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초기에 그 제물이 된 국가는 중국, 한국, 일본이었다. 인구밀도가 높고 도시화가 진행된 국가들이다. 두 달이 지난 지금 코로나19는 유럽과 미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코로나의 대규모 습격을 받은 국가들은 동서양 가릴 것 없이 공통점이 많다. 지도에서 위도가 비슷하고, 의료기술도 발달했다. 빠른 교통통신과 일찍부터 발달한 문명에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방식은 무척 차이가 크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이다.
우리나라의 빠른 진단과 투명한 정보공개는 특히 해외 의료진이나 보건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고 있다. 사실 한국은 사스와 메르스 사태를 통해 늑장 대처가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전 국민이 경험한 적이 있다.
정부와 질병관리본부, 민간의료계와 의료기업, 그리고 국민이 ‘바이러스에 대한 적극적이고 투명한 대응’에 이미 합의가 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의사 소견 시 진단 비용이 무료이니, 한국이 부럽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낯간지러운 자화자찬은 여기까지 하고.
바이러스 공포심은 인구밀도가 높은 아시아에서 더 강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오히려 서양인에게 통제 불가능한 바이러스에 대한 기억이 뇌리에 선명하게 잡고 있다. 중세의 흑사병, 천연두, 스페인 독감.
그래서인지 서양 SF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바이러스와 싸우는 이야기가 꽤 있다. 심지어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이 지구의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없어 물러간다는 황당한 설정도 있는데, 아마 잉카제국 멸망을 본 따서 만든 얘기일 것이다. 200만 잉카사람들은 천연두 항체가 없어서 200명도 안 되는 스페인 오합지졸 군사에게 나라가 멸망했다.
바이러스 때문에 문명 하나가 없어지는 걸 지켜봤으니, 그만큼 역사 경험이 집단적 공포감에 영향을 끼치고, 작품으로 생산된다는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마스크에 대한 태도의 차이다. 서양의 국가들은 우리만큼 마스크를 예방책으로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바이러스는 호흡기로 퍼진다는 걸 알 텐데, 왜 의료인이 아니면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고 할까? 서양 사람들은 왜 우리나라 언론이나 국민들처럼 마스크로 난리를 치지 않을까?
우리는 눈을 가린 사람에게 거부감이 있다. 지금이야 많이 누그러졌지만, 예전에는 썬글라스를 쓴 사람을 불편해하는 기류가 역력했다. ‘색안경을 끼고 본다’라는 표현이 가진 부정적인 뉘앙스를 보라.
고대 중국에서는 보석을 살 때 상인에게 감정을 읽히지 않기 위해 너울을 썼다는 경우가 있을 만큼, 동양에서 눈을 가리는 사람은 자신의 정체나 진심을 숨기는 사람인 것이다.
그 반대로 서양인들은 동양인과 달리 입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고 한다. 얼마 전 tv프로그램 ‘알쓸신잡’의 출연자도 이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모티콘만 봐도 알 수 있다. 동양의 이모티콘은 눈 모양을 주로 사용하고, 서양의 이모티콘은 입모양을 주로 사용한다.
만화로 보자. 나는 어릴 때부터 만화나 영화를 보며 왜 서양인은 눈만 가릴까 무척 궁금했더랬다. 눈을 가린 채 입만 뻐끔뻐금 나오는 히어로 캐릭터들이 내 눈에는 우스꽝스럽고 어색해보였다. 그건 내가 동양인이었기 때문에 느끼는 불편함이었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눈을 크게 강조하는 동양식 만화의 과장법도 내게는 참 신기했다. 동양식 만화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데쯔카 오사무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눈은 크고 입은 작다. 동양인의 실제 얼굴구조를 고려하면 참으로 괴상한 과장법이다. 그런데도 많은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졌고, 지금도 아시아의 만화는 대부분 이 과장법을 따르고 있다.
반대로 서양 만화를 보면 입이 무척 강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캐릭터는 입모양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 큰 서양인의 눈이 정작 만화에서는 겨우 점 하나로 표현되거나, 기껏해야 실제 크기를 못 넘어서게 그려진다. 그런데도 서양 독자들은 그걸 답답하게 여기지 않으니 얼마나 신기한가!
감정 표현 방법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는 배우들의 연기에서도 드러난다. 동양에서는 눈빛 연기를 실력으로 보고, 서양에서는 diction(발성, 어휘 사용)을 얼마나 잘 하나로 연기력을 가늠한다.
서양에서는 diction으로 상대방의 출신 지역이나 사회 계층까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입모양으로 뜻이나 감정이 전달 뿐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따라 정체도 달라지니(‘가면’은 영어로 mask다), 서양 사람들에게 입을 가리느냐 마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다.
그러니 서양인들이 웬만해서 마스크를 쓸 수 있을까? 썬글라스처럼 패션아이템이 된 것도 아닌데.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마스크 거부감’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병에 안 걸려도 될 사람들이 본인도 모르는 마스크 거부감으로 인해 병에 걸릴 걸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제발 마스크를 쓰라고 말하고 싶다. 마스크 써도 안 죽는다고, 마스크 써야 안 죽는다고.
어서 코로나19가 사그라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