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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변 Jan 22. 2020

비발디 사계 여름 3악장을 켜고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오랜만에 비교적 이른 퇴근을 하고 곧장 집으로 갈까 어쩔까 하던 차에 상영시간이 25분쯤 남은 영화를 찾아 상영관으로 들어온 것이 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었다. 아마 그 배경은 하프시코드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8세기쯤 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평일 저녁 극장이 가득 찬 이유가 있었다. 주요 인물 셋 만으로도 가득 차는 이야깃거리를 한 장면도 버릴 것 없이 풀어낸 영화였다.


엘로이즈로 등장하는 아델 아넬은 일찍이 영화 언노운 걸에서 인상 깊게 본 적이 있었다. 언노운 걸은 아델 아넬이 별 다른 표정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뚱한 얼굴인가 싶지만, 그 얼굴에 담긴 단단한 뜻과 이를 숨기지 않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위엄 있고 무겁게 느껴지는 의사 역할을 맡았던 영화였는데, 아델 아넬은 울고 몸부림치는 장면 하나 없이도 인간 심연의 깊은 곳을 탐구하는 듯한 표현을 해내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러한 면은 이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도 관객에게 심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주효한 매력포인트로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림에서 이념과 관습에 매여있는 닫힌 모습으로 묘사된 초반부에서 자신을 좀 더 드러낸 이후 그려진 두 번째 그림, 그리고 마지막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3악장과 함께 이어지는 엘로이즈 롱테이크 신은 압권이었다. 영화가 전적으로 마리안느의 시선과 관점 위주로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와 만나 그림을 그리고, 관계가 변하고, 작별한 후의 이야기까지를 그려가다가, 별안간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 비발디 사계 여름 3악장을 틀어 놓고는 긴 말 않고 엘로이즈 얼빡 롱테이크 하나로 엘로이즈가 얼마나 사랑했고, 잊지 못하고 있는지를 압도적으로 풀어놓고 끝나버린다. 게다가 가뜩이나 사람 뻐렁치게 만드는 비발디 사계 여름을 엔딩에 틀어 놓은 것은 영화가 끝나도 관객에게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게 만들지 못할 만큼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가뭄에 갑자기 폭풍우가 내려 곤충들이 공포에 떨듯이.


마리안느는 눈동자가 유달리 큰데, 그 눈으로 피사체를 관찰하고, 캔버스에 담는다. 마리안느가 면밀히 관찰한 피사체의 파편 하나하나를 꺼내 놓을 때, 저렇게 어떤 대상을 끈덕지게 바라보고 하나라도 더 담아내려 관심을 갖는다면, 어떻게 그 대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가 마리안느 위주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를 상상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마리안느의 존재 자체가 개연성을 부여하는 느낌을 받았다. 엠마 왓슨과 닮은 듯도 한데, 담기는 감정이 풍부하고, 보는 사람을 저도 모르게 이야기에 빠져들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소피 역시 너무나 매력적이었는데, 바로크 시대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림체를 하고 있어서 화면에 잡힐 때마다 묘한 느낌을 주었다(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림을 닮지 않았나 싶다). 스핀 오프가 있어서 그녀는 그 뒤로 어떻게 살아갔는지도 풀어주었으면 싶다.



다음으로 좋았던 것은, 스토리라인에 걸리거나 군더더기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괜히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게 아니겠지. 괜히 그림을 완성시키지 않는다거나, 쓸데없는 인물을 등장시킨다거나, 불필요한 등장인물 간 갈등을 부추긴다거나 하는 일이 없이,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는 플롯은 그 나름의 완결성을, 소피의 서사는 또 그 나름의 완결성을, 엘로이즈의 감정과 마리안느의 그 이후까지 모든 이야깃거리가 완결성을 가지고 나머지 없이 나누어 떨어진다.


그리고, 여성 화가의 활동 제한, 집안의 뜻에 따라 운명이 결혼으로 귀결되는 여성의 운명, 원하지 않는 아이에 대한 여성 연대의 대처(이 장면에서 어린아이를 옆에 뉘인 것도 아이의 존재와 여성의 자기 삶에 대한 결정이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대한 세련된 은유로 보였다), 신분의 차이 등의 많은 화두 조차 넘치는 일이 없이 건조하고도 담백하게 영화 속에 녹아드는 감각이 깔끔했다.


또 하나, 카메라 워킹,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서로를 바라볼 때 만큼은 그 눈높이의 시선과 시야에서 약간 흔들리는 듯한, 정말 등장인물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듯한 연출이 좋았다.


동일한 이야기를 남녀 주인공으로 풀어냈다면 그저 멍한 느낌의 영화가 되었을 것 같은데, 감각적인 여성 감독이 여성들만으로 꾸려낸 이야기가 이렇게 떼어낼 조각 하나 없이 알차게 재미있을 수가. 여성 인물만으로 풀어낸 이야기라는 이유만으로 특징적인 면을 얻어가는 일이 없을 때까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같은 영화가 더 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국어 자막이 도중에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상호 존대를 하다가 반말을 하는 것으로 번역이 변경되는데, 서로를 지칭하는 말(vous)이나 서로의 운명을 존중하며 작별한 그들 간의 관계를 보더라도, 그 톤을 깨어버리는 변경으로 느껴졌던 점을 꼽고 싶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의미가 불명하여 곱씹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간 금발인 것으로 보아 엘로이즈인 듯한 여인의 눈동자 색깔이 마리안느의 눈동자 색깔이었던 장면... 그 장면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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