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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진 Jul 29. 2023

1인칭 주인공으로 살며 3인칭 관찰자로 바라보기

내 삶과의 적정한 거리두기

영화나 TV 등 수많은 미디어에서 종종 활용되는 헬리캠 또는 드론캠 덕분에 현대의 우리들은 아름다운 광경들을 위에서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다. 이렇게 버드뷰로 바라본 풍경들은 때로 너무 아름다워서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만드는데, 그때마다 다른 한편으로 드는 감정은 이런 것이다.

 

'막상 저 안으로 들어가면 위에서 보는 만큼의 아름다움을 못 느끼겠지'


어떤 마을의 그림 같은 풍경에 이끌려 여행을 갔을 때도 난 늘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아름다움을 성에 찰만큼 충만하게 느끼지 못함을 아쉬워하곤 했다. 막상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전체를 보지 못하고, 내가 보았던 그 풍경 속 어디쯤에 내가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울창한 숲이라도 그 속으로 들어가면 나무 한 그루씩만 보이고, 빼어난 굴곡미를 자랑하는 능선도 내가 걷고 있다면 그저 하나의 길일뿐이다. 그럴 때면 다시금 저 위 높은 곳에 올라가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할 때도 보통 화폭의 대각선 거리만큼 떨어져 보아야 한다는 일종의 법칙이 있다. 너무 가까이서 보면 그림 전체를 한눈에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 되면 작품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알기 어렵다. 적절한 거리가 없으면 시대의 마스터피스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법이다. 


문득, 어쩌면 인생도 그런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내 삶의 정말 아름다운 장면 한가운데를 살고 있는데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느끼고 접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 가까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어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놓치고 지나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방식대로의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이런 생각은 시대의 희극인이 남긴 찰리 채플린의 명언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인생이 가장 힘들고 드라마틱하다. 나 자신만이 내 인생을 속속들이 경험하는 유일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직접 겪어보고 느껴본 것만을 확실히 알 수 있고,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행복한지 불행한지, 쉬운지 어려운지 진정으로 알 수 있다. 즉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내 인생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겪고 느끼기 때문에 그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기억한다. 반면, 타인의 인생은 내 인생에 비추어 추측할 수는 있어도 직접 겪어볼 수 없기에 그 희로애락의 정도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 인생은 더 격렬하고 어렵고 때로 비극적이다. 하지만 멀리서 보는 다른 사람의 인생, 왠지 내 인생과는 달라 보이는 타인의 인생은 그만큼 왜곡되고 미화되며 희극적이다.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 현지인들의 인생이 더 재미있어 보이는 이유도 나 자신이 단지 여행자 또는 이방인으로서 그들의 인생을 멀리서 봤기 때문은 아닐까? SNS에 올라오는 타인의 일상이 훨씬 더 특별해 보이는 것도 - 물론 자랑하고픈 순간들 위주로 공유하는 SNS의 특성도 있겠지만 - 멀리서 바라본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일종의 환상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기억하자. 여행에서 스쳐 지나간 그곳의 현지인들도, 내 SNS 피드에 올라오는 지인들도, 막상 그들이 경험하는 자신들의 삶은 내가 내 삶에서 느끼는 바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들도 본인들의 삶 속에서는 모든 것들을 직접 부딪치고 겪어내는 1인칭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 쉽지 않은 세상을 좀 더 행복하고 지혜롭게 살아내는 방법은 때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사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내 삶에서 한 발 뒤로 빠져 나와 다른 사람의 삶을 보듯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특히나 삶이 버겁거나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잠시 숨을 고르고 한 발 뒤로 물러나 관망해 보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비극이라 생각한 순간들도 그리 무겁지만은 않을 수 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진흙길도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연꽃들로 수놓아진 예쁜 풍경의 일부일 수 있는 것이다. 


너무 당연하게도 우리는 각자의 삶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속속들이 많은 것들을 뼛속 깊이 경험하고 느끼며 살아가면서 내가 지금 내 삶의 어떤 지점을 지나가고 있는지,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에서 얼마나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화폭의 일부를 그려가고 있는 중인지 미처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니 꼭 기억하자. 지금 너무 고통스럽더라도, 혹은 너무 행복하더라도, 그때마다 내 삶을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고통은 덜하고 행복은 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 멀리서 조망했을 때 가슴 벅차게 아름다울 풍경 속 어떤 한 지점을 살고 있는 중임을 깨닫는 '삶과의 적정한 거리두기'가 내 삶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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