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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쵸 Aug 31. 2023

새로운 시작

그가 암막 커튼으로 쳐진 어두운 방속에 시간의 개념을 잊고 살아온지 벌써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 방안에는 작은 책상과 컴퓨터, 그리고 수많은 심리학관련 책들이 유달리 많이 있다. 눈을 뜨면 아침이고 눈을 감으면 하루의 마감이다. 인생의 절반을 이 작은 방에서만 보냈으며, 책상위의 낡은 컴퓨터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 역할이었다.


'삐삐삐...빠빠빠...'

아침 7시면 항상 알람이 울린다.

'아.. 졸려'


크게 기지개를 한번하고 그는 침대의 이불을 정리 하면서 음악앱을 열어 가을에 어울리는 추천 음악을 켰다.

그는 히키코모리로 이 작은 방에서 지내왔지만, 항상 자신의 루틴대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그가 이 방안에서 아무도 모르지만 해야 할일들이 산더미처럼 많은 것으로 보인다.


방한켠에 화장실에서 간단히 세면과 양치를 마치고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아. 메일이 산더미처럼 많은걸. 언제 이걸 모두 읽어야 하지. 하...'


매일 하는 익숙한 일이지만 그는 생각보다 많은 메일이 있는것을 보고 습관적인 불평을 늘어 놓는다.

그는 온라인 상에서 네임드라 불리는 상담자이다. 아이디는 플로이드.

우연히 카페의 게시글에 올라온 상담글에 답변을 해주면서 유명세를 치르게 되어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밤낮없이 그에게 메일과 메세지를 보내곤한다. 그들은 그가 이런 히키코모리의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는 유아기때부터 남다른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작은 방으로 온후로는 수많은 책들과 영화등을 보며 경험하지 않는 모든것들을 습득하고 공감하고 그걸 상담하는데 활용했다.


'탁탁탁....탁. 타탁탁..'


오늘은 여느날 보다 키보드 자판음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때로는 책장에 꽂혀있던 여러 책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인터넷 상의 자료를 검색하면서 뭔가를 고민하면서 계속 자판을 두드렸다. 그렇게 한참을 책상에서 일을 하였다.


'배 고픈데. 왜 엄마의 노크가 없지?'


항상 8시면 그의 엄마는 방문앞에 아침 식사를 놓고 가곤했다. 아들이 히키코모리로 살아온 10년동안 단 한번의 끼니도 거르게 한적이 없었다. 아침8시. 오후 12시30분. 저녁 7시 하루 세번의 식사를 꼭 방문앞에 놓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엔 이상하게 식사가 없었다.


'엄마가 무슨 일이 있나? 뭐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랬겠지. 뭐'


다시 하던 일을 하느라 쉼없이 자판을 두드렸다.


'꼬르륵...'


그의 취침시간인 밤 11시가 다 되도록 식사가 없었다. 그는 배가 고파서 잠에 들 수 없었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면 될 수도 있는 일이 그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냥 어떻게 자보도록 하자. 내일 아침이면 엄마가 올라와 주실거야.'


그렇게 밤새도록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끼니가 되면 놓여있던 식사가 며칠전부터 사라졌다. 어머니가 항상 끼니를 챙겨 주셨는데 보이지 않는다. 배가 고팠다. 이 방문을 열고 나가야 하지만 그것을 결정하는데 몇일이 또 지났다. 사람은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기에 결국엔 커다란 용기를 가지고 방문을 나섰다. 검정후두로 얼굴을 모두 가리고 나선 방문 밖은 그의 방과는 달리 햇살이 마루에 깊게 들어와 밝은 느낌이었다. 어릴때 보던 거실의 풍경은 모두 사라지고 커다란 티비와 깔끔한 패브릭소파와 따뜻한 카페트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창밖의 나무는 우거져 있고 초록의 시원함이느껴졌다.


너무도 조용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외출을 하신건지 보이지 않았다. 왼편 식탁이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도 많이 변해 있었다. 어머니의 성격을 보여주듯 깔끔하고 먼지 하나 없이 모든 기구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우선 냉장고를 열어 시원한 물을 한잔 들이켰다. 물도 마시지 않은지 삼일이 지났기에 물병의 물을 모두 마실 기새로 들이켰다. 그리고 먹을 것을 찾아야 했다. 냉장고 안에는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음식들이 칸칸이 종류별로 분류 되어있었다. 이것도 어머니의 성격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허기진 배를 달래고 식탁에 앉아 다시 한번 거실과 주방을 둘러 보았다. 거실의 다양한 사이즈의 액자에 나의 사진이 있었다. 모두 10년전의 어릴때 사진들 뿐이었다. 어린아이의 옆에 서있는 부모님의 모습도 10년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뭔가 모를 감정이 복잡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중 거실 협탁위에 편지가 하나 있음을 발견했다. 부모님이 나에게 쓴 편지였다.


사랑하는 아들 세이지에게

우리는 오늘 커다란 결심을 하게 되었단다. 지난 십년간 볼 수 없었던 너를 그리워 하며 너희 아빠와 내가 흘린 눈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너의 결정과 너의 아픔을 이해 하기에 우리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제 우리 부부도 우리의 인생을 찾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너에게 미안하다. 아들.

너무도 이기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너가 언젠가는 그 방에서 나와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기다림으로 살아온 십년이었단다. 이집을 팔고 머나먼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단다. 미안하다. 몇일내로 이집을 비워야 할것이다. 너가 따로 이사를 하거나 할 필요는 없단다. 모두 새로 이사온 분들께 전적으로 맡기기로 하였기에 너가 할것은 없단다.


다만 이집을 나가 우리가 몇년전에 마련해 놓은 숲속의 작은 카페로 거처를 옮겨야 할것 같다. 우리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한다. 부디 너의 삶을 너가 잘 개척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한다. 세이지.


난 이집을 비우고 그곳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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