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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Mar 17. 2022

전남친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좋은 이별이라는  있나? 내게 이별은 언제나 일방적이고, 지독하게 뜨겁거나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래서 나는 연예 기사면에 종종 등장하는 ‘좋은 동료 사이로 돌아간다’는 투의 말이 우습다. 사랑했던 사람과 서로의 건투를 빌어줄 수 있는 이별이란 실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마음을 조절할 수 있을 만큼만 서로를 좋아했다든지, 나이를 무척 많이 먹고 호호할머니가 되어 누군가와 잠시 연인 사이로 지냈었더라면. ‘오픈 릴레이션쉽’의 연애방식을 상호간의 합의하고 지속한 관계라면.


그런 특이한 상황을 제외한다면 나는 상상 속에서도 그 누구와 쿨하게 이별할 수 없다. 이별은 늘 그랬으니까. 정신 차리지 못 할 만큼 온몸을 뒤 흔들어 놓고 태연하게 멀어지곤 했으니까.


그 중에서도 참 서툴고 서툴렀던, 나의 가장 순수한 시절의 연애. 그 사람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에게 ‘그 사람’이란 생각만 해도 험한 말이 동반되는 존재다. ‘쓰레기’였고, ‘똥차’였으며, 길에서 만난다면 기어이 눈알 빠지도록 노려보기라도 할 사람.


그 사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었다. 처음 느껴 본 연애 감정은 사람을 하루종일 각성 상태로 만들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것, 내 전부를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것. 그 진부하고도 고전적인 표현을 모두 갖다댈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나를 망치는 것을 모두 허용했다. 표준 체중보다 조금 덜 나가던 내게 살을 빼라고 하면 굶어서라도 뺐더랬다. 내 옷차림과 화장법을 간섭하고, 나를 은은하게 무시하던 그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견뎠다.


그는 데이트 약속을 꼭 지네 집 앞에서 만나도록 잡았다. 버스를 한 번 환승해서 50분을 가야하는 거리. 난 하이힐을 신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로 그 거리를 갔었다.


데이트 비용을 70% 이상 내가 부담했고, 아깝지 않았다. 나를 좋아해주던 사람들. 내게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을 모두 등지고 그 사람만 봤다. 내가 그러는 동안 그는 단 한 순간도 나와 같지 않았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보다 더 답답한 건 과거의 나였다. 왜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녔을까. 답은 간단했다. 사랑했으니까.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할만큼, 그가 좋았으니까.


그 어여쁘고 찬란하던 시절을 모두 그에게 바치고도, 결국 버려진 것은 나였다. 그는 소위 말하는 환승연애를 했고 그 사실을 안 뒤 얼마 간 폐인처럼 지냈다. 헌신하다가는 헌신짝 된다는, 나는 아닐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 말이 정통으로 와 닿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그 이별은 앓던 이를 빼어낸 것처럼, 내게 더 후련한 내일을 데려다 주었다. 결국 나는 지금의 나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는 환승연애를 했던 이와 헤어지고 두어번 또 다른 연애를 했다. 그 사이로 술 주정처럼 내게 연락을 해 오는 일이 많았다.


그의 말을 옮겨보자면 ㅡ우습지만ㅡ이러했다. 우리가 그 순수한 시간을, 오래 만났는데 연인 사이는 끝났어도 가끔 안부를 물으며 지낼 수는 있지 않을까? 그 말을 듣고는 기가 차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 후 연결이 닿을만한 모든 수단을 차단하고 나서야 그는 주사를 멈췄다.


그런데 그가 결혼을 한다고? 나는 아주 작은 미련도 없는, 순전한 호기심으로 그의 SNS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비 부부의 형태를 갖춘 두 사람을 보았다.


여자는 사랑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그 시절 내가 그랬듯. 그리고 그 때와 다를 바 없이 그는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얼굴과 말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변했듯 그도 변했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는 듯 보였다. 예물 반지를 나눠낀 채 다가올 미래를 설레게 기다린다.


한 때는 그를 저주하기도 했다. 마음으로 오래 미워하고, 그리워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고 모든 것은 퇴색되었다.


나의 사랑을 받던 사람이, 다른 이와 영원을 약속한다. 나는 그 틈바구니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나에게도 좀 그렇게 애써주지, 하는 아쉬움과 저 여자한테는 충실하게 잘해라. 하는 마음.


그와 나는 최악의 이별을 했었고, 떠올리기 힘들만큼 나 스스로가 가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모든 것은 사라졌다. 나를 몇 번이나 절망케하던 사랑도 이별도 미움도 질투도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내게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나’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놓지 않는다면 최악이었던 이별도 모두 지나가버린다. 나의 지금처럼.


그의 소식을 들어도 내 중심이 전혀 흔들리지 않을 삶이, 기어코 온다.


그러니 이별이 당신을 너무 오래 갉아먹지 않도록, 짧게 아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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