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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소리 Mar 21. 2023

만져보면 다 안다




   피부가 예민한 아이였다. 상의 뒷목에 달려 있는 탭이나 허리춤에 있는 세탁 탭이 피부에 닿는 걸 몹시 싫어했다. 항상 가위로 잘라서 입었다. 가슴이나 등 부위에 자수나 캐릭터가 박음질 되어 있어 안감에 다른 원단을 덧댄 옷은 입었다가도 바로 벗어버렸다. 이물감이 극도로 거슬렸기 때문이다. 몸이 숨을 쉬지 못하는 원단도 꺼렸다. 그런 옷은 입어보면 단박에 느꼈다. '싫어!'. 그렇다, 나는 까탈스러운 아이였다. 그 아이는 자라서 중학생 무렵 엄마와 일 년에 한두 번 데이트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안 입던 것도 입어보라며 옷을 사주려 했다. 옷을 살펴보며 엄마가 자주 한 말이 있다.




   '은아, 손으로 함 만지바라. 살 만지보면 다 안다'.




   어떤 말은 오래 살아남아 마음에 파문을 그린다. 시가 그렇고, 부산 사투리로 얘기한 그 말씀이 그렇다. '만져보면 다 안다'. 분명 옷에 대해 한 말인데 어째서 열이 난 내 이마에 올려두었거나, 울음을 감춘 내 등을 쓰다듬던 당신의 손이 떠오르는지. 작은 생명을 길러본 손은 옷쯤이야 살짝 만져보고서 알 수 있는 거겠지. 비싸거나 저렴한 원단의 차이를. 가격과 상관없이 자기 피부에 맞는 원단을.




   괴짜 같은 면모가 있는 우리 엄마는 앞에 지나가는 사람의 외투를 슬그머니 만져보기도 했다. 그때 나는 남사스럽게 왜 그러냐며 부끄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엄마는 슬쩍 웃으며 '원단이 좋아 비가 함 만지보고 싶었다' 했다. 나는 걱정스레 말했다, '그래가 알아삐면 우짤라꼬 그라노'. 엄마의 대답, '그라믄 솔직하게 말하믄 되지 뭔 일 난다꼬'. 피는 진하다고 했던가. 스물넷, 패션스타일링학과 교수님이 입으신 외투에 들어간 벨벳 원단이 너무나 궁금했다. 결국 연구실에서 입을 뗀 나.




   '교수님, 옷 한번 만져봐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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