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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닿은 May 20. 2016

자신을 희생하는 게, 어른스러운 건 아니에요


Q : 뭐라고 써야 할지. 저는 얼마 전에 군대를 다녀왔습니다. 예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는데, 복학하기 전에 그 시작을 하고자 마음을 먹었죠. 가끔씩 시를 쓰기도 하고 소설을 짓기도 합니다. 근데 문제는 저희 집이 그렇게 먹고살기에 좋은 형편이 아니라는 거죠. 군대도 다녀왔는데 제가 당장 돈을 벌기 위해 노력을 하거나 더 좋은데 취직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고민은 늘 합니다. 

 하지만 저는 글을 쓰는 게 좋아요. 당장 어렵고 힘들더라도 글을 쓰고 싶은데.. 주변에서 하는 말이 신경도 쓰입니다. 얼마 전엔 제 친한 친구와 술자리를 하게 되었는데 술김인지 친구가 작정한 듯 말을 하더라고요. 

정신 차리라고. 그거 해서 어떻게 먹고 사냐고. 언제 어른 될 거냐고. 

 사실 그 친구도 얼마 전까지 음악을 하던 친군데 지금은 회사를 다니고 있어요. 누구의 응원을 바란 것도 아니고, 힘든 일인 거 저도 아는데... 그 친구만은 저를 조금은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는지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냥 웃고 넘기는 척했는데  그 친구의 말이 잊혀지지 않네요. 제가 너무 이기적인 건지 그날 술도 많이 마시고 속이 좀 상합니다. 저는 정말 글을 쓰고 싶은데 이게 정말 그렇게 미래도 없고 이기적인 선택일까요. 친구 말처럼 당장 나가서 돈을 벌어 조금이라도 집에 보태주는 게 맞을까요. 제가 나쁜 놈인 것만 같네요.








A : 꿈을 좇지 않으면 과연 '좋은 사람'이 될까요.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언제나 죄를 짓게 됩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남에게 못할 짓 하고 사는 게 삶이 아닌가 생각해요. 

늘 실패하고 상처 주고 상처받고 삶 자체가 한 편의 거대한 실패의 일기는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다 루저가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님이 돈을 벌기 시작하면 금방 좋은 놈이 되고 속이 좀 편해질까. 

 글쎄요. 저는 감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잠깐은 자식 구실 한다는 생각에 그 죄책감이 가벼워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시간이 또 조금 흐르면 자신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지금 내 연봉에, 내 형편에 할 수 있는 효도와 생활의 수준과 꿈꿀 수 있는 미래의 수준,

그때 가면 오늘처럼 또 쓰게 웃는 일이 생기겠죠.     


저는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 중에 하나가 남에게 조언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님의 자세한 사정을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친구 분이 강한 어투로 힘주어 말했다면 그 이유는 아마 세 가지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첫 째친구 분 스스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삶 앞에서 꿈을 좇는 것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을 요하는 것인지 절감했고, 그로 인한 비애감을 느끼고 있던 차에 감정적인 상태에서 말을 뱉었다. 

 이 경우 친구 분은 님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말을 한 것이기도 하죠. 

 ‘꿈을 좇는 것을 끝낸다’ 라는 스스로에 대한 종언. 

사람은 때때로 자신에게 하고픈 말을 남에게 하면서 깨닫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이 경우라면, 참 슬프네요)          


 둘째, 그 친구 분이 보기에 님의 노력이 부족해 보였을 가능성.

꿈을 이루기 위해선 응당 보여야 하는 노력이 보이지 않거나, 

고된 삶에 대한 도피처로, 꿈이니 목적이니 하는 말로 자신을 마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따끔하게 충고해준 경우가 되겠죠.     

 잘 생각해보세요. 

 내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남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전할 필요는 없지만,

 뭔가를 꼭 이루고자 하는 사람과 그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는그것이 없는 사람과는 좀 다르지 않을까 해요.     

 사실 이 경우엔 친구 분의 평가나 시선은 별로 중요하지가 않죠. 

 타인이 날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한 일이며, 늘 내 삶을 남에게 확인시켜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러니 조용히 본인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과연 노력하고 있는가.               


셋째로 남에게 충고하길 좋아하는 사람을 친구로 두었을 가능성.

정작 본인은 노력하지 않으면서 조언하고 충고하길 좋아하는 부류. 세상에 은근히 많습니다. 

관심과 애정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면서 남의 삶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경우, 

본인의 얕은 경험으로 상대방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고 정의하는 경우들 생각보다 많지요. 

친구 분이 이런 케이스는 아닌가 생각해보세요.      



그 친구에 대한 정리는 이쯤 하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실 빤해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흘러 나이 먹었을 때

‘아, 그때 이거 계속해볼 걸’ 이라는 후회보다

‘그래도 애는 써 봤어’ 라는 후회가 좀 더 극복하기 쉽지 않을까 싶어서죠.      


님이 당장 돈을 번다고 해도 그게 고수익의 일이거나,  님의 가정형편이 금방 좋아질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겁니다. 

돈을 벌어도 그 예상 가능한 액수 앞에서 님은 여전히 후회하고, 

자본에 따른 계급 앞에서 대체로 무력할 것이고, 

가난은 지긋지긋하게 따라붙을 겁니다.      


묻고 싶어요.

지금 십 대. 이십 대에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이 삼십 대가 되고 사십 대가 되면 자연히 해결되는 일이 생길까요. 

저는 아닌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술버릇이 안 좋은 아버지, 가정을 돌보지 않는 엄마, 집안의 가난 등등 

내 삶을 쥐고 흔드는 거대한 문제일수록,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내 나이가 어찌 됐건 늘 비슷한 고민과 문제 앞에서 자신은 초라할 겁니다.     


그때마다 가장 쉬운 판단은 자신을 놓는 거죠.

가정형편이 좋지 않으니 내가 다니던 학원을 끊고

엄마가 아프니까 내 공부를 접고 돈을 벌고

나는 장남이고 장녀니까 내가 벌어온 돈 어린 동생을 위해 쓰고,

(밑줄 친 부분에 어떤 문장이 들어온다고 한들, 내 인생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이렇게 내 꿈과 인생을 가장 먼저 놓는 겁니다.

이게 뭐 대단히 이성적이거나 어른스러운 행동인 것처럼만 포장되는 경우 많습니다만

사실 가장 감정적이고 쉬운 판단이라고 말하고 싶어요포기는 늘 제일 쉬운 방법이죠.     


그래도 이런 식으로 내 인생을 포기해서

뭔가 해결이 된다면 그나마 좋을 텐데, 그러지 않을 거예요.     


나중에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나면

내가 너무 빠르고 쉽게 내 인생을 희생하고 던져버린 것에 대한 후회가 찾아올 거예요.

나 스스로에게 미안해지는 거죠.

나는 남(혹은 가족)을 위해 살았지만정작 날 위해서는 뭘 했는가.’

그때 자신에게 느껴지는 미안함과 죄스러움은,

나와 (그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내 희생을 자양분 삼아 살아온 가족이나 친구들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요. 희생을 하고 양보를 했으면 기뻐야 하는데, 오히려 억울한 마음이 들고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는 거죠. 처음의 의도조차 잃어버린 채 말이죠.

결국 어찌 됐건 ‘좋은 사람’이 되기는 힘들다는 얘깁니다.           



제 글이 너무 어둡기만 한가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사는 게 힘들수록내 인생 내가 제대로 붙잡고 있어야 한다

절대 자신의 인생을 헐값에 던져버리지 말라꼭 붙잡고 있으시라

저울의 반대편에 놓인 것인 가족이건, 친구이건, 사랑하는 애인이건 말이죠.      


내가 내 인생 꼭 붙잡고 차근차근 잘 챙겨서 더 강한 내가 되면

혹시나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요. 사실 저는 이게 현실적으로 더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예를 들어, 

내가 고3인데 가정형편이 안 좋다고 나가서 하루 종일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하는 것보다

좀 힘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악물고 자기 공부해서이름 있는 대학에 가고더 높은 월급을 주는 회사에 취직하는 게 

그 가난이라는 놈과 싸우는 데 훨씬 유리하다고요

(이처럼 현실적인 성취를 쌓아가는 노력이라면, 친구분도 납득할 겁니다. 아니면 말고요. 친구분 만족시키려고 있는 인생 아니니까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집안 형편이나 가족의 시름이 내게 정말 외면할 수 없는 고통이 된다면 부업을 틈틈이 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좀 더 부지런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몸은 고되고, 피곤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강렬하고 소중한 꿈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요     


지금 겪고 있는 삶의 아픔과 고통이 

‘내가 글을 쓰기 때문에, 내 꿈을 놓지 못해서’ 라고만 생각하신다면 다시 생각해보시길 권하고 싶네요.  


어느 길을 가도

고민이 있고,

책임과 죄의식이 따라오고,

괴롭고 힘들어요.

꼭 글을 쓰지 않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원래 삶이 그런 거예요.


그러니 괜찮다고요. 

-와닿은,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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