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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다락 Jun 29. 2020

코로나19와 서양인의 개인주의(1)

서양인의 지나친 개인주의는 어디에서 오는걸까?  

유럽과 북미를 습격한 코로나19의 가공할 위력은 그들로서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서양 사람들은 초반에는 ‘아시아를 강타한 바이러스’ 정도로 생각하고 남의 집 일처럼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가 유럽에 상륙하자마자 환자수는 순식간에 불어났고 사망율은 모두의 예측을 뛰어넘었다. 우수한 보건체계와 통계를 자랑하던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늘 배우고 따라잡고 싶은 선진국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사실 이 바이러스가 '교활하다'고 표현될 정도로 가공해서, 처음 대하는 사회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국가는 황급히 봉쇄령으로 대응했는데 그 와중에 보여준 서구 시민들의 시민의식 또한 우리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봉쇄 시점을 고지하자마자 ‘마지막 자유의 밤을 즐겨야 한다’고 까페와 술집으로 몰려든 파리 젊은이들, 호흡기 바이러스라는 걸 알면서도 마스크를 안 쓰고 해변에서 북적대는 미국 사람들을 보며 아마 많은 한국 사람들이 혀를 찼을 것이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을 마냥 한심해 하기에는 그 뒤에 드리운 문화적 배경이 만만치 않다. 여기서는 지난번에 쓴 서양인의 마스크 거부감에 대해 더 짚어보고 다음 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그림자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코로나가 안 끝났는데 50만명이 몰린 영국 해변



음성언어 vs. 문자언어


‘마스크 거부감’에 대한 글을 쓴 후 지인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마스크에 대한 인식에서 동서양의 차이가 매우 큰  까닭이 ‘음성언어와 문자언어 중 어느 것으로 지적 유산이 승계 되었냐’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양 고대 문자의 첫 출발인 갑골문자는 하늘의 뜻을 기록하는 종교의식에 쓰였다. 반면 서양은 상업적 측면에서 이익과 거래를 기록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측면이 더 크다. 


문자 발생의 목적이 다르다보니 문자의 위엄도 다르다. 동양에서는 문자로 지적 교류가 이루어졌고 기록으로 후손에게 당대의 역사를 남기는 게 자연스럽게 되었다. 당연히 모든 시험은 문자로 치러졌다. 


과거 시험을 생각해보라. 세상에, 글짓기 실력으로 국가의 인재를 뽑다니! 어떻게 보면 동양 사람들은 문자에 미친 것 같다. 


동양에서는 책을 불태운 진시황은 지금도 ‘천하의 죽일 놈’ 취급을 받는데다, 비석에 새겨진 옛 글자을 탁본하여 해석하는 학문이 따로 있었다. 


서신으로만 학문적 교류를 했던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그러고도 만족했을까 싶지만, 아마 그들은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문자로 남기려 했던 우리 조상들. 종교적 열의도 몇 십년 간 세월을 들여 활자로 새긴다.  최초의 목판인쇄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그와 달리 서양에서는 토론으로 지성을 발달시켰고 수사학, 연설 등 동양에서는 발달하지 않은 언어 관련 분야가 몇 천 년 전부터 계속 발달해 왔다. 


수사학이 서양의 주요과목이라는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던 어릴 때 기억이 난다. 아니, 말하는 기술이 왜 중요하지? 동양인에게는 당연히 떠오르는 질문이다. 


서양의 지배계급이었던 기사들 중 태반이 문맹이라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 받았던 건 말할 것도 없고. 사회 지배 권력이 무기 사용자들에서 문자 사용자들로 일찌감치 옮겨갔던 동양 문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절정 장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연설 장면을 생각해보면, 서구 문화에서는 확실히 지금도 음성 언어를 중요시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들에게 마스크를 씌우는 것은 가면으로서의 부정적 역할 뿐 아니라 ‘내가 말할 자유’를 빼앗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싶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 책은 말을 기록하기 위한 것일 뿐. 모든 교육은 토론과 대화로 이루어졌다.




서구에서 개인의 자유는 불가침 영역인가?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가. 자유와 인권은 서구 민주주의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세금을 매기기 위해 내 계좌와 지갑을 끝까지 추적하는 정부, 이 정부에 대항해서 민주주의를 세운 것이 계좌와 지갑으로 상징되는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프랑스 혁명도 미국 독립혁명도 결국 세금 문제가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니 서양 사람들이 국가의 사생활 추적에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해가 간다. 우리나라처럼 애정행각이 드러나거나 동선을 비난받을까 두려운 게 아니라, 국가가 나를 쫓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이다. 그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하물며 내 입에 마스크까지 씌운다고?   


하지만 이런 문화적 배경을 생각하고 서양 사람들을 거듭 이해하려고 여전히 그들의 행동은 생각 없어 보이고 너무 지나치게 개인주의를 내세우는 것 같다. 목숨이 달린 일인데 개인의 자유를 누리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그런데 뜻 밖에도 최근 '회복적 정의'에 관한 어떤 책을 읽으면서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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