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변호사로 돌아온 다음에 첫 컬럼을 냈습니다. 지면관계상 내용이 좀 편집되고 제목도 바뀌었는데 원문을 한번 여기에 옮겨봅니다.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COVID19는 우리의 삶과 생활의 패턴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신조어인 “언택트(Untact)”라는 단어는 이제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표현이 되었다. 이러한 중요한 변화 중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쇼핑의 온라인화, 즉 오프라인 유통시장의 축소와 이커머스(e-Commerce) 플랫폼의 폭발적 성장일 것이다. 2019년 기준으로 약 80조원 정도로 추산되던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의 거래액 규모는 2020년에는 150조 내외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이후에도 가파른 성장을 이룰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지난 2015년 이후 우리나라의 금융 B2C 시장을 뒤흔든 흐름은 바로 핀테크이다. “간편결제”와 “간편송금”이라는 두 가지 화두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핀테크 산업은 이제 인터넷전문은행, 오픈뱅킹, 로보어드바이저, 온라인증권과 보험, 자산관리, 금융빅데이터와 마이데이터 등 수많은 분야로 풍성한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이제는 젊은 세대들에게 금융이란, 스마트폰의 앱을 켜고 지문인증을 하고 전화번호로 돈을 보내고 나눠내기를 하고, 자투리돈으로 해외주식이나 펀드를 사고 자산관리 앱으로 신용카드를 비교해보는 행위로 자연스럽게 인식되고 있다.
이런 이커머스와 핀테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언뜻 생각하면 간편결제 외에는 잘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원래 온라인쇼핑플랫폼에는 결제와 정산이라는 기능이 따라붙기 마련이고, 핀테크 시대 이후에는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던 전업PG(Payment Gateway)사 외에 각 플랫폼별 간편결제서비스(커머스PG 또는 1차PG라고 하며, 쿠팡의 (구) 로켓페이, 이베이코리아의 스마일페이, 11번가의 (구) 11페이, 인터파크의 원페이 등이 있다)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 시장의 점유율을 압도한 것은 검색 및 쇼핑플랫폼에서 출발한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톡에서 출발한 카카오페이이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간편결제는 핀테크 분야의 여러 서비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송금이나 투자나 예금이나 대출과 같은 순수한 금융거래가 핀테크의 한 축이라고 한다면, 상거래의 결제와 정산이라고 하는 기능 또한 중요성이 이에 못지 않은 또 하나의 축이라고 볼 수 있다. 본래 금융이 경제주체간의 자금흐름의 비대칭을 해소하고 실물경제를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경상거래와 자본거래의 두 축으로 움직인다. 비록 파생상품이나 투자상품처럼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는 아니지만, 상거래대금의 결제와 정산이라는 기능은 그 자체로 실생활의 엄청나게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그 거래량과 규모도 무시무시할 정도로 크다.
이에 더하여, “플랫폼”이라는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이 검색에서 출발한 플랫폼이든, 위챗이나 카카오톡처럼 커뮤니케이션 앱에서 출발한 플랫폼이든, 페이스북 같은 SNS 플랫폼이든, 아마존이나 쿠팡 같은 커머스 플랫폼이든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바로 이용자들의 삶의 생태계를 지배하는 일종의 에코시스템일 것이며, 이에 수반하여 생성되는 데이터와 종속효과를 기반으로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태계의 전제가 되는 사람의 삶과 생활의 중요한 큰 부분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상거래이자 커머스이고, 그러한 커머스에 수반된 결제와 정산 서비스는 이제는 단순히 편리한 체크아웃을 통한 소비자의 확보와 성장의 역할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검색과 구매부터 배송완료에 이르는 커머스 프로세스 전반을 연결하는 주도적인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네이버 쇼핑에서 상품을 검색하고 네이버페이 배너가 달린 판매자를 신뢰하여 구매한 후 배송출발부터 완료, 구매확정과 후기작성에 이르는 연결프로세스를 떠올려보자).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커머스의 결제서비스로 출발한 핀테크 서비스라고 하더라도 결국 최종적인 목표인 플랫폼 에코시스템의 중요한 한 부분을 구성하는 것이며 이를 기반으로 보다 진화된 핀테크 서비스로 진화하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다. 플랫폼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데이터 관점에도, 이러한 커머스 기반 핀테크는 비금융 상거래데이터를 기본적으로 축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로켓프레시나 마켓컬리의 사례와 같이 이커머스 자체의 포트폴리오도 공산품을 넘어 농수산품과 식품과 같은 일상생활에 더욱 밀착된 유형으로 확장하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커머스 플랫폼이 이용자를 만나는 지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용자에 대한 판매접점(Point of Sales; POS)에서 VAN망에 연결된 POS기기를 통하여 신용카드거래가 처리되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이용자친화적인 UX에 따라 모바일기기에서 결제 프로세싱이 일어나고 데이터가 축적된다. 한편, 판매자 또는 공급자에 대하여는 별도의 접점에서 판매대금정산이 일어나고 데이터가 쌓이며, 이러한 양쪽 접점에서는 이용자나 판매자의 수요에 따른 금융서비스를 공급하고자 하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용자 접점에서는 전통적인 지배자인 신용카드에 대항하기 위한 오픈뱅킹 기반 충전식 원클릭 결제와 후불결제의 경쟁, 또는 제휴가, 판매자 접점에서는 공급망금융(Supply Chain Finance)의 공급을 통한 정산주기의 단축과 우량판매자의 확보와 같은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접점은 결국 이커머스 기반 핀테크가 종합 핀테크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는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나아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크로스보더 이커머스(CBEC)에도 주목해보자. 국내 해외직구 시장 규모는 매년 20%가 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화장품을 중심으로 한 역직구 시장 또한 매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알리익스프레스와 같은 해외 쇼핑몰 뿐만 아니라, 네이버, 쿠팡, G구 등 국내 이커머스업계도 직구서비스 확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에 맞추어 국내외 결제서비스 또한 국가별 외환/송금규제의 빈틈을 찾아 다양한 형태로 경쟁하거나 제휴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얼마전 어펌(Affirm Holdings)이라는 회사의 IPO 성공 소식이 외신을 통하여 전해졌다. 어펌은 페이팔의 공동창업자 중 하나인 맥스 레브친(Max Levchin)이 설립한 회사로서, 온라인쇼핑 이용자에게 할부 등 방식의 후불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며, 지난 1월 13일 12억달러 규모의 뉴욕 나스닥 상장에 성공하고 직후 주가는 가파르게 치솟았다. 또 다른 하나의 뉴스가 지면을 장식하였는데, 미국의 오프라인 유통의 전통 강자인 월마트가 핀테크 기술기업을 설립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발표 직후 월마트의 주가는 1.5% 상승하였으며, 전통적인 유통기업들이 커머스 기반 핀테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커머스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이를 기반으로 핀테크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핀테크 기업들의 경쟁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오프라인 커머스시장을 선점하고 온라인 확장에 집중하고 있는 삼성페이, 50만개에 이르는 네이버쇼핑의 강력한 판매자 생태계를 기반으로 오프라인 확장을 모색하고 있는 네이버페이, 증권, 보험, 자산관리 등 금융서비스에 집중하면서도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 온오프라인 결제시장으로의 확장도 놓치지 않고 있는 카카오페이, 이커머스 시장의 독보적인 강자로 자리매김한 쿠팡의 점유율을 기반으로 다양한 방면의 확장과 성장이 기대되는 쿠팡페이 등, 이러한 경쟁은 앞으로도 더욱 치열해지고 이를 기반으로 더 많은 혁신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며, 이는 앞으로 이러한 이커머스와 연계된 핀테크를 다시 한번 주목하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핀테크 서비스의 출발이 검색 플랫폼이든,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든, 커머스 플랫폼이든 결국 그 최종적인 지향점은 우리의 삶과 생활이 이루어지는 에코시스템일 것이고, 핀테크를 포함한 모든 서비스는 이러한 에코시스템의 일부를 구성하기 위하여 융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 5년간 숨가쁘게 달려온 핀테크 산업도 사실 아직은 1회초인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이커머스와 핀테크의 접점을 주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