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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변 Jan 23. 2020

피해자의 목소리,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영화 신의 은총으로

1월 16일 국내 개봉한 영화지만, 사실 이미 1월 초 특별 시사회로 보고 온 작품이다.


우선 신의 은총으로》라는 제목이 재미있다. 신의 은총으로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한 가톨릭 계의 입장에서 따온 것인데, 공소시효의 도과에 신은 과연 무슨 관여를 했단 말인가? 신이야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달리 법률 상 중단사유가 없는 한 시간이 흐르면 공소시효도 흐른다. 신과 종교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야 그 살아가는 길이 신의 뜻을 좇는 것이 되겠지마는, 그 자신이 침묵하고 피해자들이 나서지 못한 것을 마치 모든 것이 신의 뜻인 양 돌리기 위하여 신의 은총이라는 말이 쓰였다는 점은 다시 보아도 우습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신의 은총으로》라는 제목을 달고 다시 돌아와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앞에선 아이의 뒷모습을 담은 포스터는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생각난다는 평이 있고, 내가 특별 시사회에 가게 된 것도 일전에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고 브런치에 남긴 리뷰가 계기가 되었다. 두 영화 모두 가톨릭 사제의 아동에 대한 성범죄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을 것이고, 또 그 다룸의 방법에서 디그니티가 있었다는 점도 또 다른 공통점으로 꼽을만 할 것이다.


오히려 그 디그니티의 측면에서는 영화 룸과 비견할만 하지 않은가 싶다. 스포트라이트는 사회가 쉬쉬하고 언론이 침묵한 사건에 대한 보도를 다루면서, 언론인의 책임, 나아가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남기며 사건을 묵인하는데 동조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반면, 신의 은총으로는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폭력이라는 같은 소재를 공유하고는 있지만, 그 사건의 당사자를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그 당사자의 사건 이후의 삶과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에서 영화 룸의 후반부와 유사한 의미와 품격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추행을 다루면서도 그 범행 장면을 노골적으로 재현하고 선보이는 관음적인 행태 대신, 그 피해자 자신의 입으로 이를 진술하게 하면서, 피해자들의 비언어적인 메시지, 즉, 그 기억을 떠올리고 진술에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전달하는 것을 앞서 말한 이 영화의 디그니티로 꼽고 싶다. 범행 장면을 재현시켜 내 눈 앞에 펼쳐 보이는 것은 결국 가해자의 시선이자 관음적 쾌락을 충족 하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오히려 나는 각 피해자들이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것을 사실적인 진술로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하는 장면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담담한 진술이 담고 있는 내용은 듣기에 고통스러웠고, 이는 피해자들이 겪은 사실을 담은 진술은 결코 음흉하게 다루어지는 음란한 컨텐츠가 아니라 범죄 행위에 대한 증언임이 와닿도록 한 연출 의도 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원래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자 했으나, 가해자의 실명 및 가해 배경 등을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피해자 역할에는 배우들을 기용하여 제작 되었다고 한다. 오히려 이러한 점이 제한적인 시간과 자원으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담아내는 데 한 몫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해법을 찾아가려 한 알렉상드르를 시작으로 종교를 박차고 나와 가장 적극적으로 행동하고자 한 프랑수아, 그리고 망가지고 여전히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호소하는 목소리가 아닌 뚜렷한 목소리로 증언하는 에마뉘엘 등으로 이루어진 라 파롤 리베레를 중점적으로 조명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의 피해자들 간의 연대와 주변의 지지가 특히 인상깊었다. 우리나라에서의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주어지는 주변 환경과 처우를 생각하면 더더욱. 알렉상드르의 가족과 자녀, 프랑수와의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다시 그 지지를 바탕으로 에마뉘엘의 곁에 선 알렉상드르, 프랑수와와 라 파롤 리베레의 모습은 나는 우리 사회의 어떤 '주변'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스포트라이트에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마을'의 의미를 강조했듯이, 신의 은총으로는 피해자에 대한 '주변'의 의미를 강조 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분명 이 사회에는 명백히 피해자가 있는 사건에 대하여 그 사건의 사실 관계만을 쾌락적으로 탐하는 일이 잦다. 그리고 영화와 같은 매체를 도구로 하여 그러한 일을 다루고자 할 때, 피해자의 목소리를 고요하지만 분명하게 담아낸 신의 은총으로와 같은 영화는 분명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다만, 영화에서 다룬 가톨릭 사제의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한 처벌과 대응은 여전히 진행 중인 사안이며, 가해자들이 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은총 역시 현재 진행 중이다. 신께서 행하는 은총은 무엇이고, 믿는 자가 신께 구하는 은총은 무엇이며, 이 영화의 제목에서 들먹여진 은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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