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늘고 약해서 바람에 잘 흔들리는 식물과 같다. 작은 바람이 어디서 불어 오는지 기울어지는 방향만 봐도 알 수 있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항상 흔들리지 않는 때를 기다리며 이곳에 서 있기를 수년간 해오고 있다. 추운 겨울엔 그나마 윗둥이 잘려 나가 밑둥으로 흔들리지 않으며 꾿꾿히 서서 다가올 봄에 달라질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버텨내곤 했다. 하지만 봄에 모습은 생각과 항상 달랐다.
머지 않은 근처에 커다란 고목이 하나 서있다. 그 할아버지는 어떤 바람이나 어떤 곤충, 심지어 어떤 사람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곳에 서있다. 그런 모습을 항상 동경했다. 난 태어나길 연약한 식물인지라 그렇게 꼳꼳하게 서서, 지나가는 세월들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변치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다시 내가 홀씨를 만들어 세상 이곳저곳을 날라 갈 수 있다면, 그렇게 될 수 만 있다면, 양지 바르고 바람이 거의 없는 평화로운 곳에 자리잡아 할아버지와 같은 고목으로 태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난 할아버지처럼 커다란 나무가 될 수 없다. 그냥 난 작은 식물일 뿐이다. 누군가는 나를 연약하지만 거센 비바람에도 버틸 수 있는 유연함이 있다는 위로를 하지만 그런건 그냥 위로일 뿐이다. 위로가 장점인, 그래서 때때론 불공평 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