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가 일어나는 공간 Affordance in SPACE 2
한국이 선진국의 문턱을 넘는 최근 10년 동안, 국내의 상업적인 공간에 가장 영향을 끼친 곳을 한 군데 뽑는다면 분명히 도쿄 다이칸야마에 있는 츠타야의 T-site일 것이다. '상품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곳', '숲 속의 도서관', '설렘이 가득한 문화복합공간', '어른인 체하는 것이 가능한 공간', '소매업의 미래', '고상한 취미를 가진 대형 서점', '오프라인 서점을 넘어 모든 영역에서의 미래', '라이프 셀렉트 숍', '프리미어 에이지의 문화 소비 공간', '중년의 해방구',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는 곳', '취향을 설계하는 곳', '지적 놀이터', '나의 취향이 존중받는 곳' 등 그곳을 표현하는 수식어는 다채롭다. 츠타야의 대표적인 다이칸야마점 이외에도 롯본기점, 쇼난점, 후타코타마가와 츠타야 가전을 돌아본다면 전혀 다른 셀렉션의 매장 구성과 분위기로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지만 츠타야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기본 콘셉트는 서로 관통한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놀랄 것이다.
이곳은 한국 여행객들에겐 도쿄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인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다양한 연령층과 개와 함께 산책을 온 동네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는데 놀랍게도 정작 메인 타깃은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층이 아닌 프리미어 에이지라는 경제력과 시간적 여유가 있는 60대 노년층, 바로 그들을 위한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역사적 배경으로 프리미어 에이지란 전후 베이비붐으로 태어난 단카이 세대를 중심으로, 고도 경제 성장기에 이어서 오일쇼크, 버블 경제 등 일본의 성장과 함께 자라난 세대이다. 많은 것을 경험한 만큼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고 욕심도 많고 새로운 경험에 대해서도 아주 적극적이고 무엇이든 흡수하려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는 중요한 소비 계층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이칸야마의 T-site는 바로 이 프리미어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서적 중심의 상업 공간을 일본에서 처음 시도한 것이다. 마스다 무네아키 사장이 1951년 오사카 출생으로 정작 본인이 프리미어 에이지로 그들을 위한 라이프 스타일을 위한 공간을 만든 것이다.
다이칸야마의 T-site 자리는 마스다 사장이 2년간 토지 소유자를 찾아가 공들여 얻어낸 곳으로 전철역과도 떨어져 있고 서울의 한남동 같이 주변에 대사관이 많고 힐사이드 테라스와 인접한 인적이 드물던 조용한 주택가다. 그래서 그는 지역이 가진 스토리가 있으나 기획력이 없으면 살리지 못할 입지를 굳이 골랐다고 한다. 토지를 구매하기 훨씬 전부터 그 지역을 자주 찾았고, 매주 주말마다 건너편 카페 미켈란젤로의 테라스에서 고객의 기분이 되어 가장 가고 싶어지는 장소를 이미지하고, 이런저런 공상을 하며 기획서를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카페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특징을 깨달았다. 우선, 반려동물을 데리고 나온 부유해 보이는 고령자와 젊은 여성이 많다는 점, 최고급 외제 차를 대어놓고 그 차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손님이 많다는 점이었다. 산책 시간이 즐거워지도록 똑같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반려동물을 맡길 수 있는 시설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마스다가 CEO인 CCC(Culture Convenience Club)는 약 4500만 명의 회원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츠타야의 직영 및 프랜차이즈 사업과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사업 및 T포인트의 운영 및 컨설팅 사업을 하는 일본의 회사이다. CCC의 건물 공모전을 통해 건축 디자인은 Klein Dytham Architecture가 맡았다. 건물 외벽을 멀리서 보면 하얀색 Tsutaya의 T자로 인상적인 파사드를 만들고, 작은 T자 모양을 벽에 담쟁이 같이 형상화해서 건물을 덮고 있다(츠타야 蔦屋는 담쟁이가 있는 집이라는 뜻). 그래픽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은 하라켄야, 전체의 크리에이티브는 Tomoko Ikekai가 담당했다. 많은 디자인어워드를 수상했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일본에서 유일하게 선정'되기도 하였다.
라이프스타일을 고르는 장으로서의 츠타야가 제안력을 강화하기 위해 책을 생활 장르별로 분류하는데 도전하고 서양서적과 중고서적도 갖추어 노인도 만족할 수 있는 깊이감 있는 상품 구색을 실현했다. 프리미어 에이지 고객이 여생을 풍부하게 보낼 수 있도록 여행과 주택, 그리고 자동차를 즐기는 법에 관한 책도 갖추었다. 츠타야만의 큐레이션을 통해 요리책을 사러 온 고객이 식재료까지 사게 만들고 슈퍼나 편의점에서 파는 제품도 츠타야에서 사게 만들다. 큐레이션 기획에 있어서 컨시어지라는 전문가들을 곳곳에 배치하여 이들이 직접 자신이 담당 코너를 상품 매입부터 매장 구성까지 기획하고 고객들에게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도록 하였다. 컨시어지들은 각각이 담당 장르의 전문가, 재즈 코너에는 워커힐 호텔의 로비 음악을 편집한 음악가, 문학코너에는 일 년에 365권의 책을 읽는 직원, 여행 코너에는 20권 이상 가이드북을 출간한 여행 저널리스트 등 각 분야의 내노라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
평범한 브랜드 매장은 라이프스타일을 물건이나 상품으로 제안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물건이 아닌 이미지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이미지를 수집해서 고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합니다. 고객들이 라이프스타일을 고르는 장소로 만들고 싶어요. 츠타야는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는 장소입니다.
_마스다 무네아키
프리미어 에이지는 아침이 빠르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책과 카페 매장 모두 아침 7시에 영업을 시작하도록 했다. 반려동물을 생각해 반려동물 병원이 딸린 숍을 도입하고 다리가 약한 노인의 건강을 위해 전동장치가 부착된 자전거 전문점을 만들었다. 또 실버 세대 여성을 위한 에스테 살롱을 만들고 카메라를 좋아하는 노인을 위한 카메라 전문점을 만들었다. 그 결과, 멋진 노인이 티사이트를 '내 공간'처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마스다 사장은 자동차를 수집할 만큼 좋아하는데, 이곳을 방문하는 프리미어 에이지의 고객들이 지하철로 이동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 처음부터 평범한 쇼핑센터 주차장이 아니라 고객의 자동차가 멋지게 보이는 주차장을 만들었다.
다이칸야마 주변에는 독립한 크리에이터 사무실도 많아 이들이 기획에 필요한 잡지나 서적, 각각의 장르에 속하는 정보를 모은 영화나 음악 아카이브 라이프스타일 잡지 아카이브 등 기획에 필요한 자료를 모은 살롱인 안진 라운지가 이어진 세 개의 건물 중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크리에이터가 늦게까지 일할수 있게 심야 2시까지 영업하여 스타벅스에서 자유로이 책을 읽으면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4,000평에 달하는 시설 전체가 '크리에이터의 오피스'가 되도록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레스토랑도 들였다. 그 결과, 티사이트의 모든 곳에서 크리에이터가 맥북을 사용하여 일하고 있다.
내부 공간에서 바깥의 창을 통해 나무를 볼 수 있어 숲 속에 있는 듯한 느끼는 공간 구성으로 장르를 넘어선 큐레이션 기획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공간구성과 관련해서는 상업시설이 넘쳐나는 시대를 의식하여 상업적인 요소는 철저히 배제하고 '집'을 콘셉트로 안락한 공간을 실현했다. 다른 고객의 '풍경'이 된다는 사고방식에서 멋진 손님이 찾아오게끔 다양한 장치를 고안했다.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이 보유한 서적은 총 20만 권이다. 하지만 결코 서적량에 압도당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공간 설계 역시 많은 고객이 북적이지 않는 것을 전제로 혼자 오더라도 편안한 공간이 되도록 설계자에게 의뢰하여 인간의 체격을 기준으로 한 휴먼스케일로, 테마별로 구분한 공간은 다시 작은 서가가 모인 작은 방으로 분리되어 마치 개인 공간에서 책을 읽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각 섹션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결국 한 곳에 머물게 되어 자신도 잘 몰랐던 취향을 발견을 하기도 한다. 하루에도 방문객 수가 1만여 명이 넘는 츠타야 서점은 역설적으로 공간의 개인화를 추구한다. 이는 공간의 목적을 구매에 두는 대신 공간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한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프리미어 에이지는 패셔너블한 인테리어에는 관심이 없죠. 올해에는 굉장히 패셔너블하더라도 내년이면 유행이 지날 테니까요. 그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이 확실하게 확립돼 있어요. 패셔너블하기보다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원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간보다는 콘텐츠가 더 중요하죠. 겉이 아니라 깊숙한 곳에 실재하는 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겁니다. 자신의 집 같은 편안함 속에서 긴장을 풀고 쉴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했어요.
다이칸야마 T-사이트의 뒷길로 들어가면 'T-SITE GARDEN'이라고 적힌 작은 안내판이 보인다. '숲 속의 도서관'이라는 테마로 디자인한 T-사이트의 핵심 공간 중 하나다. 서점 건물 밖으로 뻗은 산책로는 내부에서도 유리벽을 통해 조망할 수 있다. 각 서점 건물 사이의 거리를 메꾸는 것 역시 조경의 몫이다. 이 덕분에 T-사이트는 동네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또한 반려동물 산책의 메카가 되어 전 세계의 멋진 견공들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강아지와 함께 T-사이트 둘레를 한 바퀴 돌거나 자전거를 끌고 와 잠시 휴식을 즐기는 이들 역시 츠타야의 고객이다.
프리미어 에이지를 타깃으로 만든 공간이라고 하지만, 사실 20~30대 고객 또한 츠타야 서점을 많이 찾고 있다. 어른인 체하는 것이 가능한 공간. 깊이 생각하고 싶을 때, 무언가에 막혔을 때, 교감을 구하고 싶을 때 힌트를 얻고, 책과 차분한 공간 그리고 음악이 있는 서점, 그것을 찾아내기까지 풍성하게 제공해주는 곳, 내가 사는 집 근처에 있다면 아마도 매일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공간. 다양한 각도에서 콘셉트를 잡아 혼자 방문해도 안락한 공간이 되고 있다. 바로 이런 점들이 공공공간의 개인화를 디테일하게 기획하고 실행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다이칸야마 T-site는 나에게도 도쿄로 출장 갈 때면 몇 번이고 빠지지 않고 방문했던 곳으로 지금 준비 중인 신규 건축물에도 충분한 기획적 동기와 많은 영감을 준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상업공간을 개인화하여 공간취향을 만든 곳 중에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태국 방콕의 Open House를 추가로 소개한다.
오픈 하우스는 방콕에서 '럭셔리 쇼핑센터'로 통하는 센트럴 엠버시 Central Embassy 6층에 자리한다. 4600m²(약 1400평)에 달하는 이 초대형 건물은 14개의 레스토랑과 서점,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과 휴식처를 표방하는 그린 하우스 등을 갖추고 있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서점. 개방감이 돋보이는 오픈형 공간으로 한쪽 벽면을 두 단으로 나눠 복층형 서가로 구성했다. 큐레이터가 엄선한 아시아 미술 및 문화 관련 서적, 실험적인 아이디어로 가득한 예술 서적을 비치해 누구나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다이칸야마 T-site 건축디자인을 맡은 Klein Dytham Architecture가 참여했다.
이곳을 만든 센트럴 그룹은 공식 명칭 뒤에 '코리빙 스페이스 Co-Living Space'라는 근사한 부제를 덧붙였다. 오픈 하우스의 실제 모습은 마을의 커뮤니티 센터에 가깝다. 집 앞 슈퍼에 가는 편한 옷차림으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 키즈 존의 서가에서 자유롭게 책 읽는 아이들, 푹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책 읽다 잠든 학생, 전망 좋은 창가에 앉아 함께 혹은 각자 일하는 사람들이 공간의 곳곳을 채우고 있다. 오픈 하우스의 콘텐츠를 기획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샤네 수위까빠끈꿀 Shane Suvikapakornkul은 이 장면이 자신의 의도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고 말한다. “오픈 하우스에 코워킹 스페이스, 커뮤니티 빌리지 대신 '코리빙 스페이스'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 공간을 '방콕의 거실'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고,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책도 읽고, 공부나 일을 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쉬기도 하는 그런 공간 말이에요. 실제로 사람들이 이 공간을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와서 하루 종일 있다가 가는 사람도 꽤 있어요."
오픈 하우스에 방문객이 많은 건 채광과 전망이 좋은 창가의 소파와 테이블을 공짜로 사용할 수 있거나, 세련된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어서, 혹은 쇼핑하기 좋아서가 아니다. 20여 년 동안 뉴욕과 시카고, 방콕 등을 오가며 수준 높은 아트 북을 수집하고 소개해 온 샤네 수위까빠꼰꿀은 이곳의 '수준 높은 서가'를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는다. "책을 고를 때 저는 오픈 하우스가 들어선 센트럴 엠버시의 주변, 대사관과 6성급 호텔, 갤러리 등에 둘러싸인 환경에 중점을 뒀어요. 찾는 이들의 다양한 국적, 세련된 취향, 문화 예술적 수준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죠. 책장에 꽂힌 책들을 자세히 보면 방콕에서 구하기 힘든. 좋은 책이 많다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거예요. 그중엔 40~50만 Baht(12000~13000 USD)이 넘는 희귀한 서적도 있어요. 콘텐츠 기획자의 입장에서 저희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소비하는 사람이 있어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_매거진B 방콕 편
국내에서도 이렇게 다이칸야마 T-site와 같이 상업공간을 개인들이 즐길 수 있게 취향공간으로 만드는 곳도 이제는 많아졌다. 코엑스몰 내의 '별마당 도서관'이나 광고인으로 오랫동안 일해 온 최인아와 정치헌이 함께 만든 '최인아 책방'도 그 사례 중의 하나일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츠타야의 정신은 범위가 확장되어 다양하게 구현되고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이러한 바람은 국내에도 이미 츠타야 식의 독립서점,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복합문화공간, 도서와 음반을 넘어서 가전, 가구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 중이다.
아쉽게도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에서 영감을 받았거나 따라하거나 인스타스팟 흉내를 낸 곳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이나 감동을 주는 곳을 찾기 힘든 것은 왜일까? 마스다는 매장을 만드는 주권을 기업 측에서 고객 측으로 옮겨가는 혁명이라고 했다. 과거의 성공 체험에 기인한 상식이나 규범을 바탕으로, 회사 사정에 맞춰 매장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의 기분으로
고객이 원하는 매장을 만들어야 한다.
고객의 기분으로 기획하기 위해 마스다는 고객의 기분으로 몇 번이고 매장을 바라본다. 같은 매장이라도 아침의 기분, 점심의 기분, 저녁의 기분으로, 다이칸야마점을 만들 때도 바로 앞 카페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그는 쭉 지켜봤다. 디테일에 혼이 머물기를 기원하면서…
그것이 차이점일 것이다.
Central Embassy’s Open House _ Archida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