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 서울시민의 대서울 역사 기행문
저자인 김시덕 교수님을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페이스북에서 팔로우하면서 어느 정도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특히, 공상적 반일민족주의와 내셔널리즘, 사농공상의 유교근본주의에 아직도 찌들어 있는 이 나라에서,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으로 전쟁사를 조망하고 연구하며, 그런 본인의 연구와 지혜를 시민들과 계속 나누려고 하는 모습이 매력적인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의 저서로서 제가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는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가 있는데요, “천하의 죽일놈인 왜구 쪽발이들이 선한 백의민족을 침략해서 살인과 강간을 저지르다가 결국 쫒겨간 이야기”라는 식의 단선적인 서술이 아니라, 세계사의 도도한 흐름속에서 벌어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다이나믹한 힘싸움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나간 임진왜란 이야기가 참 흥미로왔습니다.
이분이 이번에 써낸 “서울선언”을 사두고 좀 묵히다가 요 며칠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요즘 읽은 그 어느 책보다도 크게 공감하였습니다.
이 책은 공화국의 수도 서울이 한 사람 한 사람 평범한 시민이 살아오고 만들어온 공간이며 백제시대부터 조선왕조시대, 식민지 경성시대와 근대화 시기를 거치면서 그런 수많은 삶의 흔적이 축적된 공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의든 타의든 간에 계속적으로 확장된 하나의 유기적 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퇴행적인 조선왕조의 신비화, 민족정기 편집증, 삼남 양반중심과 남성중심적 사고, “식민잔재” 만능주의에 따른 자기최면현상에 대해 (정중한, 그러나 통쾌한) 비판을 가합니다. 그리고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여러 공간들 (특히 저와 경험을 공유하는 반포 인근)에 관한 여러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의 기록도 보여주고, 근대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 속에서 변화되어 가는 여러 공간들 (경복궁이나 남대문 같은 재현된 문화재 속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그러나 역시나 서울의 역사의 다른 한 축을 만들어왔던 여러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놓습니다.
그러한 내용이 술술 읽히는 3장까지 읽으면서 저는 “아..이러이러한 내용을 독후감으로 써서 브런치에 올리면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4장에 이 저자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4장을 읽고 나서는 “아...내가 감히 뭐라뭐라 요약을 해서 서평을 쓰는 것 보다는, 그냥 4장을 직접 읽도록 추천하는 것이 낫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만큼 4장의 글은 구구절절 어느 하나 동감가지 않는 문장이 없을 만큼 뼈져리게 공감이 가는 것들입니다.
온 나라가 퇴행 투성이입니다. 현실에 자긍심이 없는 자들이 과거를 미화하여 스스로에 대한 자격지심과 불안감을 감춘다고 하는데, 그러한 퇴행적인 기운은 오히려 요즘 더 심해지는 듯 합니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운답시고 벌어지는 또다른 역사 파괴행위들, 이름만 제국이었던 전근대적 왕조정권에 대한 미화와 뮤지컬 명성황후, 모든 것을 “친일”로 몰아 악으로 규정하면 자동적으로 정당화되는 집단 공격들, 만주벌판을 누비는 기마민족의 후예임을 주장하는 서점의 역사서 편에 꽂힌 수많은 유사역사학 위서들, 국가대표 축구경기때마다 벌어지는 정신력론과 “치우천황” 깃발.....그런 분위기에서 세뇌되는 “백의민족”과 “왜구”, “떼놈”의 패러다임...
우리는 공화국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서울 곳곳에는 조선말부터 식민지 시기를 거쳐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살아왔던 수 많은 치열한 삶의 흔적들이 숨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이나믹하게 변화되어 가는 서울이 모습은 그것이 주상복합건물이든 제2롯데월드이든 대림동 차이나타운이든 간에, 또 하나의 서울의 역사의 일부분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그런 퇴행적인 환상의 안경을 벗고, 지금 우리의 현실과 삶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기록하고, 느끼고,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표어가 종종 쓰입니다만, “역사를 부풀리고 채색하고 그 것에 퇴행적으로 침잠하는 민족에게도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민족”이라는 개념은 “민족”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글이 두서가 없게 되었네요. 그 만큼 이 책을 보고 느낀 많은 공감과 감동이 아직 제 머리 속에서 잘 정리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뭏든 저에게는 몇 안되는 베스트 필독서 목록에 오르게 될 것 같습니다. 저자의 다음 활동도 무척 기대가 됩니다. 또한 김교수님이 제 반원국민학교 2년 후배라는 점을 확인하니 더 기쁘군요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