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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소리 Mar 06. 2023

내일 만나자




   방을 나서면 자주 천가를 따라 걷는다. 겨울에는 저수지 댐을 닫아 놓아서 메마른 흙과 돌뿐이었다. 지금은 비가 줄곧 내려 물이 출렁인다. 징검다리 사이에   풀이 무성하다. 천에 오면 아홉 살에 키가 멈춘 동네 친구가 떠오른다.



   그때도 장마 후의 여름이었다. 어른 없이 천에서 물놀이를 했다. 그 친구는 동생이 물살에 놓친 슬리퍼 한 짝을 되찾아주려 쫓아갔다. 차츰 멀어지더니 불어난 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한동안 어른들은 ‘함부로 물에 들어가지 마라’, ‘천에 물건을 빠뜨렸으면 그대로 두어라’ 하고 재차 말했다. 그 후로 물을 조금 무서워하게 됐고, 무언가 붙잡으려고 발을 내디디면 등 뒤에도 무언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은 슬리퍼야 잃어버려도 새로 사면 그만인 게 되어버렸다. 헤어지면서 내일 만나자고 약속하던 그때. 통통하고 보드라운 발을 가진 동생의 슬리퍼 한 짝은 그 아이에게 무엇이었을까.



   그 아이는 앞으로 나아갔다. 어쩌다 나는 시집을 펼쳐 보는 사람으로 자랐고, 뒤돌아보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마주 볼 지점이 있을 거라고 아렴풋이 믿는다. 녀석은 나보다 키가 컸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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