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 잘 들어서 받는 사랑, 그딴 사랑 받고 싶은 거 아니잖아요
Q : 공부를 해야한다고 해서 했는데. 시험도 전부 망치고 가족들한텐 욕 먹고...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벌써 대학은 제 손을 떠난듯 멀기만 해요.
남은 5개월 동안 공부고 뭐고 실기만 준비해볼까..하면 선생님은 실기는 위험하다고 꿈도 꾸지말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갈피를 못 잡겠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제 자신이 싫습니다.. 그냥 죽고 싶어요. 하루에 50번은 넘게 삶을 포기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절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더 힘듭니다..
그냥 모르겠어요. 공부를 해야할지 글을 써야할지.. 고삼이 되니깐 방황만 하게 돼요... 선생님 말대로 공부만 하다가 내가 뭘 하는거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나 이대로도 괜찮은가? 라는 생각만 들어요.. 모르겠어요.. 이제 시간이 별로 없으니 실기에만 집중하기엔 .. 성적이 안 좋게 나오니 신경 쓰여요... 이대로 휩쓸리다가 그냥 죽을 것 같아요. 이런게 인생이라면 의미가 있나요..?
A : 대학이 뭐라고 그렇게 죽고 싶어요. 까짓거 안 가면 그만이지.
'나' 와 비교하면 대학도, 글도, 하물며 내 가족도 별 거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 건 '나' 에요. '나'.
내가 있어야 글도 쓰고 공부도 하고 대학도 가고 관계도 하는거죠.
본인이 왜 주변사람들 말에 이리저리 휘둘릴까요.
제일 중요한 나를 가장 하찮게 생각하니까요.
보세요. 지금도 대학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평가 때문에 삶을 포기하려고 하잖아요.
차라리 대학을 포기하고 글을 포기해요.
차라리 주변사람과 인연을 끊는 게 낫겠어요.
못된 딸, 공부에 관심 없는 잉여학생이 되는 게 낫겠다고요. 그게 나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휘둘리는 게 괴롭고 슬프죠?.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내 생각을 존중하지 않으니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과 계획과 오늘을, 하물며 생과사도 결정지을 만큼이 되는 거죠. 주인 없는 집에 아무나 들락날락 거리고 주인행세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어차피 죽을 생각까지 한 거,
속는 셈 치고 제가 시키는대로 따라해봐요.
일단 조용하고, 그나마 평소에 자신이 안정을 느끼는 곳으로 가요.
그리고 자기 이름을 불러봐요. 00야 하고 말이죠. 그럼 바로 느낄 거에요.
부르는 나와 듣는 내가 따로 있다는 걸.
자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내 안의 나는 여럿이라고요.
내가 말하면 그 말을 가장 먼저 듣는 건 나 자신이에요.
자존감 낮은 사람이 제일 습관적으로 하는 게 자책이죠.
혼자 있을 때도 '넌 안돼'. '넌 끝났어', '죽어 병신아.'
그 말을 할 때 내안의 내가 듣는다고요.
식물을 키울 때도 나쁜 말을 해주면 생육에 방해가 된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죠.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어요. 그딴 짓(정말 그딴 짓이에요)을 매일 수십 번씩 듣고 자란 아이는 어떨까요.
생각만해도 끔찍하죠.
근데 그런 짓을 본인이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거에요.
습관화된 자책을 멈춰요.
그리고 이름 부른 김에 미안하다 사과해요. 진심으로 사과해줘요.
00야, 미안하다. 그동안 널 너무 아프게 하고 상처줘서 믿지 않아서 미안하다. 라고.
사랑 받는 건 고사하고 맨날 ‘넌 안돼’, ‘틀렸어’ 라는 말만 듣고 산 사람이 뭘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남한테는 친절하고, 잘 보이려고 예쁜 말 하고 예쁜 행동 하고,
학교에서는 착한 학생, 집에서는 착한 아들, 딸 되려고 하고 정작 나한테는 못된 짓만 했죠.
왜 그랬을까요.
남한테 잘 해주면 긍정적인 피드백이 바로 오잖아요.
‘넌 참 착한 아이구나’. ‘아이고,우리 딸 성적이 좀 올랐구나’, ‘넌 참 친절하구나.’
그때만 잠깐 '내가 가치 있는 인간' 이라는 생각이 드는거죠.
맨날 자기는 자책만 하고 있으니 칭찬 들을 기회가 없잖아요.
근데 사실 이거 다 필요 없어요.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나를 칭찬하지 않으면,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내가 원래 가만히 있어도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걸 모르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님은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가치 있는 인간이라고요.
평생 자책만 하고 살았으니 이게 쉽게 믿어질리 없겠지만
존재는 부재할 때 그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난다는 말 있죠.
당장 님이 죽어서 사라지면
부모님, 친구, 선생님 다 낙심할 거에요. 괴로움에 살기가 힘들겠죠.
나도 그렇게 친구를 잃어봤어요. 매년 괴롭죠.
때로는 혼자 아등바등 살겠다고 밥숟갈 넘기고 있는 것도 꼴보기 싫을 때가 있어요.
아마 그 친구가 내가 평생 이러고 살 걸 알았다면 자기 목숨을 그렇게 내던졌을까요.
그 친구의 부모님은 나와 비교할수도 없겠죠.
그깟 대학, 시바 못 가면 어때요.
글 안 쓰면 어때.
나는 이미 가치 있는 인간인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데.
좋은 대학 갔다고 받는 사랑, 글 잘 썼다고 받는 사랑,
당신 말 잘 들어서 받는 사랑이라면
됐어요. 그딴 얕은 사랑. 그딴 사랑 받고 싶은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나라도 날 조건 없이 좀 사랑해줘요.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있을까요.
님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인간인 걸 알고 있어서에요.
나같이 안면도 없는 사람이 뭐하러 입바른 소리 하겠어요. 그러니까 믿어도 괜찮아요.
이왕 조용한 데 찾아들어간 김에
자신한테 사과하고, 사랑한다고 얘기해줘요.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도 얘기해줘요.
언어는 사유를 불러일으키니까.
대학 안 가도 되고
잉여학생, 밥만 축내는 자식이어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습관화된 자책 멈추고,
이 기회에 한 번 생각해봐요. 내가 뭘 좋아하나, 남이 잘한다해서 하는 것 말고.
그게 글이면 그냥 써요.
어차피 남의 말 듣고 사나, 안 듣고 사나 어차피 협조 안 해주는 게 세상이고, 박하게 구는 게 타인이고, 내 뜻대로 안되서 고달픈 게 인생입니다.
어차피 힘들고 고될 거,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고된 게 좀 더 나아요.
남에게 사랑 받으려고, 나한테 상처주는 짓 말고
남에게 무시 당하고 미움 받아도, 나를 사랑해주는 일을 하세요.
어차피 내 인생 내 꺼에요.
내 꺼라 생각하니까 죽을 생각도 하는 거잖아요.
죽을 생각도 하는데, 내 인생에서 이제 다들 나가라고 내쫓고 문 닫고, 주인으로 사는 것도 할 수 있어요.
주인으로 있으면서 내 집문 내가 열고 닫고 초대도 하고 이제 집에도 가라 하고 그렇게 관계를 해야죠.
아무나 들어와서 내 침대에 눕고 냉장고 열게 두지 말아요.
죽지 말아요.
우리, 같이 살아요.
+
그리고 덧붙여,
한 달 공부하고 붙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일 년 공부하고 떨어지는 경우도 있죠)
인생엔 늦은 건 없어요.
남은 시간 계산하면서 불안에 떨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몰두하면 돼요.
시간은 누구에게나 쥐어지지만, 각자의 기준으로 흐르죠.
한 달에 일 년치의 사유를 하려고 노력하는 학생들을 종종 보곤해요.
그리고 그런 학생들은 그만한 성과를 이뤄내기도 하고요.
계산하면서 안 될거야 라는 생각 그만해요. 그거 다 거짓말이니까.
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그리고 노력해보면 알죠. 결과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내가 내게 주어진 시간에 몰두했구나,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았구나.
이 경험 자체가 당락보다, 앞으로 내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훨씬 더 큰 재산이 된다는 걸요.
5월, 가능해요.
그게 수능이건, 글이건. 내 인생이건,
뭐든지 시작해봐요.
기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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