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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쵸 Apr 13. 2024

테트라포드

그는 삶은 계란과 초코우유를 번갈아 먹으며 창 밖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덜컹거리는 기차칸은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에게 흔들림을 부여하지 못한다. 작은 진동에 외부의 변화는 없는 듯 보였다. 하늘은 파랗고 높아 이제는 여름이 모두 지나간 듯하였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그리운 곳이 있다. 강원도 양양군의 낙산해변.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던 시절, 낙산 해변에서 마시던 자판기 커피가 항상 뇌리에 남아있었다. 그때도 삶에 대한 고민과 투쟁으로 항상 복잡하던 시기였다. 지금보다 어찌 보면 더 그러한 시절이라 생각된다. 우연히 들렀던 낙산해변은 온통 파랗고, 바람은 시원하여 머릿속 복잡한 마음을 모두 날려 보내기엔 너무도 좋은 최적의 장소였다. 그날은 사람이 더욱이 없는 가을의 날씨였다. 지난여름 한창 바빴을 테지만 가을에 들어선 해변은 인적이 드문 평일 오후였다. 해변가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자판기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모래는 따뜻했고, 바람은 시원했으며, 그 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커피 향기가 좋았다. 그렇게 난 불안에서 안정으로 접어들었었다.


기차는 어느덧 강릉역에 도착했다.


양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 점심을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항상 강릉에 오면 들리는 짬뽕집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선배가 정말 맛있는 중국집이 있다면서 데려다준 그곳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정말 특이한 중국집에서 짬뽕 사줄께. 그곳에 가면 사람들이 짜장면이나 볶음밥 대신 짬뽕만 먹는다. 짬뽕이 정말 맛있거든'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자랑스럽다는 듯이 짬뽕 한 그릇을 집어 내게 건네주었다. 그 당시만 해도 중국집 하면 짜장면이 대표 음식이었기에 조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여닫이 문들 열고 들어선 그곳은 여느 중국집처럼 빨간색이나 중국풍의 소품 하나 없었다. 그냥 오래된 여느 노포들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선배가 건네준 짬뽕은 한눈에 보아도 평소에 보던 보통의 짬뽕과 달라 보였다. 진하게 우려 내서 그런 듯한 국물의 색깔과 홍합이 다량으로 들어있었다. 강원도 특산물 중 하나인 오징어도 많이 들어있었다. 한 젓가락 하기 전 그릇을 두 손으로 들어 국물을 한 모금 마셔보았다. 육수의 진한 맛이 너무 맛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짬뽕만 먹는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다시 찾아온 이곳은 대학시절에 방문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홀만 조금 더 늘어난 형태로 변했고, 이모님과 할머님도 모두 그대로였다. 이 가게를 처음 오픈 한 분으로 생각되는 아버지의 사진이 주방 윗켠 액자에 담겨져 있었다. 물론 맛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식곤증에 잠이 들었는지 버스는 이미 낙산해변에 도착해 있었다. 푸른 바다, 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 이 모든 것들이 그때 그대로였다. 다만 해변가에 덩그러니 서있던 자판기는 자취를 감췄다. 아마도 주변에 카페들이 많이 생기면서 변화된 모습이 아닐까 유추해 본다.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들고 그날처럼 해변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비록 그날처럼 바람에 의한 진한 커피 향은 없었지만, 해변은 여전히 따뜻했다. 나의 마음은 이내 불안에서 안정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빨간 등대 옆 노란색 테트라포드.


낙산해변 좌측 끝엔 빨간색의 작은 등대가 있었다. 색상 때문인지 우체통이 연상되는 그런 등대였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길게 쭉 뻗어 있었으며, 양옆에 높게 테트라포드가 많이 쌓여져 있었다. 그 당시 테트라포드에 잘못 들어가면 다신 나올 수 없다는 괴담 아닌 괴담도 있었고, 왠지 모르게 무심히 놓여있는 테트라포드들은 경계심을 증폭시키는 그런 느낌을 주었었다. 그날도 그런 왠지 모를 불안감을 간직한 체 테트라포드 사이를 걸었다. 그러던 중 노란색 테트라포드 하나가 보였다. 다른 것들은 모두 회색 시멘트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데 그 테트라포드만이 다른 색을 가지고 있었다. 노란색이어서 그런지 나에게 주었던 경계심 같은 것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한참 동안 그 앞에 서서 이유를 생각해 보았지만 결론을 내릴 순 없었다.


한참을 서있다가 가방에서 펜을 꺼내 노란색 테트라포드에 다가갔다. 그리고 한참을 주저하다 무언가를 적기시작했다. 그랬던 그 노란색 테트라포드가 생각났다.  정말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이 생각난 것이다.

난 엉덩이 묻은 모래알들을 두 손을 털고 일어나 그 빨간색 등대를 향해 걸었다. 저 멀리 노란색 테트라포드가 보였다. 유달리 다른 색을 가지고 있어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테트라 포드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난 대학시절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 가슴이 떨리고 벅차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별 모양을 한 노란색 테트라포드. 여전히 경계심이 조금은 올라왔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추억이 남아 그대로 있는지 궁금함을 견딜 수 없었다. 기억으론 오른쪽 아랫 상단이었다. 그곳에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파도가 몰아쳐도 상단뒤쪽이면 오랫동안 그대로 남아있을 거라 그 당시에도 생각했었다.


여전히 들리는 파도소리, 길게 뻗은 방파제, 그 끝단에 서있는 작은 빨간 등대와 노란색 테트라포드, 그리고 그 앞에 서있는 나. 이 모든 게 그 당시의 변하지 않는 모습 그대로였지만 그날 내가 쓴 글만은 남아 있지 않았다.


주변의 갈매기 울음소리,파도소리, 바람소리 그 모든게 점점 크게 들려왔다. 이내 시간여행은 이걸로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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