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ine Aug 23. 2021

왜 난 너에게 단 한 번의 사랑일 수 없었을까

당신과 결혼하고 싶었다.


고작 스물 몇 살이던 나는 당신의 아내로 사는 꿈을 꿨다.


우리가 함께 할 남은 삶이 아득히 멀고, 길다는 게, 죽도록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ㅡ당신 말을 빌리자면ㅡ 잘 맞지 않았다.


매일을 뜨겁게 싸웠다. 치열하게 맞붙었다가 서로에게 상처를 내고, 그 사실이 가슴 아파서 결국 울며 화해를 했다.


다툼 끝에서 매번 당신은 한숨을 쉬면서 나를 안아주었다. 어느날 부터 그 한숨의 농도가 짙어지는 것을, 화해를 하고도 오래도록 표정이 쓴 당신을 나는 애써 모른 척 했었다.


그 때 나는 당신과 다툼이 하루 이상 지속되는 것을 견디기 버거워 했다.


잠이 오질 않았다. 밥을 넘길 수도,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도 없었다. 놀랍게도 나는 매번 그랬다.


뭐가 그렇게 매번 애가 닳았을까.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을 나는 그 시절 처음으로 실감했다. 하루를 꼬박 채워서 만나도 헤어지면 밤이 너무나 길었다.


단 10분 동안 당신을 안을 수 있다면, 내 하루를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다.


당신만을 보고, 당신만을 기다리는 삶이 그 당시 내게는 참 즐거웠다. 트러블을 겪으면서도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유의미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나는, 어느 지점부터 당신이 내게 이별을 고해도 믿지 못했다.


우리가 헤어져? 말이 안되잖아.


내 20대가 오롯이 당신인데. 아무도 모르는 나의 아름다웠던 순간을 당신만이 알고 있는데. 네 자라난 속눈썹에, 부쩍 그을린 목덜미에 우리의 시간이 쌓여 있는데.


헤어지고 나면 그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나.


그렇지만 당신은 자주 말했다. 우리는 잘 맞지 않는다고.


연애도, 이별도 처음해 보는 거라서 낯선 것이라고. 사실 한 번 하고 보면 모두가 다 이런 이별을 하면서 살았음을 깨닫게 된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었다.


당신 말고, 다른 사람 품에 내가 안기는 것이 상상되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다르다고, 우리의 사랑은 지구에서 단 하나 유일한 것이라고. 나는 얘기했지만 끝끝내 당신은 나와 같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연애를 하고, 이별을 한 당신은 나보다 고작 서너 살 많았지만 당신의 처음은 이미 지나갔으므로.


당신은 내겐 단 한 번뿐이었던 사랑과 이별을 앞에 두고 그렇게도 매몰차고, 모질 수 있었다.


우리가 헤어진 뒤, 나는 나의 남은 삶이 너무 지루하고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실연의 상처는 덧나기만 하고, 좀처럼 아물지를 않았다.


하지만 시간은 공정하고도 공평하게 흘러, 나는 또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고 이별을 한다.


그리고 이제야 당신의 말들을 마음으로 이해한다.


싸우지 않는 연애가 생겼다. 정말로 나와 성향이 맞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는 부딪힐 필요 없이 연애가 좋게 흘렀다.


감정이 메마르면 이별의 때가 왔음을 알게 되었다. 남녀가 헤어지는 게 죽고 못 사는 문제보다야 얼마나 간편하고 편리한 일인가를 깨닫게 됐다.


우리의 순간을 잊었고, 당신은 내게 과거가 되었다. 내가 우려했던 것처럼 당신과 헤어졌다고 내 20대가 모두 날아가지 않았다.


사진을 무수히 많이 지우고 휴대전화 앨범이 모두 비워져서 운 밤이 길었으나 빈 곳은 어느 날 모두 메워졌다.


사랑니가 빠져나간 잇몸이 푹 패여 있다가, 어느덧 평평하게 차오르듯 사랑은 지나갔다.


나의 청춘은 내가 기억한다. 당신이 떠나도, 나는 여전했다.


나는 내 삶을 열심히 산다. 그러다가 문득 문득 당신 생각에 화가 날 때가 있다.


싸움의 끝이 늘 이별이던 당신은 헤어지자는 문자를 남기고 전화를 끈 채 동굴로 숨었다. 나는 꼭 그 밤에 당신과 이야기 하고 싶어서 추운 날 밖에 서서 기다린 적이 있었다.


당신을 보자마자 눈물이 흐르던 나를 보고, 또 우냐고 묻던 매정한 목소리와 표정이 가끔 눈앞에 그려진다.


이미 당신은 오래 전부터 준비했던 이별을 내게 알려주지 않았었는지.


당신이 나를 찍어준 사진, 당신과 먹었던 음식 사진도 모두 지우느라 지옥이었던 나의 밤.


당신과 함께 샀던 소품과 가구, 볼펜 한 자루까지 마음이 저려서 모두 버려야 했던 나.


당신이 무언갈 좋아했다는 말에, 나도 좋아지던 순순한 날들.


이제 당신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에도, 나는 일순간 감정이 덜어지지 않던 날들.


나를 왜 그렇게 함부로 대했었는지, 왜 내가 당신에게 그 정도 취급을 받아야 했는지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도 이제 다시는 하지 못 할 가장 여리고 투명한 사랑. 그것을 한껏 받았던 당신이 미치도록 샘이 나기도 한다.


왜 나는, 내게 당신이 그러하듯 가슴 절절한 생에 단 한 번 뿐인 뜨거운 사랑이 될 수 없었을까.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나의 예쁜 첫 순정이 다신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 영영 갔고 나는 그 사실이 아파서 가끔 운다.


나보다, 당신이 더 중요했던 그 시절의 내가 안쓰러워서.

매거진의 이전글 뜨거운 것은 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