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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다락 Mar 18. 2020

코로나19와 서양인들의  마스크 거부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초기에 그 제물이 된 국가는 중국, 한국, 일본이었다. 인구밀도가 높고 도시화가 진행된 국가들이다. 두 달이 지난 지금 코로나19는 유럽과 미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코로나의 대규모 습격을 받은 국가들은 동서양 가릴 것 없이 공통점이 많다. 지도에서 위도가 비슷하고, 의료기술도 발달했다. 빠른 교통통신과 일찍부터 발달한 문명에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방식은 무척 차이가 크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이다. 



세계 최초로 전염병 진단에 도입된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우리나라의 빠른 진단과 투명한 정보공개는 특히 해외 의료진이나 보건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고 있다. 사실 한국은 사스와 메르스 사태를 통해 늑장 대처가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전 국민이 경험한 적이 있다. 


정부와 질병관리본부, 민간의료계와 의료기업, 그리고 국민이 ‘바이러스에 대한 적극적이고 투명한 대응’에 이미 합의가 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의사 소견 시 진단 비용이 무료이니, 한국이 부럽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낯간지러운 자화자찬은 여기까지 하고.




역사 경험에 따른 바이러스 공포심


바이러스 공포심은 인구밀도가 높은 아시아에서 더 강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오히려 서양인에게 통제 불가능한 바이러스에 대한 기억이 뇌리에 선명하게 잡고 있다. 중세의 흑사병, 천연두,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와의 긴박한 싸움을 잘 그려냈던 영화 <아웃브레이크>



그래서인지 서양 SF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바이러스와 싸우는 이야기가 꽤 있다. 심지어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이 지구의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없어 물러간다는 황당한 설정도 있는데, 아마 잉카제국 멸망을 본 따서 만든 얘기일 것이다. 200만 잉카사람들은 천연두 항체가 없어서 200명도 안 되는 스페인 오합지졸 군사에게 나라가 멸망했다.


 바이러스 때문에 문명 하나가 없어지는 걸 지켜봤으니, 그만큼 역사 경험이 집단적 공포감에 영향을 끼치고, 작품으로 생산된다는 말이다.



코로나 19사태를 예언한 것으로 재평가 받는 영화 <컨테이젼>아시아 장면. 한 명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마스크에 대한 태도의 차이다. 서양의 국가들은 우리만큼 마스크를 예방책으로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바이러스는 호흡기로 퍼진다는 걸 알 텐데, 왜 의료인이 아니면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고 할까? 서양 사람들은 왜 우리나라 언론이나 국민들처럼 마스크로 난리를 치지 않을까? 



눈과 입, 어느 쪽?


우리는 눈을 가린 사람에게 거부감이 있다. 지금이야 많이 누그러졌지만, 예전에는 썬글라스를 쓴 사람을 불편해하는 기류가 역력했다. ‘색안경을 끼고 본다’라는 표현이 가진 부정적인 뉘앙스를 보라. 


고대 중국에서는 보석을 살 때 상인에게 감정을 읽히지 않기 위해 너울을 썼다는 경우가 있을 만큼, 동양에서 눈을 가리는 사람은 자신의 정체나 진심을 숨기는 사람인 것이다.


그 반대로 서양인들은 동양인과 달리 입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고 한다. 얼마 전 tv프로그램 ‘알쓸신잡’의 출연자도 이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모티콘만 봐도 알 수 있다. 동양의 이모티콘은 눈 모양을 주로 사용하고, 서양의 이모티콘은 입모양을 주로 사용한다.



동서양 이코티콘의 차이(출처: https://1boon.kakao.com/unieditors/hellokitty)



만화로 보자. 나는 어릴 때부터 만화나 영화를 보며 왜 서양인은 눈만 가릴까 무척 궁금했더랬다. 눈을 가린 채 입만 뻐끔뻐금 나오는 히어로 캐릭터들이 내 눈에는 우스꽝스럽고 어색해보였다. 그건 내가 동양인이었기 때문에 느끼는 불편함이었을 것이다. 



얼굴 전체를 가릴지언정, 입만 가리지는 짓은 결코 하지 않는 미국 만화 캐릭터들. (출처: 마블코믹스, 디씨코믹스)



비슷한 맥락으로, 눈을 크게 강조하는 동양식 만화의 과장법도 내게는 참 신기했다. 동양식 만화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데쯔카 오사무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눈은 크고 입은 작다. 동양인의 실제 얼굴구조를 고려하면 참으로 괴상한 과장법이다. 그런데도 많은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졌고, 지금도 아시아의 만화는 대부분 이 과장법을 따르고 있다. 



입이 소멸할 정도로 작은 일본 캐릭터들(출처: 우주소년 아톰, 드래곤볼, 헬로키티)


큰 눈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한국 캐릭터들(출처: 치즈인더트랩, 신의 탑, 카카오프렌즈)



반대로 서양 만화를 보면 입이 무척 강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캐릭터는 입모양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 큰 서양인의 눈이 정작 만화에서는 겨우 점 하나로 표현되거나, 기껏해야 실제 크기를 못 넘어서게 그려진다. 그런데도 서양 독자들은 그걸 답답하게 여기지 않으니 얼마나 신기한가!



유럽 만화에서도 눈은 거들 뿐(출처: 땡땡, 설국열차)



감정 표현 방법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는 배우들의 연기에서도 드러난다. 동양에서는 눈빛 연기를 실력으로 보고, 서양에서는 diction(발성, 어휘 사용)을 얼마나 잘 하나로 연기력을 가늠한다.


 서양에서는 diction으로 상대방의 출신 지역이나 사회 계층까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입모양으로 뜻이나 감정이 전달 뿐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따라 정체도 달라지니(‘가면’은 영어로 mask다), 서양 사람들에게 입을 가리느냐 마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다.


그러니 서양인들이 웬만해서 마스크를 쓸 수 있을까? 썬글라스처럼 패션아이템이 된 것도 아닌데. 




영화 <컨테이젼> 미국 장면. 사람이 밀집한 실내 공간임에도 마스크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  심지어 위의 아시아 장면보다 사태가 더 심각한 단계인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마스크 거부감’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병에 안 걸려도 될 사람들이 본인도 모르는 마스크 거부감으로 인해 병에 걸릴 걸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제발 마스크를 쓰라고 말하고 싶다. 마스크 써도 안 죽는다고, 마스크 써야 안 죽는다고.


어서 코로나19가 사그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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