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정한 May 24. 2017

질그릇

작은 첫번째 그릇이 완성되기까지 D-205. 

2012년 1월 31일, 기업의 지침서로 잠언 31장과 ‘정직과 회복’이라는 단어를 받고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greediness와 ego가 강한 나에게는 짊어지고 가야할 선한 십자가라고 해야 할까. 그 이후로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초보 사업가로서 수많은 위기를 지나보내며 내 그릇이 얼마나 작은지, 그리고 더러웠는지를 참 많이 느낀다.      

나는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현장에 나가 육체노동을 하는 동시, 동굴(내면)로 들어가서 성찰을 하며 정리하는 성향인지라 어려움이 생길수록 더욱 기업의 우선순위 정리와 코어밸류 부분은 명확해 지는 것 같다. 비록 내 무지함과 무모함으로 초래된 문제들이지만, 이러한 초기의 다양한 어려움들을 통해 기업의 올바른 목적에 대한 정의가 더욱 명확해지고, 수직의 공평한 원리원칙과 따뜻하고 자율적인 수평의 밸런스가 자리 잡고, 머시라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Tasty, Healthy, Beauty의 3가지 축이 더욱 뚜렷해졌다.      

재정적으로 가장 어려운 요즘, 역설적으로 와이프와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누는 주제 중 하나는 선한자본의 창출과 나눔이다. 성향 상 나는 항상 생각이 조금 앞서있고,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많이 이른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적정선을 조금씩 조율하고 있다. 그런데 그 적정선을 부끄럽게 만들며 내 마음을 어렵게 하는 인물이 계시다. 바로 유일한 박사님인데, 이분에 대한 관심은 예전 유한양행에 사업차 방문했을 때 생겨 관련 책들을 읽으며 더욱 커졌고, 양 대표님의 강의를 들으며 배가되었다. 유한양행 본사 1층에서 막내 직원분(?)께서 20분(!)간 유일한 박사님의 삶과 유한양행의 이념에 대해 열정적으로 소개하는 것을 들으며 충격을 받은 것은 두 가지. 첫째, 성부란 이런 것이구나. 둘째, 아직도 직원들은 그의 신념을 충실히 이어가고 있구나. 이런 회사, 이런 창업주가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니까 꼭 저렇게 하는 것이 답은 아닐 것이다... 라고는 자위 하지만, 마음 한 켠에 찜찜한 이 기분은 무엇일까. 내가 항상 이야기하는 Integrity Group(머시주스의 법인명)의 가치관과 신념은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진짜로 받아들여질까. 아니 그 전에, 나는 과연 진짜인가.

유일한 박사님이 돌아가시기 전 남기셨던 유언장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내 성향과 맞지 않는 ‘정직과 회복’의 키워드를 받았던 때와 같은 옥죄임이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 키워드들은 나를 항상 올바른 길로 돌이키는 십자가와도 같았다.        

질그릇. 나는 질그릇이 가진 흙이라는 내추럴하고 소박한 소재 면에서 나 자신을 항상 질그릇으로 정의해왔는데, 5년이 된 현재를 보면 드디어 높은 온도에서의 소성단계를 거치는 중이지 않나 싶다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 완성된 (작은)그릇이 나오기까지 205일 남았다). 과연 그 그릇이 탄탄하게 잘 나올지, 혹은 깨어질지... 

이 질그릇이 성실한 과정을 통해 완성되어 많은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이 목을 축일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생수를 담는 도구가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하루를 살아낸다. 

작가의 이전글 주스라는 영역에 새로운 점을 찍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