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한국 방역체계가 뛰어나다는 점이 입증되면서 유튜브에서는 이른바 ‘국뽕채널’이 제철을 만났다. 한국인이 세계 무대에서 가졌던 열등감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국뽕채널’ 중에는 해외 언론의 기사를 번역해서 재가공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권 CNN 기사
사실 ‘국뽕채널’은 이번 선거에 여당이 압승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현 정부의 실력이 외국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넘어 우리나라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스피커 노릇을 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정부를 깔까?’ 꿈에도 생각하고 밥 먹으면서도 궁리했던 주류 언론들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적에게 의문의 1패를 당한 셈이다. (당해놓고 지금도 모를 수도 있다.)
열등감은 이제 버려도 돼
요즘은 해외 언론에 거의 매일 한국 기사가 난다고 한다. 국경폐쇄나 도시폐쇄 없이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감염자 수를 놀랍도록 줄인 까닭을 모든 나라가 궁금해 하는 모양이다.
국가 수반 사이의 직통 전화뿐 아니라 각 부처별 온라인 회의와 민간 기업 문의까지, 우리 민족 5000년 역사상 이렇게 국제무대에서 관심과 찬사를 집중해서 받은 적이 있나 싶다.
한국인과 인터뷰하는 스페인 방송(개인 유튜브 캡쳐)
심지어 IMF에서 ‘아시아권 국가들이 발행하는 국채를 글로벌 담보로 활용하는 논의를 한국이 주도해 달라’는 요청까지 했다고 한다. 신속하고 투명한 방역 하나로 인정받은 한국의 실력이 다른 분야로까지 넓혀가는 모양새이다.
하긴 경제 규모로 볼 때 세계 순위권에 드는 우리나라가 그동안 너무 인정을 못 받고 있긴 했다.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자신의 힘으로 온전히 이루어낸 나라가 우리 말고 있던가. 이건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함께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것과는 별도로, ‘국뽕채널’의 인기에는 두 가지 시사점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여전히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점(남들로부터, 특히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믿음), 둘째는 국내 언론의 신뢰도가 그만큼 낮다는 점이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는 한국인
‘남들로부터의 인정’에 대해 민감한 점은 꼭 나쁘게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세상의 기준이 ‘내’가 될 수도 없고, 이런 전염병의 시대에는 시민의식이 낮은 사람조차 방역에 자발적으로 협조하게 하는 좋은 자극제가 되기 때문이다. 사대주의만 아니라면 된다.
프랑스어권 Le Point 기사
특히 한국은 위치와 상황으로 봤을 때 다른 나라로 쉽게 드나들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 세계와 발맞추어 나가기 위해서는 ‘밖에서 우리를 보는 시선’이 어떤지 늘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안 좋은 점은 고치고, 상대가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바로 잡아줄 수 있다.
국내 언론에 대한 불신, 정보 창구의 이동
국내 언론의 신뢰도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후. 무노동 고임금 집단인 국회보다 신뢰도가 높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공공의 역할을 하면서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저 견제할 수 없는 집단. 정치인처럼 선거로 갈아치울 수도 없고, 골칫거리도 이런 골칫거리가 없다.
2019년 조사
국내 언론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은 SNS나 동영상 플랫폼을 정보창구로 삼게 되는데, 특히 유튜브는 시청자가 좋아할 만한 컨텐츠를 알고리즘으로 자동 추천해주기 때문에 자연히 시청자는 확증편향이 생긴다.
즉, 유튜브 컨텐츠는 얼마든지 시청자를 오도할 수 있다. 공적인 검증을 받지도 않으니 처벌이라는 불이익도 없다. 기껏해야 더는 유튜브를 통해 돈을 벌 수 없을 뿐. 공공감시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정보창구라니, 정말 위험하지 않은가?
개인 채널이 빠지기 쉬운 함정
SNS나 동영상 플랫폼 등 대안매체가 위험한 길로 가는 현상은 벌써 나타난다. 극우채널은 제쳐놓더라도, 혐오가 아니라 만족을 전달하려는 ‘국뽕채널’조차 상당수 과장이 난무할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채널도 여러 개 된다. 제목으로 낚시질해서 이간질하고 편견을 집어넣는 것이다.
국뽕채널
물론 국내 언론이 일부러 빠뜨리고 축소하는 외부의 평가를 전해주는 창구가 많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보를 내게 유리한 쪽으로만 왜곡해도 된다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야 주류언론이 하는 짓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공공감시를 받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함정을 넘어서
개인이 만든 채널이 오래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정확한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 외신에 한국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면, 가감 없이 전달해서 시청자가 논쟁하도록 해야 한다. 본인의 논평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왜곡 과장은 곤란하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에 대해 차별하고 무시하는 시선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사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인종 차별도 심하고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이 아직도 많이 떨어진다. 위치상 어쩔 수 없는 면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이걸 고쳐나가야지 더 심화시키면 어쩌자는 건지. 한국인이 ‘실력은 있는데 재수는 없는 애’가 되지 않도록 제발 이 점은 조심했으면 좋겠다.
새로운 매체는 아직도 시행착오 중이라, 검증받을 길이 많이 남았다. 자칫 빠지기 쉬운 위험에 대해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늘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좋은 채널들의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