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세상에서 아껴두는 것 (2)
여러분은 음악을 어떻게 들으시나요? 저는 음악을 듣는 방법이 군대 다녀오기 전후로 바뀌었어요. 지금은 군에서 음악을 듣고 싶다면 스마트폰을 쓰겠죠.
저는 CD플레이어를 선임한테 물려받았어요. 초등학생 시절부터 MP3를 썼던 세대라 처음 봤을 때 신기했어요. 워크맨과 함께하신 분도 계실 텐데 웃으면 안 되는 부분일까요(웃음). 그렇게 군에서 CD앨범을 한 장씩 모았답니다. 전역하고서는 스피커와 라디오가 내장된 CD플레이어를 쓰고 있어요. 도구나 매체가 바뀌는 일은 강력한 일인 것 같아요. 인식하고 사고하는 방법이 달라지지요. 가져온 글을 한번 읽어볼게요.
인간의 의식과 행동은 도구에 의해 매개된다. 숟가락을 들면 ‘뜨게’ 되어 있다. 젓가락을 손에 쥐면 ‘집게’ 되어 있다. 포크를 잡으면 ‘찌르게’ 되어 있고, 나이프를 들면 ‘자르게’ 되어 있다. 평생토록 하루에 세 번씩 ‘뜨고’ ‘집는’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의 의식과 ‘찌르고’ ‘자르는’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의 의식은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서양인이 동양인에 비해 훨씬 공격적인 이유다.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의 생각은 사용하는 도구로 매개된다. 구 소련의 심리학자 레온티예프의 ‘활동 이론’이다. 인간 의식은 행위가 일어나는 물질적 맥락에 따라 형성된다는 주장이다.
김정운 .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 쥐 때문이다!」 부분 . 『에디톨로지』 . 2014
파마 머리 교수님으로 유명하신 분이죠. 갖고 계신 유머 감각이 글에도 묻어 있어요. 문장이 힘 있고 지식이 골고루 녹아 있어서 어떤 책이든 한번 펼치면 손을 떼기 힘들어요. 영업은 이쯤 할까요(웃음). 글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쓰는 동양권과 포크와 나이프를 쓰는 서양권의 차이점을 말하고 있죠. 사용하는 도구에 따라 사고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말하고 있어요. 숟가락과 포크처럼 음악을 듣는 수단인 스마트폰과 CD플레이어에도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보편적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잖아요. 만 원에 못 미치는 금액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죠. 어디서나 언제든지 무수한 곡을 제한 없이 들을 수 있으니까요. 손가락만 몇 번 까딱이면 노래가 흘러나오죠. 궁금한 노래가 있다면 바로 들어볼 수 있어요.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기도 간편하고요. 그러다보면 추가한 곡이 점점 늘어나고 결국 어떤 노래가 있는지도 모르게 되더라고요. 일일이 찾아 듣는 게 번거로워서 랜덤으로 재생하는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어차피 내 귀에 좋았던 곡들이니까요.
반면 CD플레이어는 다르죠. 강제성이 있어요. 일일이 앨범을 찾아서 사야 해요. 가격은 만 원이 넘어요. 게다가 물리적인 공간도 차지하니 관리해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있어요. 그래서 보다 신중해져요. 어떤 앨범을 살까? 내가 어떤 노래와 가수를 좋아하지? 어떤 앨범을 사두어야 오래 들을까? 그런 질문과 기다림이 필요해요. 스마트폰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불편하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음악을 듣는 결이 달라져요.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면 한 곡 한 곡 무심코 듣는 경향이 있었지만, CD플레이어로 들으면 버튼을 누르지 않는 한 순서대로 끝까지 들어야 해요. 그러니 가급적 해당 앨범에 수록된 곡을 한번씩 다 들어본 뒤에 구매 여부를 결정하죠. 그 일은 결국 아티스트가 담고자 한 작업을 모두 훑어보는 일이고, 자신의 취향은 알아가는 일이죠.
그렇게 앨범을 모으면 음악이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이미지로 다가오죠. 그래서 음악에 대해 말하는 법도 사뭇 달라지는 것 같아요. 가령 나는 그 노래가 참 좋더라, 라고 말할 것이. 나는 그 가수 앨범 중에 세 번째 음반을 좋아해. 왜냐하면 지금까지 낸 경쾌한 앨범과 달리 어두운 분위기를 품고 있어. 그게 그 가수 음색이랑 은근히 잘 어울리더라. 앨범 재킷도 수록곡이랑 딱 맞는 것 같고. 원래 악기가 기타, 기타 코러스, 비올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앨범 여섯 번째 트랙에서는 첼로를 썼어. 우중충한 느낌이 색달라. 적적한 밤에 듣기 좋아. 라고 말할 수 있게 돼요.
이어서, 노래를 듣고 싶으면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걸 무작위로 듣는 게 아니라. 아침을 맞이할 때, 나른한 오후, 노을이 깔리기 시작하는 오후, 친구가 놀러온 저녁과 같은 시간적 요소와 분위기를 고려해서 앨범을 선택하게 돼요. 나만의 앨범이 되어가는 것이죠. 그렇게 아껴 듣다 보면 한날 앨범을 들고서 해당 가수의 공연을 관람하는 자신을 볼 수도 있어요.
떠들고 보니 앨범 찬양론자가 된 것 같네요(웃음). 다르게 보면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불편'이에요. 자본은 편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걸 개발하고 있지요. 충분한데도 더 좋아진 걸 만들었다며 선전하지요. 면도기,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 차, 스마트폰, 헤어드라이기... 하지만 우리에게 인간성을 가져다주는 건 불편이 아닐까요. 그 속에 내던져지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고민해야 하죠.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해야 하고요. 그 번거로운 과정에서 자신의 모습이 하나씩 생기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변화하는 세상에 맞서자는 말은 아니고요(웃음). 직접 나서지 않아도 해결해주는 세상이기 때문에 부러 자신을 불편에 던져놓을 줄 알아야 하지 않나 싶은, 그런 생각이에요. 그래야 개인이 다채로워지고 또 행복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CD플레이어에 큰 단점이 있는데요. 절판된 앨범이 비싸요(웃음). 스트리밍해서 듣는 분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앨범을 조심스레 권유해봐요. 여러분 중에는 제게 LP를 권하실 분도 있겠군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