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고한 글 입니다. 2월 28일에 발행되었습니다. 강제동원 문제 관련 윤석열 정부의 해법을 '반어적'으로 비판한 칼럼입니다. 원문 확인은 여기 클릭
‘한국 정부 일제 강제동원 해법 발표’ 혹시 당신이 오늘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이와 관련된 기사들을 읽었다면 기분이 썩 좋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명치 깊숙한 곳에서 올라 오르는 뜨끈한 열감과 뒷골로부터 몰려오는 알싸한 짜증들이 당신을 고통스럽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제3자 채무 인수’ 라는 생소한 법률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혹시 일본이 ‘사과 비슷한’ 말은 했는지, 전범기업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등등, 조금 더 자세히 연관 기사들을 훑으며 불쾌감의 연원을 찾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하리라. 강제동원 관련 법리와 판결, 한일청구권협정 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끝없는 논쟁들은 출퇴근의 피로에 지친 당신의 관심을 오래 끌지 못한다. 당신은 곧 기사를 닫아버릴 것이다.
괜찮다. 물론 한동안은 계속 불편할 것이다. 포털은 아마 꽤 오랫동안 이 문제를 대문에 걸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에겐 ‘(尹)정부’가 있다. 당신의 정부는 당신의 굴욕감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자그마치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그럴싸하고 점잖은 호의를 표했다는 점을 강조하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돈’을 주기로 했으니 “피해자들의 의견을 존중”(=피해구제)했다는 논리도 가능할 것이다. ‘돈’을 일본 전범기업이 아닌 한국 기업이 내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열 받을 필요 없다. 정부는 그것이 일본에 구걸하지 않는, “우리 주도의 해결책”이자 “대승적 결단”이라는 논리로 당신의 마음을 풀어줄 것이다.
괜찮다. 당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분함은 곧 잊힐 것이다. 곧 봄을 맞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한미 연합훈련이 진행된다. 북한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는 또 다시 긴장으로 가득 찬 ‘안보정국’으로 돌입한다. 예로부터 자잘한 ‘논란’들을 청소하기에는 ‘안보’만한 것이 없었다. 뿐만이랴. 5월에는 일본이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아마 당신의 대통령은 거기에 얼굴을 내밀게 될 것이다. 세계 유수의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한국의 대통령을 보면서 어쩌면 당신은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축하한다. 이 기세를 몰아 한일 관계는 분명 ‘개선’될 것이다. 한일 양국은 서로 관광을 권장할 것이고 일본 소도시 곳곳까지 항공기가 신규 취항할 것이다. 혐한 정서에 발맞춘 ‘와사비 테러’의 위협도 줄 것이고 안방에서는 일본을 주제로 한 예능·오락 콘텐츠가 활성화 될 것이다. 이렇게 다가올 모든 혜택이 ‘어쨌거나’ 강제동원 문제가 ‘결과적으로’ 잘 끝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당신의 마음은 점점 더 편해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료칸 대욕장으로 달려가 우롱차를 한잔 즐겨보길 권한다. 혹여 있을지도 모를 ‘친일’ 논란 따윈 걱정도 하지마라. 이 시대의 정의는 삼일절에도 당당히 일장기를 걸 ‘자유’가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것이다. 아참, 삼일절에는 일장기도 좋지만, 민족의 힘 없음을 자조하며 폐관 수련에 들어가 보는 것이 어떨까?
축하한다. 당신은 이제 머리 아프게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공부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번 정부의 ‘해법’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불법이 아닌 ‘합법’에 가까운 것임이 정부에 의해 인증되었다. 이제 당신의 자녀들은 고통스러운 식민지의 설움보다 ‘힘’의 위대함을 배우게 될 것이다. 힘이 없다는 것은 불의이며 죄악이라는 ‘진리’ 말이다. 혹시라도 자녀가 ‘불량한’ 생각으로 힘없는 사람들을 연민하려 한다면 결코 가만 있지 마라. 당신은 ‘현실’이라는 무기로 자녀들의 유약한 정의 관념과 허울뿐인 측은지심을 불태워버려야 한다. ‘우리 내 인생사’가 원래 그런 것이라며. 아, 이번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이 무엇보다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축하한다. 당신은 법의 이용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번 ‘해법’으로 삼권분립이 엄정히 유지되는 세상은 이상주의자들의 꿈속에서나 구현될 만한 유토피아임이 분명해졌다. 예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그랬던 것처럼, 피해자가 20년 넘도록 ‘집요하게’ 법에 호소를 한다고 해도 권력만 있으면 이를 뒤집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곤란한 판결이 나올 것 같으면 사법부를 압박하여 재판을 거래하고 연기시키는 ‘농단’의 기술을 쓰면 된다. 대법원 판결까지 나왔다고? 최악의 상황은 결코 없다. 권력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때문에 당신은 권력의 시녀가 되어야 하고 돈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불편해하지 마라. 만약 당신의 자녀가 ‘학폭’을 저질렀다고 해도 돈과 권력의 힘을 이용한 ‘법 기술’만 있다면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것이 ‘정의’일 테니까.
마지막으로 축하한다. 당신은 오늘부로 ‘과거’ 따위에게 발목 잡히지 않을 것이다. 과거는 미래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오늘 또 증명되었다. 불편한 역사는 흘려보내면 되고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역사와 과거가 어떻든 잊고 ‘무소의 뿔처럼’ 우직하게 밀고 나가라. 누군가 당신의 뒷덜미를 잡으면 ‘미래’라는 주먹으로 뺨을 후려쳐라. 그러면 그는 쓰러져 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약한 자들의 과거는 그 자체로 불의이며 죄이니까. 진실과 화해? 역사 정의? 과거라는 쓰레기통으로 보내면 된다.
불편해하지 말길. 그렇게 당신들의 인생은 이 ‘정의의 시대’에 여전히 건재하지 않은가. 시인 천상병도 그랬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당신은 그렇게 위안하며 미래를 바라보면 된다. 자, 이제 톡 까놓고 이야기해보자. 당신은 누구인가?
최우현(자유기고가, 전 민족문제연구소 주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