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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현 Feb 11. 2023

임실, 그리고 회문산


민족문제연구소에 근무하던 시절 '임실지역 한국군 민간인 학살 희생자' 구술 사업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150여명에 달하는 희생자 유족들과 증인들의 녹취록을 정리, 검수했다. 실제 A4용지로 1000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양의 증언집이었다.


필설로 담기 어려울만큼 슬프고 무서우며 어두운 이야기들...증언집을 만드는 과정 자체는 꽤나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분들의 사연을 영상으로 또 음성으로 접하는 것은 내 인생에 있어 귀중한 경험이 되어 주었다. 책이 아닌 '인간의 목소리'로 나는 그들의 비극을 보았다.


회문산은 임실과 그 근방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산이다. 하여, 산(山)은 그 높고 깊은 눈으로 70여년 전의 비극을 그리고 진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봤을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비극들의 주요 무대로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도 회문산의 산자락, 계곡, 능선에는 '그것들이' 찢어지고 어지러진 채로 침잠해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번은 회문산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솔직히 말해 '그들의 아픔을 최대한 오랫동안 기억하고 무겁게 여기자'는 숭고한 마음까진 아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비극의 현장에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 비극의 심연을 읽어내려는 안일함이 컸을런지도 모른다.


회문산은 조용했다. 그리 아름답진 않았다. 곳곳에 많은 무덤을 품고 있었고 숲은 가늘었고, 땅은 무거웠고, 돌은 파작파작 거렸다. 아마도 그것이 산의 대답일 것이다.


*2022년 1월 15일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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