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세상에서 아껴두는 것 (1)
한때 멘토라는 말이 꽤 번져나갔죠. 비슷하면서 조금 다른 얘기를 꺼낼까 해요. 먼저 이우성 시인이 이성복 시인을 인터뷰한 내용을 읽어볼게요.
Answer : 이성복
시를 쓰려면 시 가지고 말장난하는 것보다, 좋은 시 읽는 것이 더 중요해요. 또 좋은 작가가 되기보다 좋은 독자가 되려는 게 글쓰기의 지름길이에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안의 스승을 찾는 거지요.
Question : 이우성
선생님의 스승은 누구예요?
Answer : 이성복
김수영, 카프카, 플로베르, 뭐 그런 이름들을 들 수 있겠지요. 어떤 작가를 스승으로 택한다는 건 배우자를 택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해요. 스승이 없으면 헤매게 돼요. 아까도 말했지만 시 쓰는 사람은 시가 씌어지는 자리를 자꾸 돌아봐야 해요. 삼사십 년 썼다고 어느 날 좋은 시가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중학생은 바로 돼도 예순 살 먹은 문학박사는 잘 안 되는 게 이 세계예요. 바른 길을 찾아가지 않으면 백 년 천 년이 가도 헛방이에요. 평생 서울 간다면서 부산 가 놓고, 남대문이 왜 안 보이느냐고 떼를 쓰면 뭐라 하겠어요. 글쓰기에서 ‘서울 가는 것’은 자기 고통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거예요.
『ARENA 2015년 3월 호 』
이성복 시인은 시 쓰는 사람에게 스승을 택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있어요. 저는 스승과 비슷한 느낌으로 롤모델이 한 명 있어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인데요. 하루키 소설에 흥미를 느끼긴 하지만 광팬은 아니에요. 하루키가 이룬 작가로서의 작품성이나 작업량 혹은 문체를 닮고 싶은 것도 아니에요. 그가 글 쓰는 일을 대하는 태도, 자신의 삶을 대하는 방식을 배우고 싶어요. 라이프 스타일 롤모델이죠.
아침 5시 전에 일어나 밤 10시 전에 잔다고 하는, 간소하면서도 규칙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루를 통틀어 가장 활동하기 좋은 시간대라는 것은,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 그것은 이른 아침의 몇 시간이다. 그 시간에 에너지를 집중해서 중요한 일을 끝내버린다. 그 뒤의 시간은 운동을 하거나 잡무를 처리하거나 그다지 집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들을 처리해 나간다. 해가 지면 느긋하게 지내며 더 이상 일은 하지 않는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며 편히 쉬면서 되도록 빨리 잠자리에 든다. 대체로 이런 패턴으로 오늘날까지 매일의 생활을 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64~65p
책을 쓰지 않을 때는 혼돈 그 자체라고 다른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지요(웃음). 하루키의 생활에 대한 산문과 인터뷰가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라이프 스타일을 몇 키워드로 요약하자면, 집중과 분배. 단순. 반복. 여유. 독립이 될 것 같아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제가 일상에서 추구하는 스타일이며 글 쓰는 사람으로서 가지고픈 리듬이에요.
가장 하고자 하는 일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 일은 적절히 배분하고.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다른 일을 겸하고. 운동으로 생활의 리듬을 유지하고.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두고. 그렇게 살아야 저는 편안하고 행복한 것 같아요.
다르게 보면 대인관계가 적어서 외롭죠. 주로 혼자 지내면 모든 게 지나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거리를 걸으면 사람이 옆을 지나고, 차가 지나고, 가로수와 상가를 지나고. 마주보며 밥 먹는 사람도 없고. 내가 어디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이도 없고. 그래요. 그런 때면 김소연 시인의 말을 떠올려요. ‘외로움이 윤기 나는 고독이 될 때까지 잘 닦아두고 싶다’. 그러면 눈길을 오래 주는 것, 오래 머무는 곳, 유심히 듣는 소리, 찬찬히 맛보는 음식, 만져보는 나뭇결 같은 게 관심을 주는 만큼 다가오지요. 그렇게 곁을 나누는 것이 하나씩 늘지요. 물론 모든 순간은 아니지만(웃음).
여러분은 일상에서 어떤 패턴을 추구하나요? 롤모델이 따로 있으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인물의 직위나 업적만 바라보아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내가 하는 일을 고취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되묻고 싶어요. 그 사람이 이루어놓은 것은 결과물인데 거기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휘황찬란한 직위나 업적보다는 한 사람의 사소한 과정에서 배우고 싶어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자기가 소망하고 즐기는 것을 일상에 어떻게 투영하는지, 어느 시간대에 무엇을 하는 걸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며 하지 않고자 하는 일은 무엇으로 두는지, 하루는 어떻게 마무리 하는지. 그런 것이요. 그래야만 그 사람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하루를 무엇으로 채우거나 비우고 싶은지 말예요. 그게 건강한 삶을 찾아가는 일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