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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국보다 낮술 Jul 21. 2017

익명의 거리, 뉴욕에서 일주일 #21

플랫아이언


5번가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플랫아이언.


세계 최초 철근 콘크리트 공법, 세계 최초의 20층 건물, 1909년까지 가장 높은 건물 등등의 기록 외에도,

독특한 생김새 덕분에 영화나 광고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건물 중간 높이에서 플랫아이언을 앵글에 담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직접 건물 아래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무래도 생소하달까? 삼각형의 형태,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환상적이다. 요즘은 서울에도 자투리 땅에 짓는 독특한 땅콩 건물의 형태가 많지만, 아무래도 이 높이의 건물을 직접 앞에두고 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일어난다.

한참을 넋놓고 바라보다 꼭대기의 비둘기들이 날아오르는 순간에는 저 뒤편에서 금방이라도 스파이더맨이 튀어 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











<플랫아이언, 2004>

12년 전에 왔을 때 남겼던 사진을 생각하며 비슷한 앵글을 찾아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변했고, 내 카메라가 바뀐 것처럼,  이곳도 역시 변했다.











어쨌거나 변하지 않은 것은 플랫아이언을 만난 관광객들의 표정이다.

고래도 춤추게 만들 플랫아이언.

오다가다 몇 번을 더 마주쳤지만, 언제나 지금 내가 뉴욕에 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해주는 멋진 녀석이다.











마침 뉴욕 투어버스가 맨하튼을 떠다니는 배처럼 내 옆을 유유히 지나간다. 관광객들이 플랫아이언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겠지? 아니나다를까 버스 2층 중간쯤에서 찰나의 순간을 담는 관광객도 보인다.

멋쩍게 그 사람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이봐, 더 아래에 내려와서 보라구. 혹시라도 스파이더맨이 나타나면 여기에서 더 잘 보일지도 몰라"











조금 더 정확한 정면을 보고싶다는 생각에, 신호에 걸린 차들이 멈춰 서자 나는 택시들 사이 차도로 내려가서 셔터를 눌렀다. 그때, 누군가 내 뒤에서 중후하면서도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신호를 대기하며 나에게 말을 건 것은 뉴욕의 택시 기사 베리였다.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상투적으로 물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사진을 담아보라고 했다.

나는 당신과의 대화가 더 인상적이라고 말하고는 사진을 한 장 찍어서 기억에 남기고 싶다고 했더니, 신호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건물처럼 아름다운 하루를 보내세요"


베리, 만나서 반가웠어요.










사실 나는 12년 전, 스파이더맨을 본 적이 있다.

너무 빨리 지나쳐서 제대로 찍지 못했지만, 분명히 스파이더맨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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