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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소리 Feb 22. 2023

값싸지만 비싼 물건




   부산釜山          



   '가마 부', '산 산’. 한자의 뜻으로 보면 ‘큰 가마솥 같은 산’입니다. 그런 산이 꽤 있거니와 중심 피난지였던 역사적 배경 때문에 달동네나 산을 깎아 만든 동네가 많습니다. 많이들 놀러 오시는 감천마을처럼요. 저는 부산의 한 동네에서 대부분 자랐습니다. 그곳도 산을 깎아 만들었지요.



   어스름이 깔릴 무렵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버스 뒤쪽 자리에 앉았지요. 앞에는 새근새근 자는 아기가 있었고, 그 작은 것을 포대기로 동여맨 젊은 엄마가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한 보따리 짐이 있었지요. 버스는 경사진 곳과 완만한 곳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했습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돌기도 했지요. 젊은 엄마는 아기를 팔로 감싼 채 다리로 짐을 받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과속방지턱이 나왔고, 아기는 바닥에 토를 했습니다.     



   젊은 엄마는 한 손으로 주머니와 짐 무더기를 여기저기 뒤졌습니다. 한 손으로는 아기를 받친 채였지요. 바삐 움직이는 손은 곧 멈추었습니다. 얼굴이 붉어졌지요. 버스 안은 조용했습니다. 각자 힘든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저녁이었지요.



   누군가 벨을 눌렀기 때문에 버스는 규칙대로 어느 정류장에 멈췄습니다. 젊은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 아기와 짐을 붙잡고 도망치듯 나갔습니다. 버스는 웅성거렸습니다. 날 선 단어가 떠돌았지요.         

 


   그 버스가 지나는 길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동생을 등에 업은 채 한 손에 제 손을 그리고 다른 손에 짐을 들고 오간 길이었으니까요. 혹은 두 손에 한가득 짐을 든 채 잘 따라오라고 거듭 당부하셨던 길이었으니까요. 차가 쏜살같이 지나는 곳이면 당신은 포대기를 재차 정돈하고, 저를 바라봤습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입에 물고서 도로를 횡단하는 모습이었겠지요.    

    


   웅성거리던 버스는 점차 잠잠해졌습니다. 젊은 엄마와 아기가 나갔던 문으로 저도 나갔습니다. 어둑하고 가파른 길을 걸었습니다. 집에 들어가 어머니가 예전에 주셨던 손수건을 꺼냈습니다. 언젠가  때가 있을 거라고 덧붙이셨지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을 덮어줄  있는, 값싸지만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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