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9월부터는 혼자 지내는 일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대답할 말이 없으며 웃지 않아도 됩니다. 누구의 허락 없이 걷고 싶은 속도로 길을 둘러 다닐 수 있습니다. 행동거지와 마음가짐이 단출하고 부드러워 퍽 편안합니다. 그 편안함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때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수제맥줏집에 가서 흑맥주를 마십니다. 아니면 밤중에 천가를 따라 걷거나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합니다.
혼자 하는 일 중에 곤혹스러운 것이 먹는 일인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야 식당에서 나오는 그날의 메뉴를 감사히 먹으면 된다지만, 방으로 돌아와서는 저녁을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 선택해야 합니다. 혼자도 먹을 수 있는 밥집은 정해져 있고 배고픔은 어김없이 찾아오는데 나는 무얼 고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디든 가서 내가 먹을 만큼의 반찬을 얘기하고 내 속도로 찬찬히 먹을 텐데요. 창밖을 구경하거나 밥을 먹는 사람의 모습을 훔쳐보곤 돌아올 텐데요.
한 번은 사천 원 하는 국숫집에 저녁을 해결하러 들렀습니다. 테이블이 네 개 있는 작은 가게입니다. ‘국수 하나 되나요?’, 주인에게 묻고 뒤쪽 구석으로 가 앉았습니다. 손님으로 흰 머리와 검은 머리가 반반인 여자가 먼저 앉아 있습니다. '저분은 왜 여기서 저녁을 드실까' 하는 생각으로 등을 바라보니 국수가 나옵니다. 주인은 국물이 따뜻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유야 어떻든 허기를 달래러 온 것이라 ‘괜찮습니다’ 하고 젓가락을 듭니다.
김치 한 점을 올립니다. 차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면발을 빨아들입니다. 면을 빨아들이는 후루룩 소리에 내가 나를 안심합니다. 국수를 한입 넣고 고개를 들면 앞 사람의 등이 보입니다. 내 앞에 있는 다른 혼자는 밥 먹는 등이 없으며 젓가락질조차 고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