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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스두어 Mar 30. 2017

오이소 마사미 이쿠코 부부는 매일 새로운 가족들과 항해

따뜻한 일본 가족의 일상으로 떠난 여행

 일본 여관집인 '민숙'하면 문지방이 스르륵 열리고 기모노를 입은 채 두 손을 모아 깊숙이 절하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여주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일본식으로 정성을 다해서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한 번쯤은 일본식 환대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진짜 일본 가정집에서.


 일본 여행을 마음먹고 친구에게 따뜻하게 여행자들을 맞이하는 집주인 소개를 부탁했다.

 "도시나 시골.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어. 나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이해줬으면 해.  일본 가족의 삶을 경험해 보고 싶어."  



 마유코는 단박에 떠오르는 집이 있다며, 오이소에 사는 이쿠코와 마사미 부부를 추천했다. "오이소?" 처음 드는 지명이다. 상관없다. 바로 비행기 예약을 했다. 무라카미 하루끼가 사는 동네라고 해서, 얼른 가방에 [1 Q84]도 챙겨 넣었다. 준비 끝!


 오이소 역에 도착하니 일본스러운 미니차를 타고 온 마사미상이 맞이한다. 도쿄에서 기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해변가 마을 오이소. 마사미상은 집에 가는 길에 드라이브를 제안한다. 그가 매일 아침 서핑을 하는 오이소 비치. 여름철 해수욕을 위해 찾는 여행객들이 기대하는 깔끔히 단장한 모습은 아니다. 푹푹 발목까지 꺼지는 검은 모래바닥을 훈련장 삼아 고등학교 운동부 선수들이 이른 아침부터 훈련을 하는 장소다. 동네 주민들이 아침 산책 삼아 반려견과 거니는 동네 해변가다.


 젊은 시절 인테리어 분야에 일하면서 수없이 해외출장과 여행을 다니며 유럽 가구들을 수집했다. 남들처럼 정글 같은 도시에서 경쟁하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어느 날부터 도시를 떠난 삶을 꿈꿨고, 장인 장모님이 살고 계신 해안가 마을 오이소에 정착했다. 마사미 상의 이야기다. 그가 꿈꾸는 삶은 '느린 삶', '글로벌 여행이 지속되는 삶'이었다. 오래된 집을 임대해서, 한편은 가족이 사는 공간, 한편은 아트 스튜디오로 꾸몄다. 스튜디오는 마사미의 이상향 같은 공간이다. 배를 형상화한 스튜디오의 이름은 'Epinard'. 그의 꿈은 에피 나르호에 승선한 여행자들이 함께 밤을 지내며 식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글로벌 빌리지를 이루는 것이다. 매일 밤 서로가 나누는 이야기를 따라 매번 세상으로 항해한다. 나도 며칠 동안 그 항해에 초대받아 함께 여행을 하는 기쁨을 누렸다.

 

 아침이면 여행자들은 편안한 복장으로 이쿠코 상의 부엌 겸 거실로 들어선다. 스스럼없는 친척처럼 부엌에서 프라이팬을 잡고 이쿠코 상의 도움을 받아 일본식 폭신폭신한 계란말이에 도전해본다. 간단한 아침상을 차리다 보면 하나둘 다른 여행자 가족들도 식탁에 자리를 차지한다. 소박하지만 이쿠코 상의 정성이 가득한 식사를 하다가 8시가 되면 모두 TV를 본다. 이 집의 단 하나의 룰! 일본의 인기 장수 프로그램인 아침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이다. 이때만큼은 이쿠코도 음식 준비를 멈추고 테이블에 앉아 TV를 시청한다. 한국 드라마를 보는 듯 일본어는 모르지만 5분을 봤더니 내용을 다 알 것 같아 신기했다. 그런데 서양에서 온 여행자들 눈에는 신기했나 보다. 식사를 하면서 드라마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식사 후 커피 한잔은 스튜디오 일층으로 옮겨가서 한다. 유럽 작은 마을의 예배당 같은 모습이다. 한 때 이곳에선 마사미상이 초대한 예술가 친구들이 주말 공연을 하곤 했다. 지금은 가끔씩 잡지나 웨딩촬영을 위해 빌려준다. 막 중학교를 졸업한 막내아들 고헤는 드럼에 취미가 있어 아침이면 드럼 연습을 하다가 등교를 했다. 그 앞에 앉아 드럼 연주를 들으며 커피와 함께 오전 시간을 보낸다. 날씨가 좋은 면 마사미상과 반려견 산책 겸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벼본다. 서예를 즐기는 이쿠코와 오랜만에 정성스레 먹을 갈고 한지에 '행복'을 써본다. 그러면 슬그머니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가는 대신에 이 년간 세계 여행에 도전하는 둘째 아들 아몬이 옆에 앉아 붓을 든다. 아몬은 이 집에 머물렀던 게스트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애정'을 붓글씨로 써 내려간다. 앞으로 2년 동안 인연을 맺은 친구들과의 정을 나누는 여행에 대한 기대가 가득하다.

 오후엔 이쿠코 부부의 친구가 운영하는 소품샵도 가보고, 동네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닭요리 식당도 가본다. 작은 대나무 숲이 있는 공원에 가서 하루키의 책을 읽기도 하고, 빈둥빈둥 동네 산보를 하다 보면 마사미상이 전화가 온다. "저녁 장 보러 가는데 같이 가면 어떨까요?". 동네 슈퍼에 들러 이쿠코상이 적어둔 메모대로 찬거리를 챙겨 돌아오면 부엌에서 같이 저녁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오늘의 주요리는 일본식 만두 '교자'. 마침 하코네에 온천욕을 다녀온 여행자 가족들이 들어와서,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만두피 가장자리에 물을 묻히고 이쿠코가 미리 만들어 놓은 만두소를 담아 꾹꾹 눌러 예쁜 모양을 만들어낸다. 식탁에 밀가루가 날리고, 손을 열심히 놀리면서 서로 하루 일과를 나누다 보면, 어릴 적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오시면 손 닦고 식탁에 둘러앉아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 동네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들을 나누면서 보냈던 저녁식사 장면이 떠올랐다. 여기에 마사코상이 기분 좋다면 꺼낸 정종 한잔씩 하면 하루가 마무리된다.

 스튜디오 2-3층은 마사코상에 모아놓은 남프랑스풍 가구가 가득하다. 일본스럽지 않은 고풍스러운 프랑스 가구들에 둘러싸여 창문을 바라보면 바깥은 전형적인 일본의 '밭'이라 느낌이 이상하다.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잠이 들면 밭을 가르는 바람소리, 가끔씩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와 함께 차가운 밤공기가 들어온다. 아침에 새소리에 눈을 뜨면 다시 이쿠코 상의 부엌에서 하루가 시작된다. 마사미-이쿠코 부부 덕분에 5일 동안 이 집에 머물면서 진짜 일본 가족의 소박한 삶을 경험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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