋아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 잘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 돈이 되는 일, 돈은 안되지만 의미 있는 일, 정규직과 비정규직, 보수와 진보 등 삶과 연계된 가치 판단을 해야 했던 순간도 적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행운아였다. 끝없는 고민의 기회를 제공받거나 때론 강제당할 수 있었으니.


얼마 전 <한겨레> 신문에 채택됐던 기고문


무엇보다 나의 글 쓰기는 이 같은 경험들을 '날 것 그대로' 써 내려가기보다, 통합하고 정제하여 전달하는 방식으로 단련되어 왔다. 경험을 소재로 삼되,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전문가나 권위자의 말을 인용하고, 타인의 비판을 은근히 회피하고, 특히 납득할만한 '결론'을 짜내는 방향으로 글을 써왔던 것이다. 그러니 웬만해선 재미있거나 '문학적'이기 어렵다. 보라. 지금 이 글조차도 그렇지 않은가.


다행이다. 이 처절한 '노잼'을 '꿀잼'인 줄 착각했다면 평생 큰 좌절 속에 허덕였을 것이다. 이제 내 목표는 이 "재미없는 글"을 재미는 없어도 "한번 읽어는 볼만한" 글들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재미없는 글"이 "재미있는 글"로 환골탈태하는 기적은 바라지도 않는다. 내 글은 위트 있고 재기 넘치는 에세이스트들이 넘쳐나는 브런치에서 큰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이런 나의 처지를 증명하듯 3일 전에 쓴 브런치 글 "멧돼지 씨의 부고가 도착했다"는 조회수가 여태껏 '10'을 넘지 못하고 있다. 라이킷은 '새 글'이 아닌 이상 붙지 않을 것이고 조회 수 또한 말라비틀어질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내 글은 '노잼'이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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