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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다락 Mar 18. 2020

너무나 전통적인 휴먼스토리 <쌍갑포차>

                                                                                                                                                                                                                                                                                                                                                                                                                                                                                                                   

만화 ‘쌍갑포차’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원작 만화가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을 받기도 한 작품성을 가진데다 각각 주인공도 다르고 에피소드들이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며 이어지고 있어서 드라마로 만들기는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각색을 했을지 무척 궁금하다. 


사실 원작만화의 독자층 중 꽤 열혈팬이 많아서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져도 설왕설래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음 웹툰 쌍갑포차 표지



나는 이 만화가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첫 에피소드를 보다가 말았다. 거기 등장하는 귀신과 가위눌림을 묘사하는 장면이 꽤 생생해서 공포 만화인 줄 알고 내 여린 심령을 생각하여 일찌감치 흥미를 끊었더랬다. 


그러다 이 작품이 상을 탔다는 소식을 듣고 나중에 몰아서 보게 되었는데, 웬걸 이제까지 접하지 못했던 표현방식과 이야기 속에 담긴 작가의 내공에 감탄하고 말았다. 1부의 에피소드 몇 개만 보아도 이 작품이 한국 만화계가 건져 올린 독특하고 빛나는 작품인 걸 알 수 있다.




한국 전통 설화와 토속 음식의 향연



작가는 ‘그승’이라는 세계를 창조하여 이승과 저승을 잇는다. 그승은 이승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꿈’이라고 불리는 시공간인데, 각 에피소드의 서로 다른 주인공들은 이승과 저승, 그리고 그승을 오가며 삶과 죽음을 풀어낸다. 


여기서 흥미로운 인물은 ‘월주신’이라는 그승 거주민이다. 마치 구경꾼인 듯 해결사인 듯, 무심한 신인 듯 다정한 친구인 듯, 모든 등장인물에게 포장마차 이모님 노릇을 톡톡히 하면서 삼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장사를 한다. 


그의 동료인 미별왕과 김발목들, 저승사자, 매파이자 산파인 삼신할미(이 작품에서는 지엄한 마고할미와 동일인물로 등장한다) 등 한국 전통 설화를 새롭게 활용한 흥미로운 설정이 꽤 많다. 




쌍갑포차 2화 돼지 뒷고기 숯불구이 (출처:다음 웹툰)



‘쌍갑포차’의 또 다른 매력은 사건 해결의 촉매제 노릇을 하는 음식에 있다. 등장인물들은 쌍갑포차 이모(월주신)가 마련한 음식을 먹으면서 넋두리도 하고 애원도 하고, 조언도 구한다. 


예를 들어 ‘박속낙지탕’ 편에 나오는 주요 인물인 끝순이 할머니는 이모가 주는 ‘박속낙지탕’을 대하며 오래 전 자신을 정성스레 돌봐주던 같은 동네 동생 월례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러자 이모는 월례의 손자가 오늘 밤 죽게 되어 그대로 두면 월례는 자식도 손주도 다 앞세우는 외로운 독거노인이 될 거라고 일러준다. 


이에 끝순이 할머니는 자신이 살아생전 쌓은 공덕을 월례의 손자의 수명과 기꺼이 바꾸고, 이승의 손주는 간발의 차이로 비명횡사를 면한다. 물론 그승에서 길 가는 끝순이 할머니를 굳이 불러서 박속낙지탕을 먹어보라고 할 때부터 쌍갑포차 이모가 의도하던 것이다.



14화 박속낙지탕(출처: 다음 웹툰)



매 에피소드의 제목은 음식 이름이고, 거기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차마다 바뀌는 편집제공자 이름도 음식이다(제공자가 이름을 밝히길 거부하며 실존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이 음식을 다 먹어보고 싶어 가상의 편집자를 만들어낸 작가의 장난인가!).


 놀라운 것은 이것이 거의 다 한국토속음식인데다 그 중 상당수가 나는 들어보지도 못한 음식이어서 우리나라에 먹을 게 이렇게 가지가지 많았나 놀라게 된다. 


제목에 눈길을 주며 ‘나중에 거기에 가면 꼭 이 음식을 먹어봐야지’ 생각하다가도 읽다보면 어느새 등장인물의 따뜻하고 뭉클한 사연에 사로잡혀 음식에 대한 다짐은 다 까먹고 말지만. 




새로운 형식, 관습적 내용



이 작품은 일반적인 웹툰과 많이 다르다. 논문의 인용 절차처럼 엄격한 자료 출처 표기나 배경 자료의 옛 느낌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하는 노력이 오히려 작품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만큼 작품을 향한 작가의 애정과 존중이 느껴진다. 


또 내용만큼 인상적인 것이 작품의 표현 양식이다. 인물의 속생각 표현 방법, 채색, 선 처리 등이 작가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새롭다. 손가락 관절의 주름까지 세세하게 표현된 인물은 매우 낯설다. 거기다 관절인형처럼 느껴지는 딱딱한 움직임은 또 어떤가. 너무 낯설어 거부감이 들 정도인데 반해, 내용은 심금을 파고드는 휴먼스토리다.


 대사를 읽다보면 환갑 넘은 유명한 이야기꾼의 입담이 떠오른다. 절대 톡톡 튀는 젊은 사람의 것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유머 코드나 표현 양식은 나이든 사람의 낡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니, 이 부조화는 사실 여러 독자들이 느끼기도 한 이 작품만의 특색이다. 



15화 박속낙지탕(출처: 다음 웹툰)



사실 쌍갑포차는 전형적인 신파 이야기 구조를 따른다. 착한 주인공의 억울함이 풀어지거나 부모자식 간 서운함이 희생과 화해로 잘 마무리되는 걸 보고 안심하지 않을 독자는 없다.


 이야기 구조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인데, 작가가 얼마나 감정 밀당을 잘 하는지 독자들의 눈물샘을 이만저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모순을 툭툭 건드리는데, 갑질하는 진상 손님에 눈물짓는 서비스업 노동자, 마음이 피폐해져가는 취업준비생 연인들, 사내 왕따를 합리화하는 가해자들의 논리를 보다보면 열화 같은 댓글이 달린다. 사실 나는 이렇게 등장인물이 처한 사회구조적 모순을 주인공의 사연으로 은근히 다뤄주는 1부가 더 좋았다. 3부로 갈수록 전통적인 가치관이 심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품이 중요시하는 것은 사람 사이의 깊은 정과 나눔, 특히 피눈물에 젖은 여성들의 역사 속에 숨은 배려와 용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훌륭한 여성서사이지만, 전통적으로 여성이 요구받던 역할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고할미나 월주신에게 인정받는 인물들은 전통적 여성상이나 남성상을 훌륭히 살아낸 사람들이다. 쉴 틈 없이 바지런하고 애정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돈 샐 틈 없이 알뜰히 살림하는 어머니들.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신발 굽이 닳도록 부지런히 살았던 아버지들. 음식을 넉넉히 만들어 주변사람 다 챙겨주는 부잣집 사람들.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성심성의껏 돕는 그 주변 가난한 사람들. 갱생 가능한 악인은 속죄하여 새 사람이 되고, 천성이 착한 사람은 죽어서도 한이 풀린다. 



122화 옥춘(출처: 다음 웹툰)




이들은 ‘자기 자식 결혼식장을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평가받는 커다란 시험장같이’ 여기며, ‘아내 하나만 바라보며 풍파 막아주는 방파제 같은 신랑’을 구하고, ‘애들 엄마한테 월급봉투 주고 애들 입에 밥 넣어 주는 재미로 사는 남자’에게 보상을 한다. 이들이 죽어 만나는 저승사자는 ‘여자를 사랑하여 살 맞대고 살다 마지막을 지켜주고 금쪽같은 새끼들도 낳아 잘 길렀으니 무엇이 아쉬울까’라고 그 삶을 평가해준다. 매우 서민적이고 관습적이다. 


독자들은 이 작품이 권선징악, 인과응보, 사필귀정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걸 눈치 채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아하는 것 같다. 현실에서는 별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고, 어려운 공채를 통과해 취업에 성공하며, 주인공의 아들딸들은 대학을 수석졸업하거나 법조계 인물이 되어 주인공에게 보상한다. 


이 작품은 판타지다. 현실에 없는 인물들 - 삼신할미, 저승사자, 월주신 - 이 등장해서가 아니라, 현실에서는 여간해서 잘 일어나지 않는 보상이 주인공들의 노력에 보응하여 꼬박꼬박 주어지기 때문이다. 


읽다보면 불편함이 든다. 남자가, 또는 여자가 저렇게 살면 복을 받나? 모순된 구조는 하나도 안 바꾼 채 각자가 선하게 살면 다 해결되나? 


가장 거북한 점은 모든 사람을 그렇게 단순하게 선인과 악인으로 나눌 수 없다는 점이다. 가장 선하게 보이는 사람 안에도 끔찍한 악이 활개치고 있고, 가장 악하게 보이는 사람 안에도 일말의 동정심은 숨어 있다. 때와 장소와 상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뿐인 그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선과 악으로 딱 도식화하여 권선징악으로 풀어낸 점이 이 작품이 드러내는 가장 큰 한계일 것이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힘든 현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지지만 이 작품 속에 몰입하는 중에는 잊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독자들을 도피의 세계로 이끈다.



136화 고구마 맛탕(출처: 다음 웹툰)




과거로 돌아갈까, 미래로 나아갈까?



3부에서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짝짓기가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데, 작품의 색깔은 잡혔을지 몰라도 작품의 태생적 한계는 더 선명히 드러나고 버려진 장점은 참 아깝다. 


삼 세계를 왕래하며 인간의 생사화복에 관여하는 신들이 이야기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보니 전통적 가치관이 구현되는 것은 어쩔 수 없긴 하다. 만화 ‘신과 함께’처럼, 착한 주인공이 고생 끝에 죽어서라도 복을 받는 행복한 결말을 줄 수밖에 없다. 쌍갑포차가 그걸 넘어서려 한다면 작품의 정체성 자체가 변할 테니 그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다만 작가의 차기작에서는 그 가치관을 뛰어넘었으면 좋겠다. 전통적 가족은 이미 해체된 지 오래고, 개인은 파편화되어 모순된 구조 안에서 어찌 하든 살아내야 하는 게 우리의 과제가 되었다.


급격히 변하면서도 모순을 계속 생산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냉철한 시선과 그 안에서 서로 부딪히며 삶을 살아내는 개인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동시에 드러난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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